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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지 368호의 개정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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쯔진산-아틀라스 혜성

2024년 10월 16일 수요일 01시 35분.

이번주에 쯔진산-아틀라스 혜성이 지구를 스쳐지나간다. 꼬리가 선명히 보일 정도로 가깝다고 한다. 지금은 이미 삼등성까지 떨어졌지만. 데네브의 겉보기 등급이 1.35다. 아마 서울에서는 애써 집중하면 머리를 볼 수 있는 정도겠지. 내 인생 전체를 비유하는 것만 같다. 오르트구름에서부터 날아온 저 혜성. 딱 일주일간 스치는데 나는 거기에 아무 신경도 못 쓴다. 아니 계속 생각하고는 있지만 이 빌어먹을 게으름, 불성실함, 그런 것들 때문에 붙잡지 못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저 혜성을 끝끝내는 보지 못하듯이, 사랑도 꿈도 전부 망설이는 사이에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간다. 만일 내일 저녁 그 별을 볼 수 있다면 그것이 내 삶의 마지막 희망 같은 것이다. 아님 대비 효과, 또느 다음 기회에 대한 교훈? 그렇게는 생각되지 않는다. 저 혜성이 너무도 절묘하게 내 삶은 은유하고 있다. "게으름으로 그르치는 일이 너무 많다." 나는 증명의 시험대에 서있다. 반드시 저 별을 잡아야 한다. 이 별을 놓치는 것이 특별한 일은 아닐 것이다. 그저 무수히 쌓여있는 실패 더미에 실패 한 장이 더 쌓일 뿐. 그것이 언제 무너져 범람할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이 별을 잡는다면. 그것은 위대한 한 걸음이다. 지금까지의 모든 실패를 반증하는 강력한 반례가 된다. 마침내 나는 변했노라고, 이제는 게으름을 이기고 진짜로 하고픈 일, "자고싶다"나 "집에가고싶다"가 아닌 이 세상에서 아주 구체적이고도 형이상학적으로 유의미한 일을 할 수 있는 그런 인간이 되었노라고, 그리고 앞으로의 모든 일에 후회와 타협은 더 이상 없으리라는 선언이 될 것이다.

이 별은 그러한 계시다.

저 별을 잡는 데 성공하면 이젠 진짜로 무언가 저질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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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일기를 쓴 다음날 한참을 낙성대공원에서 쯔진산-아틀라스 혜성을 찾았다. 여름철의 대삼각형이 빛나고 개밥바라기별이 빛났고 어느 이름 잊은 별이 쯔진산-아틀라스 혜성과 같은 고도에서 빛났으나 끝내 쯔진잔-아틀라스 혜성을 찾지는 못하였다. 서울은 땅이 너무 밝다. 하지만 바로 저기에 쯔진산-아틀라스 혜성이 있다면, 그것을 내 감각으로 느낄 수 없어도 여전히 가리키는 것이 가능하다면,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 해낸 것이 아닐지. 불가능한 일에 도전하는 것에도 의미는 있다. 나는 10월 16일 저녁의 관측에서 내 나름의 의미를 찾았다고 생각한다. 나는 보이지 않는 것을 있다고 믿고 가리킬 용기를 얻었는지도 모른다.

쯔진산-아틀라스 혜성은 8만년 뒤에 다시 돌아온다고 한다. 나는 가능하다면 8만년을 기다려 쯔진산-아틀라스 혜성을 다시 한 번 만나고 싶은 마음이다. 다시 만날 때는 반갑게 인사하고 8만년 전의 추억을 더듬을 것이다. 그리고 쯔진산-아틀라스 혜성은 답하겠지. "누구신데요?"

여담으로 그 다음날 구례에 가서 맑은 하늘 너머의 쯔진산-아틀라스 혜성을 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너무나 흐려서 하늘은 까맣지도 못했다. 마음을 가득 담아 외쳤다. 아쉬운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