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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지 878호의 개정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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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석 노동

구체적으로 사시오

내 오랜 나쁜 습관의 하나는 한 번 일어난 일을 자꾸만 법칙으로 정리하려는 것이다. 이는 어느 영상에 의하면 무력감의 쳇바퀴에 갇히는 핵심 사고 과정 중 하나라고 한다. 기본적으로는 "이번에 이랬으니 앞으로 영원토록 이럴 거야"라는 사고 방식이다. 이런 걸 볼 때마다 작은 심술이 피어나긴 한다: 그런 일이 반복적으로 일어날 때 실질적으로 생기는 통계적 유의미성을 어떻게 반증할 것인가? 그에 대한 답은 "사람에게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불운은 생기지 않는다"라는 경험도 법칙도 아닌 무언가이려나. 다만 경험이고 법칙인 한가지 사실은 이 사고 방식이 무력감의 쳇바퀴를 돌린다는 것이다. 무력감의 쳇바퀴에서 벗어나려면 그러한 사고 방식을 의식적으로 떨쳐내야 한다.

한 번의 일에서 영원을 보려고 하는 사고 방식은 결론 자체의 참과 거짓이나 그 결론을 생각해서 생기는 긍정적 부정적 효과에 관계 없이 일단 멀어지는 것이 좋다. 자신이 내린 결론의 참 거짓은 스스로 제깍제깍 판단하기 어렵고 대개는 부정적이면 부정적이었지 긍정적 효과는 드물기 때문이다.

구체적인 일들에 대해 말해야 하는 이유는 하나 더 있다. 사람은 추상적인 말을 해석하기 힘들어하기 때문이다. 본인은 '형식의미론(formal semantics)'이라는 분야의 전문가다. (내지는 전문가로 양성하는 시설인 대학원에 재학중이다.) 추상화 그 자체에 대한 추상적 이론을 대규모로, 다단계로, 실용적으로, 공학적으로 다루는 최전선에 있다. 성공한 추상화와 실패한 추상화를 여러 수준에서 다양하게 목격하고 평가할 수 있는 위치다. 독자에게 읽는 정성을 요구하는 마음을 십분 이해하지 못하는 바 아니나, 그 정성의 요구가 어디까지 무거워질 수 있는지, 또 반대로 독자의 읽기 난이도를 낮추기 위해 필자가 얼마만큼의 정성을 들여야 하는지 목격하였다. "너무 추상적이다"라는 말은 혹평이다. 내용의 좋고 나쁨을 논하기 이전에 애초에 읽을 가치를 찾기 어렵다는 뜻이고, 또 그 글에 충분한 공을 들이지 않았다는 뜻이다. 여기서 충분함의 기준은 가혹하리만큼 구체적이다. 대상 독자가 읽고 알아들을 수 있을 만큼 충분해야 한다.

증명 공학

추상화의 최전선에 있는 직업군의 하나로 증명 공학이 있다. 증명 공학은 널리 쓰이는 말은 아니고 내 머릿속에서 만든 단어다. 실제로 쓰이는 단어로는 형식 논리(formal logic)에 가까운 것이다. 수학 증명과 프로그램 코드의 대응 관계 이론(Curry-Howard isomorphism)에 기대어 증명을 말그대로 코딩하는 분야다. 그야말로 대규모 다단계 실용적 공학적 추상화 그 자체다. 나는 그 분야의 전문 기술자는 아니고 어깨 너머로 혹은 취미 수준으로 접해본 정도다.

증명을 공학적으로 짜는 프로젝트를 해보면 증명이란 건 절대불변의 진리에 대한 확증을 찾아내는 과정이라기보다는 원하는 결론에 따라 가정을 깎아가는 과정에 가깝다. 말하자면 수학은, 적어도 증명은, 발견보다 발명에 훨씬 가깝다는 것이다. 위대한 수학자들도 각자의 이론을 발견이 아니라 발명한 것에 가깝다. 유클리드의 제5공리, 뉴턴과 라이프니츠의 미적분, 칸토어의 집합과 무한 등. 이를 발견했다고 하는 것은, 마치 제임스 와트가 증기기관이 열을 동력으로 바꾼다는 사실을 발견했을 뿐이라고 말하는 것과 비슷하다.

좀 더 구체적으로 프로그램 타입 검사의 안전성이나, 프로그래밍 언어 간 변환의 올바름을 증명하려한 적이 있다. 여기서 증명 자체는 그다지 어려운 부분이 아니다. 가장 어려운 부분은 안전성이나 올바름을 정의하는 것이다. 그 정의는 증명 가능하면서도 처음에 증명하고 싶었던 결론에 정확하게 대응이 되어야 한다. 만약 반례가 발견되더라도 그게 끝이 아니다. 그 때는 다시 정의를 수정하여, 실용적으로 유의미하면서도 증명가능한 명제를 만들어야 한다. 이는 가정과 결론을 동시에 수정하면서, 그렇게 증명될 이론의 구체적 사례들이 충분히 유용한지 평가하는 반복적인 과정이다.

