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들어 한 사람과 깊은 대화를 나누는 게 재미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한 사람이 현재 느끼는 기분과 하고 있는 생각을 이해해보고 그 기저에 있는 경험이나 그 사람에게서 일관되게 나타나는 기질을 파헤쳐보는 것이 재미있다. 이렇게 말하니 도덕적으로 허용되는 일인지 잘 모르겠는데 내가 생각하기로 아는 것은 죄가 아니되 그것을 쓰는 방식이 죄가 될 수 있는 것이기에 내가 알게 된 것이 불쑥불쑥 튀어나오지 않도록 정신 똑바로 차리고 잘 제어하는 것이 중요하겠다. 이 새로운 취미의 영향인지 모르겠지만 이로 인해 마주치는 모든 장면의 디테일을 바라보고 그 속뜻을 짐작해보는 습관이 생긴듯하다. 그리고 자세히 보아야 사랑스럽다는 어느 시의 한 구절처럼 세상 모든 것에 좀 더 애정을 담아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좀 더 친절한 사람이 되지 않았을까? 그러나 전속 운전수를 사흘 내내 하는 일은 사람의 체력을 완전히 바닥내기에 충분하다. 그 작업 자체의 강도보다도 탑승자들의 안전하고 즐거운 여행을 나의 각성과 집중 상태로 떠받치고 있다는 상황 자체가 큰 압박이었던 것 같다. 게다가 이 각성 상태는 마음대로 풀 수 있는 것이 아니라서 운전과 운전 사이의 한두시간 일정으로는 쉽게 휴식을 취하기가 어렵다. 밤과 아침이 너무 즐거워 잠을 충분히 자지 못한 탓도 분명 있을테다. 뭐, 젊을 때만 해볼 수 있는 여행이 아닐까. 그런 이유로 최근 단기간에 내 사회성의 맥시멈과 미니멈을 찍어볼 수 있었다. 맥시멈은 최근 사람을 이해하고 대하는 연습을 자주 해다보니 친절력이 단조증가하여 찍어본 것이고, 미니멈은 사람과 세상을 이해하고 대하는 일이야말로 가장 에너지가 드는 일이어서 기력이 바닥났을 때에 세상을 읽는 일부터 중단하게 되는 내 모습으로 확인을 하여 찍어본 것이다. 나는 체력이 바닥나면 감정체계가 고장이 난다. 자꾸만 눈물이 나고 모든 일에 짜증이 나는 것이다. 이걸 그냥 누가 다 받아주고 들어주면 좋겠는데 받아줄 사람이 없다는 점에 한없이 외로워진다. 또 말의 필터가 꺼지면서 해도 되는 말과 해서는 안 되는 말이 구분없이 생각나는대로 나오게 된다. 이 말이 대화를 어디로 이끌지 뻔히 보이는데 그것을 생각할 시도조차 하지 않게 된다. 이 상태가 친구들과의 관계 상으로도 여행의 안전 상으로도 다소 위험한 상태라고 스스로 판단이 들어, 잠시 초보운전자 친구에게 운전을 넘기고 쉬기로 결정을 했다. 나중에 다른 친구가 “중원아 너 결국 꺾였다며”라며 말을 했는데(모난말은 아니었다) 난 그 말을 들으며 꺾이지 않는 마음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꺾였을 때 꺾였음을 잘 알아채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쉬는 것도 저절로 되는 것은 아니었다. 각성상태에서는 보기 싫고 듣기 싫어도 자꾸만 자극이 들어오고 자동으로 해석 프로세스가 돌아가는 느낌이다. 그게 너무 피곤하고 하기싫고 그냥 잠들고 싶은데 각성이 유지가 되는 것이다. 그럴 때에는 새로운 자극을 완전히 차단해야 한다. 첫째로 사람을 쳐다보거나 사람 말을 들어서는 안 된다. 한 사람에게서는 하나의 세계가 계속 흘러나오기 때문에 모든 몸짓이 새로운 해석거리가 되어바린다. 둘째로 어떤 풍경이나 정형적이지 않은 나무 무늬 같은 것을 바라보아서는 안 된다. 무언가 패턴을 자동으로 찾게 되는데 그짓거리 자체가 피로감을 더 누적한다. 그래도 눈을 어딘가에는 두어야한다. 