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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지 270호의 개정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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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발 안 된 만화 보기

물론 구글에 검색하면 여러 어둠의 경로로 볼 수 있다. 내가 그러고 싶지가 않다. 어릴 때야 멋모르고 그랬지만 체크카드가 생겨 온라인 결제가 가능해진 이후로는 안 그러려 하고 있다. 이것저것 잘난듯이 이유를 댈 수 있겠지만 그래봐야 정말 잘난척일 뿐이고 만화나 이것저것을 돈 내고 보려고 하는 가장 큰 이유는 내가 그 만화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 만화를 만들어 전하는 모든 사람에게 감사와 응원으로 돌려줘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이렇게 보면 고등학교 학생증에 체크카드 기능이 있었던 것도 다 정보화 자본주의 사회에 매끄럽게 진입하도록 유도하는 교육적 목적이 있던 게 아닌가 싶다. 뭐, 그렇지 않을까 싶은 정도의 사후해석일 뿐이다.

그런 이유로 나는 가장 밝은 빛의 경로로 만화를 보고 싶었다. 무슨 만화냐 하면 어제 결말 갈아엎어!라는 글에서 소개한 <보석의 나라>이다. 일본 만화 잡지에 연재하는 건 완결이 났는데 단행본은 아직 안 나와서 아주 감질이 났던 만화다. 만약 국내에 번역되어 주간이든 월간이든 온라인에 연재되는 곳이 있다면 거기서 봤겠지만 사실상 비정기 연재라 그런지 화마다 번역해서 배급하는 곳은 없었다. 단행본으로 읽은 98화가 아주 사람 속을 뒤집어놨기 때문에, 어제 남은 화가 있다는 것을 알고는 지금 당장 끝장을 보지 않고는 못 배긴다는 심정이었다. 거기서 생각이 다다랐다. 일본 연재처에서 직접 보면 되지 않는가!

정발 안 된 만화를 어떻게 보냐! 하면 정발이 된 곳에서 보면 되는 것이다. 왠지 있지 않을까 해서 찾아보니 레진코믹스처럼 인터넷에 연재하는 사이트가 있었다. <보석의 나라>는 코믹데이즈에서 연재되고 있었다. 가장 걱정했던 부분은 해외라곤 나가본 적도 없는 내가 일본 전자 상거래에 임하는 것이 가능한가 하는 부분이었다. 일본은 도장 찍는 업무를 대체하기 위해 도장 찍는 로봇을 만드는 나라인데 국내에서도 복잡한 온라인 결제가 일본에서, 거기다 외국인에게도 가능할까? 다행히 그 부분은 쉽게 해결됐다. 사이트 번역 돌려놓고 뚝딱 결제했다. 학생증 카드에 마스터카드 기능이 들어있어서 다행이었다. 이렇게 보면 이 또한 글로벌 경제에 매끄럽게 진입하도록 하는 교육적인 목적이 있었던 걸까, 하는 생각이 떠오르지만 역시 대학에서까지 그런 짓을 할리는 없고 그냥 학생들 편하라고 넣은 것일테다. 어쨌든 마스터카드 결제가 가능했다! 훌륭하다 코믹데이즈!

  • 구글이 말아주는 코믹데이즈 사이트 번역

그렇게 나는 만화를 볼 수 있는 미디어를 입수했다. 아니 이 사람 일본어도 할줄 아나? 라고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아니 난 확실히 일본어를 읽지 못한다. 오타쿠 경력이 경력인지라 듣기로는 반의 반의 반 정도 알아들을 수도 있지만 읽을 때에는 하나(一)부터 열(十)까지밖에 아는 한자가 없어서 까막눈이 된다. 하지만 일본어를 못한다고 일본어로 된 만화를 정말로 읽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어느 정도 고생하면 9할 정도는 읽을 수 있다. 상황이 달랐다면 몰라도 나는 반드시 지금 당장 봐야만 하는 일촉즉발의 상태였기 때문에 그 정도 고생은 감수할 수 있었다. 구글 번역과 텍스트 인식에 더해 네이버 일본어 사전까지 있다면 무적이 아닐까? 그런 각오로 99화부터 최종 108화까지 일단 결제했다. OCR을 어떻게 해야 편하게 할 수 있을까 고민하면서 핸드폰으로 사이트를 접속했는데 이게 왠걸? 사파리 브라우저는 OCR과 번역을 바로 해서 보여줬다.

  • 사파리가 말아주는 이미지 번역

어쩌면 동아리에서 일본어 원서 읽기 스터디가 열릴 수도 있는 일이었지만 이렇게 기술이 너무 좋은 관계로 일단 무산되었다. 아쉽게도 데스크탑이나 노트북으로는 사진 번역이 안 됐다. 그래도 역시 큰 화면으로 보는 것이 좋기 때문에 최종적으로는 노트북에 원어 만화를 띄워놓고 옆에 핸드폰으로 번역을 확인하면서 읽는 형태가 되었다. 의외로 자막 보는 것마냥 읽을만했다. 가끔 번역이 매끄럽지 않을 때는 직접 OCR한 텍스트를 뽑아내서 줄바꿈도 합쳐보고 네이버 사전에 단어별로 뜻을 찾아보기도 하면서 휴먼-하게 번역을 했다.

  • 내가 직접 말아먹는 스크린샷 OCR 번역

저 정도 하면 대개의 내용은 알아먹을 수가 있다. 거기에 내 오타쿠 경력까지 더하면 일본어 어미의 중의성이나 뉘앙스 차이도 상당히 보정이 되었다. 스스로도 놀랐다. 아쉬운 부분이 있다면 의성어 의태어나 히라가나로 풀어써서 구어체적으로 비튼 문장들 정도일까. 일본어는 글자가 50개밖에 안 돼서 한자를 안 쓰면 동음이의어가 너무 많아지고 거기에 구어체 어미까지 그대로 옮기면 기계 입장에서는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그런 부분들을 제외하면 체감상 95% 정도는 제대로 읽었으니 대성공이다~

그렇게 <보석의 나라>를 결말까지 모두 읽었다. 여전히 썩 마음에 드는 결말은 아니지만..., 뒷 내용 보면서 화가 천천히 식기도 했고 마지막에 그리웠던 1화의 포스 모습도 보았으니 이쯤에서 보내주는 게 깔끔할듯하다. 다른 사람들 반응도 궁금해서 찾아봤는데 오랫동안 보던 팬들은 99화까지 와서는 이미 해탈의 경지에 이른 뒤였다. 연재 주기도 길었고 그럴만하다. 재밌게 보았다. 수려한 작화로 그려내는 무능맨 포스의 좌충우돌 성?장기! 작가한테 딱 한 마디만 외치고 마친다.

"우리 귀여운 포스 돌려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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