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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지 884호의 개정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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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대하여

이성적 사랑에 대한건 아니다.
수도없이 곱씹게되는 사랑에 대한 글이다.



1. 사랑의 조건

완전한 반대로서 조건없는 성적 사랑에 대한 글을 쓴적이 있었다. 거기서의 결론은 실제로 조건없는 사랑이라면 상대의 젠더, 외모등과 무관해야하는데, 그렇지 않더라는 것이다. 성적 사랑이라는것 자체가 조건이다.

가족애는 어떨까. 우정은?

조건이 없다는것은 무슨의미일까.
물론 기본조건은 있다. 내 가족일것. 내 친구일것. 일단 이 전제만 갖춰지고 나면 맹목성이 발동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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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조건없음의 공허

나를 온전히 있는 그대로, 조건없이 봐달라는 멘헤라적(...) 발상이 있다. 하지만 그건 정작 그 사람이 바라보고 있는것에 대한 구체성의 결여다. 추상적 사랑이다.

한 아이가 벅차오르는 가슴을 안고 자신이 존경하는 작가의 작품을 보기위해 부모의 손을 잡고 비싼 입장료를 냈다. 반짝반짝 빛나며 그 관람료가 조금도 아깝지 않다는 아이에게 부모는 "이런거 보려고 돈을 갖다 버리냐"고 말한다. 하지만 여전히 아이를 사랑한다고 말한다.

이 사례에서, 부모는 아이를 사랑한다. 아이만 사랑한다. 그 아이가 무엇에 관심가지며, 무슨 생각을 하며, 어떻게 받아들일지에 대해서는 무관하게말이다.


3. 사랑의 추상성

누군가를 진정 좋아하는건 불가능할지 모른다. 결점이 있어서가 아니라, 사랑이란 원래 맹목성이기 때문이다.

레비나스는 타자의 존재를 무조건적 미지의 존재로 환원하고자 한다. 자신의 체계 안으로 편입될 수 없는 궁극적인 외부다. 이는 사실 본질적으로 외부와 연결되는것은 불가능하며, 연결되었다는 환상 자체를 유보하도록 한다.

사랑은 타인을 향하는 자신의 인식이다.

조건없는 사랑에 대한 요구는 자신의 불변요소에 대한 맹목성을 요구하는것이다. 하지만 자아에 앵커링 가능한 단단한 기반은 없다. 그래서 늘 불안하다.


4. 사랑의 구체성

결과적으로는 불안형 인간에게 사랑은 구체적인 모습으로 나타나야하지 않을까. 그 사람의 구체성에 관심가지자. 그 사람을 사랑할 뿐이란건 잔혹하다. 이를테면 약속에 늦은 친구를 사랑하는게 아니라, 그날따라 울리지 않은 알람과 늦은 버스, 그리고 뛰어오느라 땀에 젖은, 말리지 못하고 나온 머릿결까지 사랑해야하는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