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년 3월 1일,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을 다녀왔습니다. 처음에는 목적지가 과학관과 미술관으로 중첩되어 있었지만 서울대공원역에 도착하면서 미술관으로 붕괴했습니다. 과학관은 아무래도 어린 친구들의 눈높이에 맞춰져있으니 기대에 비해 흥미가 떨어지리라는 생각이었습니다.
미술관은 역시나 옳은 선택이었습니다. 미술관 자체의 컨텐츠가 즐겁기도 했고, 무엇보다 관람료가 공짜였습니다. 삼일절 기념이라네요. 아마 과학관도 비슷하게 운영했겠지 싶지만 확실치는 않습니다.
과천 미술관에는 회화 작품은 많지 않았습니다. 야외에 전시된 설치 작품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고, 옥상 정원의 조성과 그 주변의 조형물도 모두 설치 예술이었습니다.
옥상 정원은 살아있는 식물을 다양하게 배치하여 사계절에 걸쳐 정원의 모습이 살아바뀌는 것을 의도했다고 합니다. 오늘 본 것은 그 작품의 편린에 불과하겠네요. 평소 작품이나 인물의 이름은 잘 기억하지 못하는 편이라 정원 이름을 말씀드리기 어렵겠네요.
산업디자인의 역사를 톺아보는 전시도 있었습니다. 모든 홍보자료를 손으로 직접 그리던 시대의 정성과 그 ‘작품’들의 예술성이 느껴졌습니다. 지금도 계속해서 홍보자료를 컴퓨터로 그리는 사람들이 있겠죠. 그 분들도 예술가라고 부를만하겠습니다.
<다다익선>
무엇보다 즐겁게 관람하였던 것은 역시 이 글의 제목이기도 한 <다다익선>이었습니다. 여러분도 미술 교과서에서 한번쯤 보았을 작품입니다. 텔레비전 1003개를 쌓아 화려한 비디오를 재생하는 바로 그 작품입니다.
(사진: 최광모; 위키미디어에서 발췌)
이 작품이 과천 미술관에 전시되어있다는 것을 저는 오늘 처음 알았습니다. 작품의 규모를 직접 보면 이 거대하고 섬세한 구조물을 어딘가로 옮기기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즉 <다다익선> 처음 만들었을 때부터 그 자리에 상설 전시되어 왔다는 말입니다.
실물이 미디어를 재생하고 있는 것을 직접 볼 수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아쉽게도 상영 날짜와 시간을 맞추지 못했습니다.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다시 보고 싶네요. 대신 오늘은 <다다익선: 즐거운 협연>이라는 전시를 보고 왔습니다. <다다익선>에 대한 실무적인 뒷이야기에 관한 전시입니다.
<다다익선: 즐거운 협연>
<다다익선: 즐거운 협연>은 <다다익선>이 탄생하는 과정과 처음 전시 이후에 지금까지 이어져온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뭔가 많이 썼는데 로그인이 만료되어서 다 날아갔네요. 슬프지만 다시 쓰는 수 밖에 없습니다. 여기부터는 메모장에 적어서 옮기겠습니다. 너무 상심하야 그냥 자려했지만 도저히 잠들 기분이 안 들어 다 쓰고 가겠습니다. 개강은 무섭지만 이 슬픔을 일단 어찌해야 합니다. 대충 기억나는 내용들을 적어보겠습니다. 아뇨? 그것은 너무 기억나지 않습니다. 정보는 어딘가에 있습니다. 저는 여기에 감상 위주로 적을게요.)
특히 발주 계획서, 회의 필사록, 설계도 등 여러 실무적인 문서들이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그중 기억에 남는 것은 설계 과정에서 고민한 여러 기술적 난점들입니다. 구조물이 사다리꼴이라서 디스플레이를 설치하고 보수하는 작업이 어렵다든지, 구조역학적으로 그 수많은 디스플레이의 무게를 감당하도록 설계하는 게 어렵다든지 하는 이야기들입니다. 그런 고민을 유심히 살펴보며 마치 제가 그 당시의 기술자가 된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다다익선>은 작품을 유지하는 것도 쉽지 않았습니다. CRT 텔레비전의 수명이 10년 정도로 짧을 뿐더라 자기 디스크로 기록된 미디어 소프트웨어의 마모도 걱정해야 합니다. 게다가 최근에 작품을 복원해 다시 미디어를 재생하려고 했더니 CRT 텔레비전이 더 이상 생산되지 않는 로스트 테크놀로지가 되어 원형 그대로 복원하는 것이 불가능한 부분들도 있다고 합니다.
정작 창작자인 백남준은 여기에 크게 근심하지 않았던 것 같지만요. 백남준이 늘 하던 말이 있습니다.
예술은 짧고 인생은 길다
저는 이 말이 이상하다는 것을 조금 지나서야 알았습니다. 원래의 격언은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라는 말이죠. 백남준은 이 말을 비틀어 예술의 영원성에 집착하지 말 것을 주장했습니다. 덧없음이 아름다움의 필요조건이라는 제 생각도 이와 비슷한 맥락 아닐까요. 언제나 다시 와서 볼 수 있는 것에 대해서는 소중함을 잊기가 쉽습니다. 언젠가는 사라지기 때문에 너무나 소중하게 느껴지는 것들이 있지요. 추억..이 대표적이겠네요.
창작자가 좋든 싫든 별 생각이 없든 작품을 관리하고 전시하는 사람들의 입장은 아무래도 달랐겠지요. 저를 비롯해 이 작품의 감동을 또 느낄 수 있길 기대하는 사람도 잔뜩 있고요. 덕분에 10년 전시를 계획했던 작품이 지금은 30년 넘게 상설 전시 되어있습니다. 심지어 작년에는 다시 미디어를 재생하는 데에도 성공하여 현재는 일주일에 몇 시간씩 상영을 한답니다. 앞서 얘기한 것처럼 이제는 CRT로 구현할 수 없는 부분들도 있었지만 내부에 LCD를 넣어서 어떻게 잘 대체했다고 하네요.
글을 마무리하며
미디어아트의 선구자 백남준, 그의 대표작인 <다다익선>은 여러 사람들의 땀으로 빚어낸 결과물이었습니다. 심지어는 지금까지도 힘써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컴퓨터 전공자인 저도 어떻게 루트를 잘 타다보면 <다다익선> 관리 기술자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상상을 하면서 더욱 이입할 수 있었던 전시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