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은 유튜브가 대만 노래를 추천하여 틀어주었다. 퍽 마음에 들었다. 음악적인 스타일도 좋았지만 독특하게 마음에 들었던 점은 한마디도 알아들을 수 없는 가사였다. 뚜렷한 말소리지만 언어적 요소가 제거된 채 비언어적으로만 심상이 전달된다.
누군가가 말하는 것을 들으면 종종 내 의지와 관계없이 말뚯을 파악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길을 가다 얼핏 스쳐들을 때도 그렇고, 텔레비전 소리가 들릴 때도 그렇다. 그리고 노래를 들을 때 특히 그렇다. 노래를 들을 때는 주로 다른 소음보다 노래에 집중하게 되기 때문이다. 다른 일을 하다가도 순간적으로 노래에 귀기울이면 가수는 항상 무언가를 말하고 있다. 그러면 나는 그 뜻을 알아듣는다.
우리말이나 영어로 된 가사는 거의 모든 가사를 알아듣는다. 일본어로 된 가사도 이제는 1/3 이상 알아듣는 것 같다. 어떨 때는 문장 전체의 뜻을 알아들을 때도 있다. 대만 노래는 중국어다. 나는 중국어를 모른다. 한글로 음차한 니하오 세글자 외에는 아무것도 모른다고 할 수 있다.
대만 노래를 들으면 기묘한 침묵을 느낀다. 언어 발화의 거의 모든 구조와 요소를 갖춘 채 그 최종 의미만은 박탈된 소리다.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것만은 확실한데 그리고 거기 실린 감정도 어렴풋이 느끼는데 의미만은 전혀 알 수 없다. 나의 언어기능은 할 수 있는 일이 없으므로 정지한다. 요컨대 쉼이다. 알아들으려 할 필요도 없는, 알아듣지 못하는 것이 허락된 언어다. 타인의 존재를 느끼며 그를 이해할 것을 요구받지 않는 비현실적 휴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