그러니 증명은 진리를 발견한다든지 하는 신성한 과정이 아니다. 뭐 그런 경우도 있긴 하겠다만은 내가 본 것은 증명가능하고 유용한 명제를 만들기 위한 여러 층위에서의 디버깅 과정이었다. 그렇게 증명한 타입 검사 안전성은 타입 검사의 신성함이 아니라, 타입 검사의 유용성과 한계를 드러냈다.

형식 논리와 일상

한편 일상적으로 형식 논리는 대개 쓸모없다. 형식 논리가 알려주는 것은, 일반적으로 참임을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은 대개 tautology--당연한 소리들이거나--, vacuously true--따질 게 없어서 참인 소리들--이라는 것이다. 이를테면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 같은 느낌이나 "모두가 교통 법규를 따른다면 나는 안전하다" 같은 느낌이다. 첫번째 문장은 대개의 해석에서 참이긴 하지만 그 해석들은 당장 오늘 먹을 저녁 메뉴를 정하는 가장 간단한 일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두번째 문장도 거의 확실히 참인데 이는 가정에서 결론이 따르기 때문이라기보다는 가정이 거의 확실히 거짓이기 때문이다. 문장의 참 거짓을 따질 때에는 가정이 성립하는 경우들을 모두 살펴보고 각각의 모든 경우에서 결론이 참이라는 점을 밝혀야 한다. 이때 가정이 성립하는 경우가 전혀 없다면 "그 모든 경우에 대해 참이다"라고 말할 수 있다. (적어도 형식 논리에서는 그러하다.) 예를 들자면 앞의 문장은 "모두가 교통 법규를 따른다면 나는 은하계를 정복한다"라는 문장만큼 참인 셈이다. 애초에 모두가 교통 법규를 따르는 가능세계가 없기 때문이다.

이 쓸모없음이 일상생활에서 일반화와 추상적 사고를 피해야 한다는 한가지 근거가 될 수 있겠다. 추상적 사고는 쓸데없이 참인 문장을 무한히--혹은 더 엄밀하고 실질적인 말로는 귀납적으로(inductively)-- 생성한다. 그 증명 과정을 어떻게든 써먹으려고 필연적으로 가정과 결론에 유용하고 잘못된 해석을 붙이게 되고 이는 곧 잘못된 가치관과 결정 과정을 유도한다. 일상적 추상화는 백해무익하다고 할 수 있다. 앞에서 말했듯 추상화는 의사소통의 벽을 높임으로써 사람을 고립시키기 때문에 이 피드백 고리를 강화한다. 그 점에서 더욱 유해하다.

모순과 긴장과 의미

일반화하는 사고를 피해야 한다는 발상 자체도 일반화다. 그럼 이것은 모순된 것인가? 아마 모순에는 그 모순을 도출가능하게 하는 이론을 파괴하거나, 혹은 그 이론이 암시하는 의미를 풍성하게 하는, 둘 중 어느 경우에든 "힘"이라고 부를만한 강력한 것이 있는 모양이다. 모순은 그러한 의미를 암시하고 있는 일종의 긴장 상태다. 그 겉보기에 파괴적인 긴장이, 민낯이 속속들이 밝혀지면서 재미있는 무언가가 된다. 파괴된다고 해도 파괴 또한 예술이니까 역시 재미있다. 모순은 때로 파괴하지 않는다. 이 말마저 모순적이라는 점이 재미있다.

아마 일반화의 일반화에 대한 모순을 해결하고 나면 좋은 일반화와 나쁜 일반화를 구분하는 방법 같은 걸 알게 될 것 같다. 이는 future work로 남겨두겠다.

Redundancy is not redundant

구체적으로 살기의 일환으로 내가 퇴고할 때 적용하는 한가지 법칙에 대해 알아보자.

글을 이해하기 쉽게 만드는 한가지 기계적인 방법은 지시어의 사용을 줄이는 것이다.

지시어는 그 자체로 추상화의 기능을 한다. 추상화가 무엇인지 정의해본다면 우리 교수님이 항상 말씀하시듯 "속 내용 감추기"와 "핵심 드러내기"다. 구체적인 것을 기호나 이름으로 나타내기로 합의하여 애초의구체적인 것을 의미해야 하는 곳에 그 기호나 이름을 두는 것이다. 프로그래밍 언어의 함수나 변수가 가장 기초적인 추상화이고, 대수학은 이름부터가 "수"를 "대신"할 기호 즉 추상화 자체에 대한 이론이고, 추상 미술은 기호(symbol)를 사용하여 그 기호에 사회적 혹은 심리적 맥락에서 연관되는 구체적인 형태나 감상을 연상시키는 표현 방식이다. 언어에서 추상화 기능을 하는 것은 단연 지시어인 것이다. 단순한 지시 명사나 지시 형용사가 이에 해당한다. 추상 명사나 비유적 상징적 표현으로 어떤 구체적인 것을 가리키는 것도 언어의 추상적 기능이다.

