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손잡이해방연대 아지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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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석-중독자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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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맥락중독자

   흔히 직업이나 강한 관심분야를 가지면 끊임없이 관계없는 맥락에서도 무언가를 발견한다고 한다. 내가 영화를 보는데 뜬금없이 옆에서 "어? 영화 배경이 1997년이라면서, 왜 그 이후 생산된 차량 모델이 나오는거야? 고증오류네"같은 말을 하거나 어느 건물에 갔는데 "이거봐, 이런게 시공 잘못된거야. 넌 이렇게 하면 안된다"같은 말을 들으면 직업병이라는 말은 마치 점 3개만 찍어 놓으면 얼굴로 인식하게 된다거나 망치를 들고있으면 모든게 못으로 보인다는 것과 같다. 어떤 맥락에 중독되면 모든게 그 논점으로 통한다.

   과잉 해석의 순기능
   
   이것은 일종의 해석의 힘인데, 세계관은 해석자가 가장 매력적이라 느끼는 해석적-이론들의 집합이라는 구조로 간주한다면, 더 행복하게 볼 수 있으면서 더 매력적인 해석을 내놓는 것만 가지고도 우리는 행복해질 수 있을까?(사실 우린 이걸 정신승리라고 부르기로 했다.) 어떤 분야에 무지할수록, 그럴싸한 이야기에 잘 현혹되고, 매력적이라고 느끼기 쉽다. 만약 여기까지의 이론이 그럭저럭 타당하다면, 내가 (예비)직업병을 살려 아무것도 아닌 공간 들을 꽤 괜찮아 보이는 공간으로 해석(선동)해 보겠다.
  
  
1. 사람들로 가득 차 북적이는 지하철 공간   
   지하철은 도시의 기반시설로서, 집과 필요한 바를 충족시켜주는 외부세계를 연결시켜주는 도시스케일의 경계공간이다. 이를통해 우리는 현실로부터 스스로를 괴리시켜 끊임없이 유동하는 존재가 될 수 있었다. 기능적인 직주근접과, 직장이나 타인에 대한 원격성을 충족하고자 하는 모순된 욕망을 해결하는 방법은 주거공간의 수직적 적층과 도시공간의 수평적 확장이었다. 서울은 그 두가지를 아파트와 지하철을 활용해 동시에 달성하고자 했다. 렘콜하스는 그의 저서 '정신착란증의 뉴욕'에서 시장경제에 의해 발생되는 집단-무의식적 쾌락 충족이 현대 도시의 기본 원리 중 하나가 되었다고 말한다. 이것은 일종의 '설계자 없는 설계'이다. 지하철은 익명적인 개별 주체의 의지 합인 승객수로서 정당화되고, 이것은 얼마나 지하철이 기능적인 합리성과 방법론적 민주성을 동시에 만족하고 작동하는지를 보여준다. 이것은 우리 사회의 윤리와 효율의 성공적 결합 사례로서 이해되어야 한다. 이동으로서 지하철의 또다른 장점은 익명성과 개인의 회복이다. 가정과 직장에서는 끊임없는 관여와 감시기구가 작동하고, 이는 생산성과 도덕성에 대한 자기 검열을 낳았다. 하지만 붐비는 지하철 내부는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무관심은 거의 완전한 익명성을 보장하고, 이동을 위해 이미 확보된 시공간은 '딱히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괜찮은 시간'이 된다. 온전히 개인으로 돌아와 자기검열적 죄책감에서 벗어난채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이동 시간이라는 강력히 정당한 명분을 얻는다. 사람들은 지하철에서 명상을 하거나, 영상을 보는 등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다. 이는 개인을 해방하는 공간임을 시인한다.

2. 건물과 건물 사이 틈새   
   합벽건축물이 아닌 이상 보통 건물과 건물 사이에는 틈새가 존재한다. 몇미터 되지 않는 짧은 간격을 두고 수많은 건축물이 서다 보니 자연스럽게 생겨난 공간이다. 이 공간은 방재의 역할을 수행하기도 하고 일정 수준의 채광과 환기가 가능하도록 하는 배려의 공간임과 동시에 사람들이 끊임없이 밀어내는 변두리 공간으로서 작동한다. 흔히 담배를 피거나, 불법으로 증축을 하거나, 쓰레기를 모아두기도 한다. 뉴욕의 거리에서는 뒷골목이 없다는게 흔히 문제로 제기되기도 하는데, 뒷골목이 없으니 대로변에 쓰레기를 쌓아두는 현상이 생기는 것이다. 풍선효과와 같이 우리가 불결하다며 없애려고 하면, 단지 다른 형태로 우리에게 다가올 뿐이다. 우리들은 흡연하고, 쓰레기를 만들고, 때로는 법을 어겨 공간을 확장하려고 하기도 한다. 이러한 우리들의 모습을 받아들일 수 있는 포용성이 높은 공간으로서, 이러한 건물 틈새는 우리의 행위를 긍정하고, 또 그것을 보고 싶어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배려하는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는 것이다.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알레한드로 아라베나라는 건축가는 대표작이 반쪽자리 집이다. 부족한 공공자금으로 더 많은 사람들에게 집을 지어주기 위해, 집과 집 사이를 비워두고, 세입자들이 나중에 여력이 생겼을때 직접 천장을 덮어 증축할 수 있게 만들었다. 이때의 거주자는 직접 자신의 공간을 구축하는 주체가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건물과 건물 사이의 틈새는 구조체와 사이에 존재하는 가능성의 공간으로서, 통로가 되기도 하고, 거주자의 필요에 따라 확장되기도 하는 공간적 버퍼가 되는 것이다.


   
   (설득이 잘 안되었다면 나의 무능이다...이걸로 밥 벌어먹고 살 수 있을지 모르겠다)
   
   각자의 관심사에서 기인한 기이한 해석으로 누군가 나를 선동해서 세상을 더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만들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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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관심한 대중 속에서 역설적으로 개인만의 시간을 찾을 수 있다는 게 재밌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