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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지 565호의 개정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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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의 비밀

지금 사는 집에는 안 쓰는 공간, 시공자의 실수, 기능을 잃은 흔적기관, 전 세입자가 두고간 물건 등등 상상을 자극하는 기묘한 소재들이 많다. 평소에는 신경쓰지 않지만 꿈의 세계에서는 이 미스터리들이 저마다의 이야기로 꿈틀대기 시작한다.

저번에는 집에서 새로운 공간을 발견해 탐험하는 꿈을 꾸었다. 가보지 않은 복도가 길게 뻗어있었고 그 끝에는 내가 쓰던 부엌보다 더 넓고 깨끗한 부엌이 있었다. 그리고 위층과 아래층으로 이어지는 계단도 처음 탐험했는데 특히 아래층이 신기했다. 특별한 가구는 없었지만 밀도가 높은 무색의 가스가 차있어서 부력을 받아 공중을 헤엄쳐다닐 수 있었다. 꿈에서 깨니 이 집에 복도나 계단실은 없다. 쓰고 있는 부엌을 넘으면 세탁실이 바로 있고 위층에는 주인집 아래층에는 모임하기 좋게 꾸며진 지하실이 있을 뿐이다… 이렇게 쓰고나니 특별한 집인 것엔 변함없는 것 같다.

어젯밤에는 거실에 있는 전등 스위치에 대한 꿈을 꿨다. 거실에 전등은 하나인데 스위치는 둘이다. 한 스위치는 기능을 하지 않는데 아마 하나짜리를 달아야하는 것을 두개짜리를 단 것 같다. 화장실-부엌 스위치도 뒤집혀서 달려있는 걸 생각하면 전 세입자는 스위치를 잘 다는 데에는 별 관심이 없었던듯하다. 꿈에서는 기능하지 않는 스위치가 좀더 뻑뻑했다. 평소처럼 불을 켜고 끄다가 실수로 반대쪽 스위치를 건드렸는데 형광등이 깜빡였다. 고개를 돌리니 무수한 형광등과 텔레비전이 천장에 매달려있는 방이 있었다. 텔레비전마다 연도로 라벨링이 되어있는걸 보면 무언가의 로그를 모아둔 컴퓨터일 수도 있다. 뻑뻑한 스위치를 억지로 눌러서 완전히 켜니 집 밖에 불빛이 쏘아올려지는 것이 보였다. 집이 요새라도 된듯 동네에 미사일을 퍼붓고 있었다. 사람들이 몰려와 대문을 부수고 넘으려 했고 나는 집안으로 도망쳤다.

집에서 비밀공간을 발견하는 로망이 있는 것 같다. 본가에도 곰팡이가 잔뜩 쓸어서 쓰지 않는 반지하 창고가 있다. 꽤 공간이 넓은데 20년이 넘도록 들어간 적은 한번인가 밖에 없다. 그밖에도 두 개의 보일러실과 계단 밑 창고도 있다. 모두 특별한 일이 없으면 들어갈 일이 없는 공간들이다. 아주 가끔 천장에서 두다다다닥 하는 소리도 들리는데 지붕 밑 공간에 쥐가 뛰어다니는 소리라고 한다. 사람이 들어가는 것이 아예 상정되지 않는 곳까지 생각하면 본가에도 꽤 많은 비밀이 숨어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