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転がる岩、君に朝が降る>. 구르는 바위, 네게 아침이 내린다.
ASIAN KUNG-FU GENERATION이라는 일본 락밴드의 곡이다. 줄여서 아지캉(아지안 캉후 제네레-숀). 실은 이 밴드를 알고 있던 것은 아니고 <봇치 더 락> OST를 듣다가 알게 됐다. 애니메이션 볼 때는 잘 모르다가 OST 돌려들으면서 알게 된 게 포인트라면 포인트다. 무엇을 위한 포인트인가? 나는 모른다.
어찌됐건 듣고 있는데 가사가 마음 아픈 부분들이 있다. 또, 아침 해가 원망스러운 듯한 표현들이 있는데 그 부분이 참 독특하다고 느꼈다. 너무 우울한 새벽에는 눈치없이 밝아오는 아침해에 잔뜩 심술이 나기도 한다. 그런 느낌으로 이 노래를 듣는다.
오늘은 우리말로 번역한 가사를 읽으며 음미해보도록 하겠다. 대체로 나무위키를 참고해서 내 맘대로 개역할 것이다.
큰 틀에서 '나'는 가수, '너'는 '나'가 부르는 락을 듣는 청자로 해석했다. 구르는 바위가 Rock'n'Roll을 뜻하는 것을 볼 때, 이 노래는 '나'의 락을 들으며 차가운 밤(새벽)을 견뎌내는 '너'의 이야기다.
(1절) 가능하다면 세상을 난 바꾸고 싶어 / 전쟁을 없앤다든지하는 대단한 건 아니야 / 그래도 그것도 아주 없진 않으려나
세상에 무언가 의미있는 일을 하고 싶은 마음. 누구에게나 조금씩은 있을 것이다. 어떤 구체적인 꿈이 있어 그 꿈을 이루고 싶은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세상에서 무언가 이루고 가고 싶은 마음이다.
배우나 영화 스타는 될 수 없어, 그뿐일까 / 네 앞에서도 제대로 웃지 못해 / 그런 내게 답은 없겠지
하지만 꿈에 비해 '나'는 너무 작은 존재다. '나'는 영화 배우가 되고 싶었나 보다. 하지만 영화 스타가 되기는 커녕 '너'(사람들)의 앞에 서면 어색하게 쭈뼛대기만 한다. 어찌해야 할지 알 수가 없다.
(후렴) 무엇을 틀린 건지 그조차도 / 알 수가 없어 Rolling Rolling / 처음부터 가진 적도 없는데 가슴이 아파와
혼자 고민해봐도 어떻게 어디서부터 고쳐야 하는 건지 알 수가 없다. 새벽에 잠들지 못하는 맨정신으로 침대 위를 이리저리 굴러다닌다. 꿈인지 사랑인지 노력인지 능력인지 뭔지도 모를, 그 무언가가 자기 안에 없다는 것이, 빼앗긴 것도 아니고 언제나 없었을 뿐인데, 이상하게도 가슴이 찢어지게 아프다.
우리는 분명 앞으로도 / 마음이 엉킨 채 Rolling Rolling / 얼어붙은 지면을 구르듯이 달려나갔어
그건 '나'뿐만 아니라 수많은 '너'도 느끼는 아픔이다. 그래서 주어는 '우리'다. '나'는 지금까지도 앞으로도 가슴이 아프다. 처음부터 가진 적이 없고, 앞으로도 가지지 못할 것 같은, 그것이 없다는 상실감에 앞으로도 아파한다. 굴러내려가는 바위가 된 기분. '나'와 '너'는 각자 괴로워하지만 그 괴로움은 혼자가 아니다. 노래하는 '나'와 그 노래를 듣는 '너'는 엉멍진창 마음이 엉킨 채로 구른다. 바위 = Rock = 락이라는 것을 생각할 때 바위처럼 달리는 것은 락을 부르는 것이기도 하다. 차갑게 얼어붙은 새벽을 락에 기대어 굴러-달려나가본다.
(2절) 이유도 없는데 어쩐지 슬퍼 / 울 수는 없으니까 괜히 더 막막해져 / 그런 밤이 따뜻해지도록 노래를 불러
새벽의 우울감은 대체로 이유가 없다. 이유가 없는 슬픔은 어디 하소연할 수도 없다. 나는 왜 이런가 하는 답 없는 생각의 바다에 홀로 끔찍히 잠겨갈 뿐이다. 마음이 너무 차가운 밤이다. 이 밤이 따뜻해지길 바라는 마음에 '나'는 노래를 부른다.
