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성과 황해를 찍은 나홍진 감독의 문제작, 호프. 세번 봤다. 처음에 한번 보고, 재밌어서 한번 더 보고, 그 뒤에 자꾸 생각이 나서 한번 더 봤다.
처음에 이름군과 봤을 때 평이 갈렸다. 나는 재밌어서 신이 나있었고 이름군은 한국영화계의 암흑기를 불러올 망작으로 평했다. 이야기를 나눠보았을 때 문제점들 자체는 납득이 되었다. 고민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 빈약하고 모순된 설정들, 그 빈자리에 채워져있는 반복되는 액션들, 몰입되지 않는 인물들.
그런데 나는 왜 재밌냐 하는 것이 문제였다. 일단 난 저 문제점들을 문제로 느끼지 못했다는 점이 있겠다.
첫번째로 설정들에 관해서는 신경 자체가 안 쓰였다. 아무리 시골이라지만 한국에서 무한 총기 난사를 하고, 외계인들은 첨단 우주선 타고와서는 벌거벗고 뛰어다니고, 공권력은 도대체 뭣하고 있는 것이며... 하지만 영화 대사로도 나오듯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닌 것이다. 중요한 건 괴물들이 졸라게 빨리 뛰어서 쫓아오면서 자동차로 사람을 맞혀서 터뜨리고 있다는 것이다. 중요한 부분이 충분히 만족스러우므로 안 중요한 부분은 안 중요했다.
두번째로 액션은 영화를 다시 봐도 반복된다고는 느껴지지 않았다. 서사에 비해 액션이 많아 피로감을 느끼는 경우는 있을 수 있겠다. 어떤 목표를 향한 진전이 없이 계속 쫓고 쫓기기만 하니 말이다. 다만 장면 자체를 놓고 볼 때 결코 단조로운 반복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추격이라는 틀은 반복되지만 공간, 인물 구성, 상황 구도(이를테면 달리거나 말을 타거나 차에 매달리거나)의 변주를 주고 있다. 내 경우에 서사의 진전에 대한 기대가 작은 데 비해 액션의 만족도가 컸던 것도 같다.
세번째로 인물들에 대한 몰입은 사실 몰입을 하고말고 해야할 이유를 잘 모르겠다. 물론 영화 내의 인물과 동화되어 얻는 재미도 있지만 난 그냥 감각적으로 쫄리는 맛으로 충분했던 것 같다. 대사들은 일부러 작위적으로 짠 것을 숨기지도 않고 있기에 오히려 저 대사를 저기에 넣은 의도가 무엇일지가 궁금해졌었다. 인물들은 어떤 도식의 부품들인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보다보면 이제 한 사람 더 터져나가기 때문에 다시 잊어버리고 시각적 자극에 집중하게 된다.
결국엔 “번쩍번쩍 재밌기만 하구만 왜 쓸데없는 거 붙잡고 늘어진데?” 정도의 감상이다.... 원초적 자극에만 집중하면 그렇게 재밌을 수가 없는데 다들 나홍진이니 500억이니 해서 기대를 너무 많이 했나보다.
딱 한가지, 외계인들끼리 대화하는 장면은 처음 볼 때 아무래도 좀 당혹스럽긴 했다. 이게 뭐냐~하면서 나왔었는데 이것도 불쾌하다기보다는 재미있는 숙제 정도로 생각했다. 너무 실망스럽게 본 사람이랑 해석하다보니 그냥 설정 전달에 실패한 것으로 결론이 났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지들끼리 아는 얘기”라는 하나의 장치가 아니었을까. 그걸 “아~ 그런 연출~?”로 받아야지 단어 하나하나 뜯어보면서 해석하고 있으면 그게 더 웃기는 것이다.
내가 복잡한 생각을 너무 안하려는건가 싶기도 하고... 복잡한 설정 짜고 싶으면 연구를 하면 되는 것이고 영화를 볼 때는 그런 것보다는 말초적인 시청각 경험을 즐기는 게 좋다. 그런 점에서 오딧세이는 그냥 그랬다. 아이맥스 호들갑 때문에 볼 생각이 별로 없었던 게 크고 테넷이나 오펜하이머 즈음부터 놀란 감독 영화는 너무 피곤한 것 같다. 스파이더맨도 최근에 봤는데 얘는 좀 재밌었던 것 같다. 근데 호프의 그 맛에 중독돼서 그런가 스파이더맨도 좀 약하다. 그 뭐랄까, 서사 엿 먹어라 뿌슝빠슝 시밤쾅의 맛이랄까. 이 시밤쾅 영화가 더 필요하다. 나홍진이 이번에 기죽지 말고 미친 영화를 마구 양산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