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은 너무나 쉽게 휘발된다. 잠시 한눈 판 사이 직전까지 흥미롭다고 곱씹던 문장이 어느새 망각되어 어쩌면 훗날 자신이 그런 생각을 했었다는 사실조차 부정하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세계관은 그런 반-의식적인 중얼거림의 축적된 일관성, 혹은 그 자체일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통은 가치없는 것으로 치부되어 꿈처럼 매일매일 잊으며 살아간다.
꿈일기를 아는가? 누군가는 꿈을 잊고싶지 않아 있지도 않았을 이야기를 글로 옮긴다. 그렇다면 중얼거림을 기록해보겠다고 생각해본적이 있는가? 나는 그랬다. 문득 떠오른 그날그날의 아무 문장을 기록해온지 7년이 넘었다. 이 행위의 내용과 느낀점 일부를 정리해보고자 한다.
1. 의외로 발전이 없다. 혹은 일관적이다.
"나는 어느새 음식에 머리를 조아리고 있었다"
"내가 기다리던 버스가 아니란걸 알면서도 야멸차게 가버리는 모습을 보면 허망함에 휩싸인다"
"어느새 가까웠던 사람들은 내가 접근하기 어려운 행태로 변해있었다"
"사고는 금방 망각된다"
2017~2018년의 글이다. 현재도 종교와 전통에 대한 저항, 무의미한 감정에 대한 집착, 인간관계에 대한 불안, 기억력에 대한 신뢰의 부재등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극적으로 진보된 세계관은 그다지 없었다. 그러나 응고된 정체성을 보여주기도 한다.
2. 생각은 불안에서 출발해서 초연함을 연출한다.
"그건 사랑이 아니야, 단순히 지나친 소유욕이야"
"나는 약한채로 남고싶어"
"아무리 닦아도 불결한 기분이 사라지지 않아서"
"그 자체보다 무감각한 자신에 동요했다"
"현재의 내가 미래의 나에게 부정당할까 두려웠다"
"죄악감의 악취. 뇌를 갉아먹는 자괴적 파멸감"
"삶은 포기하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수많은 중얼거림중 행복하고 마냥 밝은 글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나는 불안하고 고통스러울때 말이 많아진다. 강박, 집착, 욕망, 불안, 공포가 나를 어딘가로 기어가게 만든다.
3. 일부 생각은 시간이 지나며 당연시된다.
"욕망은 연료다"
"죽음은 경험될수 없다"
"소모품을 빌려준다는 것은 그 소모품의 수명 일부를 내어주는것이다"
"현학적 글을 삼가고 구체성을 확보하라는 불특정 다수의 지적이 있다"
"때때로 예술은 합리적 단순반복노동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당연시되는 생각이 생긴다는건 그것을 온전히 내가 받아들였기 때문일 것이다. 혹은 지금까지 반복된 환경이 같은 생각에 나를 매몰시켰을지도 모른다.
4.무의미하거나 의미불명인 것도 많다.
"*검열됨*의 이상형은 하치쿠지 마요이"
"아무도 없는 거리에 점멸하는 가로등"
"킁, 하며 입꼬리가 실룩거렸다"
"아마도 확실해"
"네덜란드에서는 15세 소년의 과반이 주말중 5잔 이상의 술을 마신다"
"나는 저 애정결핍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있다. 하지만..."
"배경막 뒤에는 아무것도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여전히"
"나는 어느새 새빨간 바다로 뛰어들고 있었다"
"이 차가운 공기로부터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이런 무의미함이 그 당시 정서의 생동감을 더해준다. 혹은 일종의 맥거핀은 아닐까. 생각이 항상 끝맺음을 가지는것도 아니다. 기분에 따라 때로는 나폴리탄 괴담마냥 불길함이 남는다.
아마도 나는 혼탁한 정신과 함께 불안과 공포속에서 중얼거리며 죽어갈것이다. 흩어지는 생각속에서 무엇을 기억할지가 나를 만들어 왔다.
여기 있는 많은 글들은 컴퓨터공학의 순도가 상대적으로 매우 높은 편이다. 적어도 비 전공자인 내 눈에는 그렇게 보인다. 아마 나는 그정도로 전문화되지 않았고, 그래서 그런 모습을 동경하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동경은 멀게 느껴진다는 다른 말이기도 하다. 때로는 타인의 일반적인 삶의 중얼거림을 듣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