(후렴) 바위는 굴러서 우리를 / 어딘가로 데려가는 것처럼 / 단단한 지면을 가르고 생명이 싹텄어
락은 안에 있는 것을 모든 울분과 감정을 발산하면서 속을 시원하게 한다. 부르는 '나'에게도, 듣는 '너'에게도. 락을 하면 왠지 뭔가 이룰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에 휩싸인다. 얼음처럼 단단한 지면을 바위가 부스듯, 락도 얼어붙은 '우리'의 밤-고난을 부수어 무언가 싹틀 수 있게 한다.
저 언덕 너머 그 앞에 있는 건 / 반짝이는 빛처럼 / 너의 고독도 모두 드러내는 아침이야
얼어붙은 땅 위를 구르고 단단한 지면도 가르는 지난한 부활을 거쳐, 혹은 구체적으로는 몸부림치고 락을 부르고 들으며 견뎌낸 새벽을 넘어, 그렇게 다다른 곳은 눈부시게 밝은, 너무도 눈부셔서 너의 모든 고독을 선명하게 드러내버리는 아침이다. '나'와 '너'에게는 아침을 반기는 마음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새벽의 검은 바다에서 헤엄쳐나와서는 아침 햇볕 아래에서 끝없이 검은 망망대해를 쳐다보아야 한다는 것에 두려움, 아니 두려움까지는 아니더라도 약간의 부담스러움을 느낀다. 아침에 대한 반가움, 그속에 섞인 미묘한 부담감이 느껴져 나는 이 소절이 마음에 든다.
(브릿지) 붉디붉은 조그마한 자동차는 / 너를 싣고서 / 멀리 건너편 모퉁이를 돌아서 / 여기에서는 보이지 않게 됐어
이 소절은 잘 모르겠다. 빨간 자동차는 무언가를 특정해서 가리키는 것 같은데 필자는 락 문화를 잘 모른다. 그저 방구석에 앉아 애니를 보고 노래를 들을 뿐이다. 아마 '너'는 무대를 떠나는 관객이나 홀로 락에 치유받아 일어서서 떠나버린 청자일까. '너'는 무사히 언덕을 넘어서 떠날 수 있게 됐지만 '나'는 여전히 여기에 남아있다는 아쉬움인지도 모른다.
(후렴) 무엇을 잃은 건지 그조차도 / 알 수가 없어 Rolling Rolling / 처음부터 가진 적도 없는데 가슴이 아파와
1절 후렴의 변용이다. '틀린'이 '잃은'으로 바뀌었다. 처음부터 없었는데 잃은 것만 같은 상실감이 '우리'를 괴롭힌다. 어쩌면 있었지만 잃어버렸고, 잃어버렸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린 것이 아닐까. 아마 꿈이나 의지 같은 거겠지. 이 상실감은 그렇게밖에 설명할 수 없는 느낌이다. 잃어버렸지만 무엇을 잃어버렸는지 몰라서 되찾을 시도조차 할 수 없는 절망감이다. 이유 없는 슬픔과도 비슷하다.
우리는 분명 앞으로도 / 마음이 엉킨 채 Rolling Rolling / 얼어붙은 세상을 구르듯이 달려나갔어
역시 1절 후렴의 변용. '지면'이 '세상'으로 바뀌었다. 락으로 새벽을 견뎌낸 것처럼 세상도 이렇게 달려나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과 기대다. 분명 앞으로도 엉망진창이겠지만, 이렇게 엉멍진창으로 엉킨 채로도, 세상을 잘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믿어야 한다.
이 노래는 애니메이션 <봇치 더 락>의 마지막화 엔딩곡으로 쓰였다. 마침내 관객과 만나 엉킬 수 있게 된, 그 마음으로 세상을 굴러나갈 수 있게 된 봇치짱의 이야기가 비쳐 보이는 노래다. 무겁고 캄캄하고 추운 새벽을 지나는 동안 아침을 살아갈 의지를 다지는, 절망과 무기력증 속에서 그래도 잘 살아봐야지 하고 다짐하는 노래라 마음에 든다. 꼭 락에 대한 이야기로 보지 않아도 좋다. 엉멍진창 엉킨 마음으로도 데굴데굴 살아갈 수 있다고 노래하는 게 좋다.
TJ노래방에는 아지캉 원곡은 실려있지 않고 <봇치 더 락> OST로 실려있다. 키를 낮춰서 남성 B로 부르면 아지캉 키가 된다. 나는 자주 부른다. 최근엔 99점까지 찍었다. 조금 더 연습해서 100점도 찍어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