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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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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포스터인가? 지금은 그렇다. 살아가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목표를 “삶”으로 정의한다면, 지금 내 삶은 3일 뒤 열릴 학회의 포스터다.

이 사실에 대해 생각해볼만한 점이 여럿 있다.

1. 잘 정의됨

어떤 것을 어떤 성질에 따라 정의할 적에, 그 성질을 만족하는 것이 딱 하나가 있으면 잘 정의됐다고 한다. 이를테면 “자연수 덧셈의 항등원을 0으로 정의한다”라고 할 때, 자연수 덧셈의 항등원이라는 성질을 갖는 것은 하나밖에 없으니 바로 그것을 0으로 정의하면 잘 정의된다.

위에서 삶은 잘 정의되었는가? 사안 사이에 어느게 더 중요한지가 잘 정의된다면 가장 중요한 것도 잘 정의될 것이다. (한 사람의 삶은 유한하므로 사안의 종류도 유한하다. 순서가 잘 정의된 유한한 구조에서 최대값은 항상 잘 정의된다.)

2. 맥락 안의 의미

일상적으로 쓰이는 문장들은 특정한 맥락 안에서만 의미를 갖는다. 이를테면 “어제 비가 내렸다”는 말은 분명히 의미를 가져 진위를 판단할 수 있지만, 오로지 그 말을 꺼낸 시점과 그 대화에서 상정하고 있는 위치를 고려할 때만 그러한 것이다. 그중 시간과 주체는 가장 기초가 되는 맥락이다. 다시 말해, 말하는 이와 말하는 때가 하나로 정해지면 문장의 의미도 하나로 정해진다. 반대로 누가 언제 말했는지가 없으면 문장의 의미도 하나로 정해지지 않는 일이 흔하다. 이론상 누가 언제 말하든 의미가 명확하여 참인 문장들도 있을 수 있지만 그조차도 대개는 어떤 맥락과 가정을 상정하는 것이다. 가장 단순한 논리학조차도 맥락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는 경우가 흔하다.

위에서 내린 삶의 정의 역시 누가 언제 따지냐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 특히, 삶이란 지금 내게 만 포스터다. 다른 이나 일주일 뒤의 내게 물었을 때 삶이란 포스터가 아닐 것이다.

앞에서 삶의 잘 정의됨은 중요도의 순서가 잘 정의됨에 따른다고 하였다. 하지만 살아가면서 중요도의 순서는 항상 바뀐다. 그럴 때마다 삶의 정의는 바뀌어 한때 삶이었던 것이 그다지 삶이 아니게 된다. 흔한 일이다. 포기한다든지, 실연한다든지, 사별한다든지…. 그 직전에 삶이란 사라지려는 것을 계속 있게 하는 것이었지만 사라져버린 그 순간 뒤에는 사라진 것을 다시 있게 하는 것보다 밥을 먹고 잠을 자는 게 더 중요하다. 또 그렇게 바뀌었음을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

3. 맥락 안의 삶

삶은 맥락이 다르면 다르다. 이것은 사실이라기보다는 그래야한다는 나의 주장이다.

우선 모든 주체를 아우르는 삶이란 애초에 상상할만한 것조차 아니다. 어떤 것이 모두에게 똑같이 중요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많은 폭력 사태의 시작점이다. 보편적으로 중요하지 않은 것들의 예로 성지의 탈환, 아리아인의 순혈, 내선일체 등이 있고, 편파교육이나 세대갈등 등도 각자의 가치관이 보편타당하다는 착각에서 비롯된다고 본다. 나는 그런 모두에게 똑같이 중요한 것이 애초에 존재해야한다는 주장에 반대한다.

주체를 하나로 한정하더라도 내가 보기에 모든 시간을 아우르는 삶은 없는 편이 낫다. 삶이었던 것이 삶이 아니게 될 때마다 삶 전체를 폐기하는 안을 정당화하게 될 것 같다. 이건 내 개인적인 경험에 의한 것이다. 특별히 야망이 없는 인간이라 그런지 몰라도 내 삶은 내내 사소하고 자주 바뀌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언제나 삶인 것만을 삶으로 정해서는 잘 정의되지 않았다. 특히 그 존재성이 의심스러워진다. 의심이 확신이 되는 순간 진지하게 자살을 고려하게 되는 건 아닐까 두려웠다. (주변에 자살은 생각보다 흔했다.)

하지만 지금 내 삶, 즉 “지금 내게 가장 중요한 것”으로만 한정하면 그것은 좋든 싫든 언제나 의미가 있어 잘 정의된다. 한때는 삶을 찾는 게 삶이었지만 바쁘게 생활하다보면 대단한 삶을 찾는 것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오히려 삶을 찾는 데 매몰되지 않는 편이 죽음에서 더 멀었다. 잘 정의되고 잘 작동하는 삶의 정의가 있으니, 가만히 앉아서 고민하면서 심연 속을 멤돌기보다는 그 시간과 힘을 아껴 지금 내게 닥쳐오는 삶을 사는 게 나은 것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삶은 보편타당하지도 절대적이지도 않고 그저 각자의 당시에만 의미 있다고 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느껴진다. 그러니까 삶이란 뭐 대단한 게 있다기보다는 그저 포스터라고 말하는 게 더 정확하다.

4. 디테일에 관한 여담

사실 삶은 가장 중요한 것으로만 정의해서는 안 된다. 제각각의 중요도의 양적 분포를 감안하지 않고 가장 중요한 것으로만 축약해버려서는 건전하게 살아가지 못한다. 이를테면 나는 밥도 안먹고 잠도 안자고 포스터를 만들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번 글에서는 삶이 잘 정의된다는 점 자체와, 그 잘 정의됨이 단순하지는 않고 배경에 있는 맥락을 고려해야만 잘 정의된다는 점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말하자면 삶은 포스터인 점도 분명히 있는 것이다.

시정하자면 삶은 포스터와 할머니 생신과 공장 게임과 기타 등등이다. 하지만 간단히 말해 여전히 삶은 포스터이고 대단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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