눈을 감으면 말소리를 읽는 프로세스가 모든 자원을 잡아먹기 때문이다. 겨우 찾은 눈을 둘 곳은 “전복의 효능”이 적힌 글이었다. 문장들은 크게 의미가 없었다. 다만 글자들이 깔끔하게 프린트되어있었다. 글자를 쪼개 숫자처럼 읽어보는 이상한 짓을 해보니 그건 힘들지는 않았다. 약간 어릴 때 밥먹다말고 달력을 한참 쳐다보면서 멍때렸던 일이 생각났다. 처음으로 차 뒷좌석에 앉으니 참 편했다. 그러나 뒷자리에서도 운전하는 친구한테 이것저것 훈수를 두는 자신을 발견했다. 그래서는 쉬고 회복할 수가 없기에 신경을 어떻게든 꺼보기로 했다. 우선 헤드셋을 쓰고 맨날 듣는 노래 세곡을 반복재생해놓았다. 이러면 이미 완전히 분석된 예측가능한 리듬만 들리기 때문에 소리에 고통받지 않는다. 그리고 내가 감동했던 만화와 영화들을 떠올렸다. 눈물이 성공적으로 나게 되었는데 친구들은 내 눈물에 무관심하거나 당황할 것이고 그 당연한 일이 상처가 될 것이기 때문에 나는 외투를 뒤집어썼다. 혼자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내 스트레스는 노래를 내지르거나 눈물을 흘리는 것으로 해소가 되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이 눈물을 받아줄 사람이 없다는 것은 쓸쓸했다. 그래도 위로가 되는 이야기들이 있었다. 만날 수 없는 평행우주나 오지 않을 머나먼 미래에서도 사람들은 똑같은 고뇌와 똑같은 애정으로 서로를 이해하려고 하고 있는 그 장면들을 떠올리면서 그걸 읽을 때 느꼈던 벅차오름을 홀로 되새기고 있었다. 그 순수한 힘듦의 상태에서 어떻게 홀로 일어설 수 있는지 방법을 알게 된 것 같다. 차를 타고 도착한 카페에서도 비슷한 방법을 구사했다. 사람을 쳐다보지 않고 헤드셋에 노래를 크게 틀고 익숙한 책과 문장들을 유심히 쳐다봤다. 그러고 있으니 꾸벅꾸벅 조는 것이 가능해졌다. 그 뒤로는 그래도 약간 회복이 되어 남은 여정을 잘 마무리했다. 이번 여행으로 적절한 운전의 양을 알게 됐달까, 적어도 혼자서 사흘내리 운전하는 것은 너무 위험한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누군가는 그 정도 했으면 돈을 받아야한다고 얘기를 하는데 그 말도 틀리진 않은 것 같다. 뭐 그렇다고 돈을 받기는 좀 그렇고 자꾸만 생색 내는 인간도 되기 싫으니 그냥 다음에 또 여행 갈 일이 있으면 운전량 분배는 확실히 해야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와 별개로 여행은 너무나 즐거웠다는 점. 그렇게 즐거운 여행은 없었던 것 같다. 한 번 가봤으니 두 번 세 번 또 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바닥상태의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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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전 수고햇다이. 나도 사실 막날 카페에서 낮잠자고 일어나니깐 죽을거같아서 차에 혼자 쉬면서 있으려고 나가려햇엇음 ㅋㅋ
고생 많으셨어요~ 덕분에 여행 안전하게 즐길 수 있어서 감사했습니다
덕분에 너무너무 즐거운 여행을 했는데 담번엔 저도 운전 연수해오겠습니다~~
덕분에 즐겁게 여행했어요 감사합니다~~ 수고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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