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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지 336호의 개정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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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파와 긴장감과 잠

어젯밤은 더럽게도 잠이 안 왔다. 분명 자정 전까지만 해도 머리가 지끈거리는 피로감이 있었는데 한 삼십분을 그 상태로 누워있으니 잠은 오지 않고 지끈거림만 깔끔하게 가셨다. 그 뒤엔 평소와 같은 이명이 단조롭게 울리고 잡념이 생겼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잠들지 않는 밤에는 특유의 미칠듯한 지루함이 있다. 그런 밤에는 늘 지루함을 못 이기고 다시 핸드폰을 켜고 만다. 바로 그 빛과 소리가 잠을 깨울 것임을 알면서도 제 발로 그 굴레를 다시 쓰러 들어가는 역설적 현장이다. 이제는 빛 때문에 잠을 못 자는지 잠을 못 자서 빛을 갈구하는지 알 수 없이 빛과 불면은 서로를 끊임없이 되먹인다.

어떨 때는 그 되먹임조차 지루해져 다른 소일거리를 찾아나선다. 어제의 경우 그 소일거리는 책이었다. 그런 밤은 운이 좋다. 책은 훌륭한 수면유도제기 때문이다. 그런 밤은 잠도 잘오고 마음도 풍요롭다.

한달전이었다면 나는 스탠드를 켰을 것이다. 잠자리 머리맡에 스탠드를 켜두고 누운채로 책을 읽었을 것이다. 어젯밤이 한달전의 밤과 다른 점은 거실에 생긴 소파의 존재다.

소파가 없을 때는 침대에 누워서 쉬었다. 일과 쉼의 스펙트럼 위에서 침대라는 공간은 쉼에는 한없이 가깝고 일에는 한없이 멀다. 한번 침대로 굴러떨어지고 나면 다시 일로 돌아가기는 어렵다.

그런데 여기에 역설이 있다. 침대는 가장 쉼에 가까운 공간이기 때문에 침대에 누운 것 이상으로 쉼의 자세를 취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어젯밤과 같이 불면에 시달리는 밤에는 잠들기 위한 노력으로써 열정적으로 누워있고자 하지만 침댜에서는 누운 것 이상으로 더 누울 수는 없기에 더이상 쉼으로 가속할 수 없다. 마치 무더운 날에  걸치는 옷을 얇게 해서 시원해지는 데는 한계가 있는 것과 비슷하다.

반면 소파는 일과 쉼의 중앙에 떠있는 공간이다. 여기에서는 마음만 먹으면 일로 돌아가는 것도 쉼으로 떨어지는 것도 똑같이 가능하다. 재미있는 점은 소파에서는 일과 쉼의 인력을 동시에 받는 상태라는 것이다. 나는 그 사이에서 평형을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긴장감을 갖고 있다. 이 점이 오히려 잠드는 것을 더 쉽게 한다. 책을 읽는 동안은 잠들지 않으려고 하는 긴장감이 있는데, 어느 순간 충분히 졸려질 때에 못 이기는 척 긴장을 풀어버리면, 쉼으로 굴러떨어지는 가속도에 의해 침대라는 쉼의 바닥을 깨고 마침내 잠에 들 수가 있다.

아마 소파만큼 효과적인 것은 부엌 형광등 불빛일 것이다. 방의 불빛과 다른 점은 머리 위에서 직접 내리쬐는게 아니라 조금 거리를 둔 채 은은하게 퍼져오는 빛이라는 점이다. 정말로 잠에 들기 위해서는 잠시 일어서 불을 끄고 다시 자야한다는 점도 소파와 같은 적당한 긴장감을 연출한다. 긴장감이라는 점에서 책을 덮고 있는 것도 잠이 솔솔 온다. 이 책을 정리하고 제대로 이불을 덮어야 잘 수 있는 것인데, 바로 정리하지 않고 잠시 졸고 있으면 잘 졸려진다.

어젯밤은 소파에서 책을 읽다가 잠시 그 책을 덮고 불면에 효과적인 이 기묘한 긴장감에 대해 생각했다. 점점 졸려오는 것을 느끼다 벌떡 일어나서는 책을 정리하고 불을 끄고 침대에 누웠다. 금방 단잠이 쏟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