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학문적인 권위보다 진리가 중요한 학문들에서는 명확성이 있다. 그것이 옳은가? 옳지 않은가? 그것은 검증 가능하다. 그런 세계도 있다는건 안다.
하지만 원래부터 정답이 없다는 진부한 명제위에 위태롭게 서있는 수많은 가치판단의 학문(이것이 학문으로서 존립할 수 있는지도 모호한 영역들이 많다)의 경우 경력과 지적자본의 규모가 중요한 평가요인이 되기도 한다.
나는 그 모순된 권위들과의 충돌을 너무나 자주 봐왔다. 그리고 그 권위들은 내 작업물을 인정하지 않는다.(다시말해 나는 딱히 아무 노력도 하지 않은 사람과 구분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구체적으로 털어놓는다면 어떤 느낌이 될까? 또다른 해석노동일까?)
정말 수없이 많은 예들이 있겠지만...구체적으로는 이런것이다.
#1
Q 이 설계안이 왜 문제가 됩니까?
A 이건... 가르칠 수 없는 영역이에요. 이건 아니에요. 정말 답답하네요
Q 질문해보겠습니다. 제 컨셉트의 의도와 배경이 이해되십니까?
A 그건 이미 알아요
Q 그렇다면 그 설계의도가 도면에 반영되어 설계된게 느껴지십니까? 그리고 그게 표현에서 읽혀지십니까?
A 이제는.. 명확히 보이긴 해요
Q 개념설계 스튜디오에서 개념이 서있고, 그게 적용되었으며, 그게 표현되어서 읽힌다면,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A 제가 여러번 피드백을 드렸는데 이걸 이해못하는 학생은 정말 처음보는것 같아요
Q 카테고리라도 알려주십시오. 동선상의 문제나 기능상의 문제가 있습니까? 컨셉트가 명료하지 않습니까?
A 컨셉도 명료하고 기능도 문제가 없어요. 근데 설계가 이건 아닌것같아요
Q 그렇다면 어떤부분이 개선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A 그건 고민해보세요.
#2
crit : 설계가 공무원같네요. A : 제 설계 의도는 단순한 도심재생이 아니라..
crit : 본인은 설계할때 뭘 주로 봐요?
A : 관련된 이론은 책을 보고, 주변인과 대화를 나누고, 이슈는 뉴스기사를 보는등 소스를 가리지는 않습니다
crit : 책좀 그만 읽으세요(웃음) 이건 아예 설계 안한거에요
A : 그렇지 않습니다. 제 의도는..
crit2 : 아니(웃음) 이해 못했네..아
crit : 제 말 이해안되죠?(웃음)
crit3 : 문제가 없는게 문제야(웃음)
#3
crit: 여기는 동선 바깥쪽으로 돌려요
A : 안됩니다. 계단이 안쪽에있고 좌석이 바깥쪽에 있어야 더 앉는 공간을 많이 확보할 수 있고 동선이 다른 활동을 방해하지 않습니다.
crit : 쇼팽...그 노래 알아요?
A : 네?
crit : 딴딴...딴...딴.. 천천히 흘러가는 흐름이 있잖아요? 이해되요?
A :아... crit: 뭐라고 제가 더 설명해야할지 모르겠네요(웃음)
#4
Q 풀필먼트.. 그게 무슨뜻이죠?
A 제가 말씀드리는 MFC는 도심 내에 배치된 소규모 물류센터로서, 단시간 내에 라스트마일..
Q 아니, 물류가 발달할수록 원격화 되잖아요? 그럼 도심밖에 있어야죠
A 아닙니다. 도심밖에서 대량으로 물류를 들여오는 개념이 아니라, 도심내에 있어야 다품종 소량배송을 빠르게 해낼 수 있기 때문에.. Q 그건 논리에 맞지 않는것같아요
A 네?
#5
Q 미셸 푸코의 헤테로토피아는 좋은 유토피아가 현실에 있는걸 말하는거잖아?
A 아닙니다.. 헤테로토피아는 다른 장소, 즉, 예시인 사창가나 감옥과 같이 딱히 이상적인 것들이 아니라 가치중립적인 개념으로서 기존 맥락에서 일탈된 이질적인 장소개념입니다..
...
사실, 읽어보면 알겠지만 논리의 영역도 분명히 있긴하다. 하지만 그것은 인정되지 않기 때문에, 없는것이 된다.
앞서 있었던 '해석노동' 글에서 명확한 지시어의 사용이 언급 되었던것 같은데, 이 사례들이 증명하는것 같기도 하다...
검증가능한 가설, 논리와 체계, 입증...실험... 모든게 해체된다. 남는건 누가 더 확신에 차서 말하고, 누가 더 권위가 있는가.
그들은 전세계 유명대학들에서 새로운것을 배워왔다고 주장하는 석박사들이다.
ㅡ
이상하게 요즘따라 힘들다. 어느순간 완전히 망가져버릴지도 모르겠다. 주말없는 일상도 그렇지만, 그보다 내가 그렇게까지 해온일들이 무의미했다는 평가들이 더 그렇다. 내가 언제나 제3자의 시선을 필요로 하는 이유이기도 한것같다. 하지만 그것은 결국 또다른 해석노동과 감정쓰레기통을 만드는것은 아닌지 늘 두렵다.
나는 차라리 법칙이 실존했으면 좋겠다. 없는가? 그렇다면 자유로웠으면 좋겠다.
그러면서 들은 말이다. "다들 그렇게 살아"
정말 그런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