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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지 927호의 개정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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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전조와 편두통

블루스크린을 보며 늘 컴퓨터는 왜이렇게 불안정한가, 라고 생각했다.

수십억년의 진화를 거친 인간의 안정성을 과신한 탓일까.




*약간 사람에 따라서는 비위상할 수도 있으니 주의*





갑자기 시야의 한 구석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마치 영화에서 나오는 반짝이는 지그재그의 특수효과 처럼. 산불이 나면 해당 작은 점에서 시작해서 옆으로 쭉 뻗어나가며 외곽선만 타들어가듯, 천천히 반짝반짝 지그재그한 시각의 왜곡이 퍼지는 것이 느껴졌다. Y자 형태로 와글와글거리는 삼원색의 노이즈처럼. 처음 느껴보는 감각이었다. 전체적인 그림은 문제없이 인식할 수 있었지만, 묘하게 선예도가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지금껏 그런식의 이미지나 기호들이 왜 생겨났는지 매우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눈 자체의 문제인가, 라고 생각하며 한쪽씩 눈을 감아보았다. 그런데 같은 위치에서 현상이 여전했다. 혹시 잔상인가라고도 생각했지만 점점 퍼져나가는걸 보며 그 가능성도 배제했다. 언어모델에게 물어보니 시각전조증상과 매우 유사하다고 했다. 시각피질에서 탈분극 현상이 퍼져나가는 현상.


하지만 수업이 있는걸 어쩌겠는가?(내가 생각해도 좀 미친 생각인것같다)

나는 그대로 수업을 들어갔고, 이내 쉽지 않은 두통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놀라운점은, 두통과 함께 약간의 구토감과 함께 후각이 민감해진 것이다. 후각이? 몇년간 비염에 시달려온 나에게는 매우 낯선 감각이었다. 자리를 박차고 나가야할지 말아야할지를 계속 고민하면서 수업 녹음을 켜놓고 끊임없이 고뇌하며 비몽사몽한 상태로 버티고 있었는데, 옆자리 학생의 향수 냄새가 엄청나게 강렬하게 느껴졌다. 분명 강한 향수를 뿌린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심지어 내 옷의 섬유유연제 냄새까지 강렬하게 느껴졌다. 그상태로 두시간을 버티고 정신없이 달려가 한 구석에서 잠을 청했다.

한시간정도 잠을 청하고 나니 정신이 들었다. 다음 수업을 위해 맞춰놓은 알람이 울리기도 전이었다. 머리가 무거웠지만 다른 문제는 없었다. 두통도, 다른 증상도 전부 사라진 뒤였다. 혹시 내가 인지하지 못하는 다른 문제는 없는지 AI와 대화를 해보며, 혹시 말이 어눌해지진 않았겠지? 내 메타인지는 멀쩡한가? 라는 생각을 하며 긴장하며 대화를 했지만, 별다른 문제도 없는 것 같았다. 가족들의 반응을 봐도 나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눈치조차 못채는 것 같았다.

생각보다 인간의 뇌도 불안정하다.
수십년간 한번도 온전히 꺼지지 않은 연산장치.
심지어 예비부품도, 제조사 A/S도 없다.

뇌의 이상은 곧 나의 이상.
존재론적 공포란 이런건가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