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밤은 이상하게 기분이 들뜬다. 어제의 약간 후텁했던 공기가 오늘 저녁 기분좋게 서늘한 공기로 바뀌었기 때문일까. 왜 공기가 서늘한 게 기분이 좋냐하면, 내 원래 이런 날씨를 좋아하는 탓도 분명히 있으나 터무니 없달까 그렇지는 않지만 그냥 어이가 없는 이유가 떠오른 것이다. (...) 조금은 쓸쓸한 마음이 들지 않지도 않지만 그 서늘함마저도 싫지 않은 느낌이다.
(...) 그러나 나는 역시 착각으로라도 스스로 확신하지 않는 한은 아무것도 안다고 말하지 않는 우유부단한 인간으로서 계속 아무것도 모르는 채(체?)로 있는다. 나는 너무 투명하고 얕았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투명하지 않고자 할 때에는 아무것도 내비치지 않았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거나 모든 것을 드러내거나. 그 사이 어딘가를 취할 수 있다면 참 좋을텐데... (...)
나는 모른다고 말해지는 모든 것을 해체하려는 정신이다. 그저 해체했을 뿐, 여전히 어느것에도 무능력한 상태에서 그것을 알았다고 주장하는 인간이 나다. 무지가 자아내는 아우라 같은 것에 미혹된 일은 없었던 것 같다. 모르는 것은 악이고 아는 것은 선이므로 나는 모든 것을 알고자 했다. 이렇게 문장으로 써놓고 나니 그 선악은 가릴 수 있는 종류가 아님이 선명해진다. 왜냐하면 세상에 선악을 가릴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모르는 게 꼭 악일 이유는 없는 게다. 아는 것을 모르게 되는 일은 없고 언제나 모르는 것을 알게 되는 일만이 있으므로 무엇이든 언젠가는 알게 되는 것이지만, 그것은 언젠가는 알게 될 일일 뿐인게고 때가 되기 전에는 알 필요 없는 것도 이 세상에 있는 게 당연할 테다.
졸린 것 같다. 잠을 잘 자고 밥을 잘 먹고 사람들과 즐겁게 이야기하고 집에서 잘 쉬고 그 뒤에 가장 맑은 정신으로 있으면 오늘 저녁 공기처럼 서늘한 슬픔이 찾아온다. 내 몸과 마음은 더할나위없이 건강한 상태이므로 그 슬픔은 나의 진짜 슬픔이다. 그 슬픔은 평소의 흐리멍덩함과 달리 아주 날카롭게 심장을 벤다. 그 살아있는 기분을 나는 긍정한다. 아마 꽤 사랑하는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