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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지 831호의 개정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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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 마무리

졸업은 우울했다. 졸업하고나서 사람이 행복해보이는 것은 졸업이 지나갔기 때문이다. 왜 그리도 우울해야 했을까.

어쨌든 삶의 한 모퉁이를 도는 일이니 매듭은 잘 지어놓기로 했다. 비록 졸업앨범은 찍지 못했지만 졸업식만은 제대로 치르고 왔다. 그리고 축하하는 마음들을 잘 받아왔다.

그 마음들 가운데 두 다발의 꽃다발은 컵에 물을 받아 꽂아놓았다. 그뒤로 보름이 지났다. 꽃들도 처음의 생생한 빛을 잃었다. 최근에는 물 속에서 썩기 시작한 꽃들을 어떻게 처리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꽃은 분리수거에서 일반쓰레기에 해당한다. 하지만 나는 이 꽃들을 차마 쓰레기통에 버릴 수 없었다. 빛을 잃은 꽃은 쓰레기인가? 색과 생기는 잃었을지언정 피어난 그대로 시든 꽃들은 여전히 그 기품을 유지하고 있었다.

단지 예쁜 것을 버리는 게 아까운 게 아니었다. 시든 꽃을 쓰레기통에 버리는 건 졸업을 축하한 마음들을 버리는 듯한 기분이었다.

산 속에 심어놓고 올까도 생각했지만 덩그러니 방치되어있을 것을 생각하면 이쪽도 마음이 퍈치않다. 그러다 꽃을 매달아 말리기도 한다는 걸 알게 됐다. 찾아보니 그렇게 말린 꽃은 작은 병에 담거나 다시 다발로 묶는다고 한다. 이렇게 하면 꽃의 아름다움을 지속가능한 모습으로 유지할 수 있다.

일단 서로 엉킨 꽃들을 풀어헤쳐서 늘어놓아보았다. 꽃들을 굳이 말릴 필요는 없어보였다. 아래쪽 줄기는 물에 잠겨 축축했지만 꽃 근처의 윗부분은 바싹 말라있었다. 꽃을 어디 담을까 하다가 종이컵을 써보기로 했다. 그냥 담아서는 세울 수가 없을 테니 뒤집은 종이컵 바닥에 구멍을 뚫어 꽂아놓았다. 어떤 모양이 될지 긴가민가 했지만 한 시간 정도 사부작거리고 나니 그럴듯한 모양새가 나왔다.

무엇보다도 졸업을 축하하는 마음이 담긴 꽃을 계속 기념하여 간직할 수 있게 됐다. 졸업 뒤에 남는 것은 여섯 컵의 축하. 졸업이란 게 그런 거라면 그리 나쁘지 않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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