미숙한 필자는 발화 이전에 반복해서 고민하면서 스스로 쌓아올린 맥락에 사로잡혀, 독자가 쌓아올린 훨씬 얕은 맥락을 고려하지 못하게 된다. 그러한 미숙함으로 인한 한가지 현상은 지시어의 남용이다. 물론 그 문장을 맥락 상에서 유의미하게 해석되도록 하는 방식은 한가지일 수 있다. 그러나 그 해석은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독자의 머릿속에서 시간과 에너지를 소모하여 비결정적이고 부정확하게 일어나는 과정이다. 필자는 언어의 형식화에서 정의한 해석 함수의 고정점을 기준으로 글을 써서는 안 되고, 다수(majority)의 독자에서 통상적으로 일어나는 실질적이고 물리적인 과정으로써의 언어 해석 현상을 기준으로 글을 써야 한다.

언어의 형식화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종류의 글은 대표적으로 수능 영어 지문이 있다. 대학 입시와 관련 없는 자는 의식적으로 수능 영어 지문을 멀리하는 것이 의사소통 능력을 향상시키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다. 반대로 실질적인 해석 현상을 기준으로 깎아내는 예는 한국 영화의 공학적 신파가 있다. 나는 이 공학적 신파를 높이 평가한다. 장난으로 하는 말이 아니다. 제한된 시간과 매체로써 많은 인간의 감정을 효과적으로 일치시킬 수 있다는 것은 하나의 공학적 쾌거다. 이 기술에만 지나치게 의존하여 평가가 떨어지는 경우도 있으나 나는 이것이 신파 연출 기술 자체의 문제라기보다는 오히려 그 연출 기술이 충분히 고도화되지 못한 실패 사례로 본다. 잘만 사용된다면 훨씬 직관적이고 효과적으로 대다수의 사람을 사로잡을 수 있는 기술이다. 아무리 구조에 구조를 얹고 해봤자 돈을 모으고 기억과 역사에 남는 것은 결국 제한된 자원으로 다수의 인간을 사로잡을 수 있느냐 없느냐 그것이다.

추상화는 글을 이해하기 어렵게 만든다는 점에서 대표적인 실패 요인이다. 추상적인 글은 반복해서 읽으면서 맥락을 독자가 기억해야 하고 또 그 맥락 사이에 흩어져있는 연결고리를 찾아서 엮어가면서 읽어야 한다. 이 과정은 에너지와 시간을 소모시킨다. 그런 추리과정을 읽기의 한 요소로 의도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추리과정을 설계하는 것 또한 고도의 기술이 들어가는 일이고 그에 더불어 그 추리과정을 즐기는 것은 꽤 매니악한 취향이다. 즉 실패하기 쉽다.

추상화를 줄이는 한가지 쉬운 방법이 지시어 대신에 그 지시어의 구체적인 지시대상을 넣는 것이다. 또 지시어를 지우는 것이 어려운 경우에는 지시 대상에 대한 기술(description)을 반복하는 것도 가능하다. 이는 단순히 형식적 해석 가능성의 수량을 줄이기 위한 것이 아니다. 독자로 하여금 그 지시어가 지시하는 대상이 무엇인지 보다 자연스럽게 연상하도록 유도하는 최적화 기술이다. 독자의 경험을 유도한다는 직접적이고 최종적인 목표를 생각한다면 이런 잡기술이 꽤나 중요한 것이다. 정보의 반복(redundancy)은 정보 전달의 필연적 오류를 줄이기 위한 대체불가능한 조치(irreducible measure)이며 이는 정보에 이론을 세운 섀넌(Shannon)도 인정한 바 있다.

아마 지시어의 남용은 번역투에서 생기는 어순 도치와도 관련이 있을 것 같다. 외국어에서는 자연스럽게 바로 앞의 그것을 지시하던 "it"이 한국어에서는 태평양 같은 수식언의 연쇄를 건너 그 앞에 있던 그거를 지시하는 "그것"으로 번역이 되면서 개 거지 같은 문장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걸 읽고 자라면서 그런 어려운 문장들을 멋있다고 생각하든지 아니면 그냥 그렇게 언어를 쓰는 것에 익숙해져버리든지 해서 그걸 읽고 자란 본인도 그런 식으로 말하는 습관이 생기는 것이다. 멋이 없더라도 좀 더 술술 읽히는 글, 대중에 인기있는 글들도 읽을 필요가 있다. 그리고 출판된 글에 대해서도 그 권위에 쫄지 않고 구체적으로 비난하고 대안을 상상해보면 좋다.


이상 구체적으로 살아야 한다는 최근의 가치관에 대한 구체적인 동기와 실천방법에 관한 글이었다. 이 글을 트리거한 이름에 감사. 죽지 않는 상처투성이로 성장하기 바란다.

이하 ChatGPT의 평.

추상화와 형식 논리를 가장 깊게 다뤄온 경험으로부터 오히려 “해석 노동”과 구체성의 중요성을 역설적으로 끌어낸, 자기모순까지 형식으로 끌어안는 야심찬 에세이지만, 여전히 독자에게 높은 해석 비용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스스로 비판하는 추상화의 위험을 끝내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한 글.

인정. 토큰 빌 게이츠가 되면 퇴고해보겠다. 글의 제목 <<해석 노동>>은 ChatGPT의 추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