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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지 89호의 개정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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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생

어제 아침 파리 한 마리가 방에 침입했다. 아마 파리 입장에서는 방에 쳐들어오려 한 게 아니라 길을 잃었을 뿐일 것이다. 난 특별히 파리를 잡을 동기도 도구도 없었다. 또한 헤매어 들어온 거대한 동물의 영역이 그저 두려울 파리의 심정이 짐작되었기에 그저 들어온 길로 나가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파리의 기억력이란 너무나 원시적이다. 들어올 때에 나갈 생각을 하지 못한다. 그저 어쩌다 들어왔을 뿐 나가는 방법을 다시 찾지는 못하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분해와 조립은 서로 비가역적이다. 열역학 제2법칙에 따르면 바깥의 파리는 나가지 못하고 들어오기만 하여 내 방이 파리로 가득 찰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또 예상보다 파리는 너무 활동적이었다. 이 좁은 공간을 끊임없이 날아다니며 냉장고 소리에 버금가는 소음을 냈다. 모기와 같은 생리적으로 거슬리는 소리는 아니었지만 독립하기 전 우리집에 자주 들어오던 벌의 날갯짓을 연상시켰다. 실제로 오늘 아침 나는 벌이 나오는 꿈을 꾸었다. 파리를 내보낼 맥스웰의 악마가 필요했다. 파리를 설득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모기는 사람의 체취에 이끌린다. 나방은 빛에 이끌린다. 파리는 어디에 이끌릴까? 언젠가 파리는 공기의 흐름을 읽는 데 능하다는 이야기를 들은 바 있다. 파리를 내보내려면 창문을 열어놓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창문으로 통하는 바람에서 파리는 안과 밖을 구분할 것이다. 파리가 나가고 싶어한다면 열린 창문 앞에 설 것이다. 창문을 열어놓고 잠시 지나니 왱왱 거리는 소리가 잦아들었다. 파리는 방충망에 붙어있었다. 들어올 때와 같이 창틀 사이의 구멍으로 나가면 좋으련만 그만한 상상력은 없는 모양이었다. 방충망을 여니 파리는 반사적으로 잠시 날아올랐다. 이내는 열린 틈으로 빠져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