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라는 노래가 있는데요, 최근에 가족이랑 돌아다니면서 라디오로 들었는데 계속 귓속에 멤돌더군요.
“지겨운가요, 힘든가요, 숨이 턱까지 찼나요. 할 수 없죠, 어차피 시작해버린 것을.”
요즘 드는 생각인데 제 삶에 대단한 목표가 없습니다. 불행한 일인 것 같아요. 행복이 기본값일 수는 없지요. 변화는 불안으로부터 일어나고, 삶이란 변화의 연속이니까요. 챗지피티한테 이대로 살아도 되는건지 물어봤습니다. 그랬더니 이대로 살아도 되는건지 고민하고 질문하는 행동 자체가 사는 법을 잘 찾아가고 있다는 증명이라더군요.
지겹고 힘듭니다. 어차피 시작해버린 것을, 창피하게 멈춰설 수는 없으니 계속하고 있는 것뿐일까요. 단 한가지 약속은 틀림없이 끝이 있다는 것이라더군요. 끝난 뒤에 지겨울만큼 오랫동안 쉴 수 있다는 건 별로 믿기지 않지만요.
버스를 타고 서울로 돌아오면서, 버스 기사로 먹고살게 된다면 어떨까 상상해보았습니다. 매일 같은 길을 운전하며 도시의 작은 변화들을 지켜보겠죠. 하지만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긴시간 운전을 하면 취미나 공부할 힘은 안 남을 겁니다.
만약 식당 사장으로 먹고산다면 돈 버는 만큼 힘들게 일해야 할 것 같아서 싫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런데 실은 무슨 일을 하더라도 그 일은 대개 지겹고 힘들겠구나 하는 걸 문득 깨달았습니다. 예컨대 연구하고 개발하는 일을 하더라도 제안서는 매번 써야 하고 행정 처리는 틈틈이 저를 괴롭히겠지요.
시지프 신화 2회독을 어제 막 마쳤는데요. 여전히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건지 정확히 모르겠습니다. 다만 갑자기 삶 전체가 붕 뜨는 느낌일 때, 그리고 자꾸만 그 느낌으로 돌아가게 될 때, 운명이 오로지 나의 것임을 상기하라는 메시지가 있는 것 같습니다. 메시지는 좋고 합당한데요, 단지 합당한 게 얼만큼의 힘을 갖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괴로움을 상쇄하는 무언가, 누군가가 삶에 있는 게 더 중요한 것 같습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길을 더듬고 있습니다. 한가지 발견한 건 숲과 들풀을 보며 걷는 일이 좋은 휴식이 되더라는 겁니다. 딱히 먹고 싶은 것도 하기 싫은 일만 가득하지만 들풀의 이름은 알고 싶은 것 같습니다.
요즘 아까시나무와 오동나무 꽃이 마구 피어있다는 것을 아시나요. 우리말에는 강인한 식물을 잡되다고 부르는 특성이 있습니다. 잡초니 잡목이니 하는 말들이죠. 잡초와 잡목처럼 힘차게 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