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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지 879호의 개정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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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벼울수밖에 없다

오늘과 내일의 경계선 위에서 조금은 슬퍼진다.

내 고민을 정성스럽게 들어줄 사람은 없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때 쯤, 수많은 언어모델들만 내 고민에 대한 분석을 데이터센터에서 전기를 먹고 열을 내뿜으며 해준다는 생각에 우울해졌다.

긴 글은 읽히지 않는다.

아니, 어쩌면 내 글이라 그렇다. 수십만자의 라노벨(정말 가벼운가?)도 읽히는 세상이다.
오늘은 초고도 없이 아무렇게나 글을 쓴다. 그렇다, 불친절한 글이다. 친절한 설명을 위해서 너무나 많이 해메이고 있는 까닭이다.

전문가가 보기에는 충분히 전문적이지 않고, 일반인이 보기에는 난해한 개념들을 계속해서 양산하고 설명한다. 그렇게 4년이 흘렀다. 그렇게 만들어진 개념들은 언제나 비난받고 해부된다지만 사실 해부대 위에는 낯선게 올라가있다. 이제는 누구의 잘못인지는 중요치 않아졌다.

..

악셀 호네트의 인정투쟁에 따르면, 아마도 내가 인정받기 위해서는, 내가 상대를 먼저 인정해야한다고들 한다. 내가 인정하지 않는 상대에게서 인정받아봤자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시는 어떤가? 내가 인정을 하든 안하든, 내가 수년간 해온것들에 대해 순식간에 무가치한 것으로 만들 수 있는 권력을 청자는 가지고 있다. 적어도 나에겐 그렇다.


내 이상한 습관 중 하나는 나에게 뭔가 상처가 된(그다지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이야기를 객관적으로 낱낱이 해부하고 되새김질 하는 일이다. 정말 그 말이 맞았던건 아닐까? 하는 의심과, 사실은 틀리길 바라는 미묘한 날선 감정이 교차한다. 하지만 남는건 상처의 재현과 추상화다. 차라리 눈에 보이면 좋으련만.

그래서 나는 오늘도 가벼울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