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나는 무언가에는 중독되어야 하는 사람이다. 활자 중독 내지는 책 중독이라 하면 대단히 생산적인 인간처럼 들리지만 오늘 오전 내내 누워있으면서 하루종일 책이나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내게 있어 책이란 이전에 유튜브가 하던 역할을 대체하는 효과적 해야 할 일 미루기의 수단에 불과하므로 별로 그리 훌륭한 현상은 아니라고 해야 할 것이다. 나는 성실하다든지 건실하다든지 하는 훌륭한 수식어를 붙일 만한 인간은 아니다. 과방에서 기한이 한참 남은 과제를 하는 나를 보면서 너 참 성실하구나 하는 견딜 수 없이 틀린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나는 단지 재미있는 일을 하면서 재미없는 일을 미루고 있었을 뿐이다. 그런 식으로 대답을 하면 과제가 재미있다니 너 참 대단하다 하는 말이 돌아오는데 그 말도 참 실없는 것이 단지 나의 취미가 이상하고 낯설다고 말하고 있을 뿐이도 그 말 안에 함의하는 그러므로 너는 이해가 안된다 라는 차가운 명제는 생각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일지 572호의 개정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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