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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블렛을 팔았다.
나에게는 구매한지 오래된 판타블렛이 있었다. 십만원을 넘게 주고 처음 사본 그래픽 타블렛.
별 대단한 이야기는 아니다. 그냥 물건의 변천사랄까
원래 나는 거의 아날로그로만 그림을 그렸다. 선물받은 120페이지 짜리 스케치북을 약 30권정도 그림으로 가득채웠다. 그런데 점점 보관할 곳도 없고 전부 찢어버리기에도 아까웠다. 하지만 디지털 그림은 USB하나에도 수십년치 그림이 들어간다!
1. 복선
처음 시작은 와콤의 뱀부 패드였다. 어렸을적 어느날 갑자기 부모님이 어디선가 구해와서 뭐지 싶었는데, 컨셉은 마우스를 대체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펜 자체의 기술력은 꽤 괜찮았던것으로 기억하지만, 종횡비가 정사각형에 가까워서 솔직히 16:9 화면에 쓰기가 미묘하고, 인식영역 사이즈가 거의 스마트폰 수준이라 부적합했다.
2. 선물
어느날 고등학교 친구가 갑자기 어느 구형 태블릿을 선물해줬다. 태블릿은 이런거구나.. 하는것을 제대로 인식하게된 계기였다. EMR기술이 적용되지 않았던 모델이라 펜 내부에 건전지가 들어가서 무겁고 저가형 답게 인식감도나 정확도도 미묘했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래도 좋았다. 여전히 그 친구에게는 감사함을 느낀다. 그러던 어느날 작동하지 않게 되었다.
3. 구매
며칠전 판매한 그 태블릿을 처음 산것은 이때였다. 한창 시작하던 때라 나는 새로운 타블렛을 알아보기로 했고, 애매한 물건을 사느니, 조금 더 제대로 된 물건을 사고 싶다고 생각했다. 당시 내 용돈은 월 3만원이 채 안되던 시점. 수많은 조사와 고민끝에 몇개월치 용돈을 털어 휴이온의 판타블렛 하나를 샀다. 액정타블렛이나 와콤은 너무 비쌌고, 너무 저렴한것은 금방 망가질것 같았다.
4. 급발진
판타블렛은 말하자면.. 바닥에 있는 판에 펜을 비비면 모니터에서 나오는 굉장히 비-직관적인 느낌의 기기다. 사람에 따라서는 오히려 손이 그림을 가리지 않기때문에 오히려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는 듯하지만 난 불편했다. 나는 당시로서는 급발진을 해서 액정타블렛을 샀다. 보조모니터를 겸해서 현재까지도 쓰고 있다. 이때부터 거의 수년간 천천히 디지털 장비들과 친해지는 시간을 가졌다.
5. 군
군에서는 시간이 많다. 아니, 나한테는 적었다. 부족할 지경이었다. 남는 시간의 거의 절반은 책을 읽고, 절반은 그림을 그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데스크탑을 군대에서 안받아준다. 그래서 나는 갤탭을 샀다. 온갖 중국 기업들의 가성비 속에서만 살아온 나에게 삼성 플래그쉽 모델은 처음이었다. 와콤 디지타이저 모듈과 삼성의 디스플레이를 합쳤다니, 혹했다. 심지어 와콤의 일반적 모델들조차 올인원 기기의 펜 반응속도를 따라갈 수 없었다.
6. 새 꿈나무에게
군을 전역하고 나니 판태블릿, 액정태블릿, 태블릿PC라는 어마어마한 셋업이 완성되어있었다. 하지만 내 손은 하나인걸 어찌하겠는가. 판타블렛은 처음부터 언젠가는 이별할거라고 생각해서 모든 패키지를 그대로 보관했다. 판매로 출시가의 약 40%의 가격을 회수할 수 있었다. 아마 별생각 없는 사람이었으면 브랜드도 중국꺼고 가격도 어지간한 와콤 판타블렛보다 비싼데 굳이 이걸? 이라고 생각했을거다. 아마 그 사람도 이리저리 고민하고 조사해본 뒤에 알아봐준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그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시작이겠지, 하고 생각하면 재밌다.
7. 여담
중고거래는 참 신기하다. 별 문제 없어보이는 물건이, 단지 포장을 뜯었을 뿐인데 수십~수백만원이 증발하고, 저렴하게 팔린다. 내가 니콘 카메라를 샀을때도, 출시가의 반도 안되는 가격에 수천장도 찍지 않은걸 나에게 팔아준 사람이 있었다. 자신이 쓰던 좋은 물건들을 이렇게 넘겨주는 고마운 사람들이 많았다. 물건에 애착이 있을수록, 더 잘 쓰일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