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의 그림자>를 읽기 전까지 용산 참사에 대해들어본 적이 없었다. 2008년 겨울 용산에서 집행된 철거, 철거민의 농성, 경찰의 진압, 화염병, 화재, 여러 죽음. 나무위키를 읽으며 알게 된 사건들이다. 철거가 부당했는지, 농성이 불법적이었는지, 진압 과정이 과잉했는지, 그러한 판단들은 나는 모르겠다. 나는 진상이니 인과니 선악이니 타당이니 하는 중요한 결정들이 저마다의 주관 속에서만 메아리치며 아무런 합의도 끌어내지 못하는 일들을 너무 많이 보았다.
한강 작가는 용산 참사를 바라보며 “저건 광주잖아…”라고 중얼거렸다고 한다. 그 사건이 5.18을 다룬 소설 <소년이 온다>의 집필 계기가 되었다. 또한 황정은의 <백의 그림자>도 용산 참사가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당시에 여러 사람들에게 국가폭력의 트라우마를 불러일으킨 사건이었다.
국가가 무고한 시민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일은 허용되지 않는다. 난 이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모두가 당연하다고 생각할 줄 알았다. 누구에게도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당연하니까 물어보지 않았고, 물어볼만한 곳도 없다.
강태진의 <사변괴담>은 6.25 전쟁 전후를 배경으로 한 옴니버스 공포 만화다. 보도연맹 학살사건을 적나라하게 그린 에피소드도 있고, 빨치산이나 여수순천 등에 대한 이야기도 자주 지나간다. 당대에 이념갈등을 배경으로 하여 반복되는 레퍼토리는, 이남에서 활동하는 빨갱이를 족쳐야 하므로 “어느 정도의” 희생은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그러한 희생은 국가가 주도하여 이루어졌다.
난 그런식으로 양민학살을 정당화하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 국민을 보호해야 할 국가가 되려 국민을 향해 폭력을 휘두르는 상황을 용인할 수 없다. 그러나 이 만화에 달리는 댓글을 보면, 그 정도의 폭력은 바람직하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때는 어쩔 수 없었다며, 저렇게 해야만 했다고 말하고, 심지어는 그건 잘한 일이고 앞으로도 계속되어야 한다는 듯한 뉘앙스도 느껴진다. 그런 가치관을 실천하는 사람들이 대낮의 거리를 떳떳하게 활보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공포스럽고…, 공포 이전에 어이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