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손잡이해방연대 아지트

사용자 확인중...

일지 722호의 개정판

본문 보기

<백의 그림자>

이상문학상 소설집과 함께 산 소설책이 황정은의 <백의 그림자>입니다. 생일선물로 받은 교보문고 상품권이 있어서 어떤 책을 살까 고민하다가 챗지피티한테 물어보니 <백의 그림자>를 추천하더랍니다. '백'은 일백 백 자인데 아직 제목이 왜 "백"의 그림자인지는 모르겠습니다.

내용은 한마디로 주인공이자 화자인 은교와, 은교와 같은 건물에서 일하는 무재가 가까워지는 이야기입니다. 주요 소재랄까, 설정은 뭐냐하면 자꾸만 사람 그림자가 일어섭니다. 자기 그림자가 일어서는 걸 본 사람들은 그림자에 자꾸만 이끌려 따라가게 됩니다. 소설은 은교가 자기 그림자를 따라가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은교는 그림자를 따라 숲에 들어가고, 무재는 홀린듯 들어가는 은교를 쫓차 들어와서는 둘이서 길을 잃습니다. 길을 찾아서 그저 걸으면서 무재가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무재의 아버지가 일어선 그림자를 자꾸만 따라가다가 수척해져서 죽는 이야기였습니다. 둘은 해질녘이 되어서야 어느 농장을 발견하여 하룻밤을 묵고 다음날 무사히 귀가합니다. 그게 소설의 첫번째 장입니다.

이후에도 그림자가 일어섰다는 사람들이 여럿 나옵니다. 제 감정이 들어간 해석이지만, 삶에 허무감 같은 게 들거나 괴로우면 그림자가 슬슬 일어난다는 것 같습니다. 자꾸만 이끌린다는 것도, 그렇게 자꾸 따라가면 좋지 않다는 것도 그런 허무감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요. 사람들마다 일어선 그림자에 대한 반응도 다양합니다.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어제와 똑같이 살아가는 사람도 있고, 그림자에 끌려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기도 합니다.

소설을 읽고 제 그림자를 들여다본 게 언제적인가 떠올려보게 되었습니다. 초등학교 때는 종종 그림자를 들여다보았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소설을 읽고난 요즘도 그림자를 한번씩 들여다봅니다. 집 안에 있을 때는 아무래도 흐리멍덩해서 재미가 없고요, 밖에서는 여름볕이 좋아서 그림자가 아주 선명합니다. 밤 산책할 때에도 길가의 가로등에 교대로 비치는 그림자를 감상해보아야겠습니다. 슬슬 제 그림자가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들거든요. 어쩌겠습니까. 그런가보다 하고 살아야죠. 재밌는 일도 일어날 겁니다.

이 책을 읽고 황정은 장편소설을 한 권 더 샀습니다. 인공지능 성능이 무섭게 발전한 것 같네요. 앞으로 잘 활용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여러분도 아무쪼록 그림자를 따라가지 않도록 조심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