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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지 249호의 개정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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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TI는 제멋대로라 재밌는거야

그저께 어쩌다보니 연구실에 늦게까지 있게 되어 한 선배와 같이 하교하게 되었다. 인덕션 코인덕션 어쩌구저쩌구 하는 어려운 얘기들을 하다가 대충 결론이 지어졌다.

아 그 얘기도 꽤 재밌었어서 그냥 기록을 해놓자면 인덕션과 코인덕션이 듀얼이긴 하지만 그게 이거고 저거고 다 추상화해놓고 남은 것들이 바나흐 고정점 정리에 의해 듀얼인거라, 부품별로 듀얼을 취해서 인덕션 증명을 코인덕션으로 바꾼다던지 vice versa던지 하는 것은 가능성이 있어보이지만 그다지 trivial하지는 않더라는 얘기였다. 그래도 지금 생각해보면 역시 될 것 같은 느낌이 있는데 시간날 때 끄적여봐야겠다.

그렇게 결론이 나오고 이젠 밥 먹을 집 찾기 전략을 세우다가 MBTI 얘기가 나왔다. 내 관점에 MBTI라는 것은 단지 재미있는 놀이이면서도 유의미하고 유익한 점이 있는 우리네 사회에 만연한 사회현상이다. 거기에 그 선배가 말한 한 가지 관점이 더 생겼다. 바로 MBTI는 과학이 아니라서 재밌다는 것이다!

MBTI라는 것은 4개의 구체적인 숫자가 나오기 때문에 직관적으로 그 값을 만들어낸 식이 있으리라고 상상해볼 수 있다. 그 식의 한가지 후보로는 Big-5라는 성격 체계과의 상관관계가 있다. MBTI는 아무래도 좀 사짜 느낌이 있지만, 그럼에도 성격이란 것을 체계화하여 정리하려는 시도는 충분히 의미있는 일이다. 그런 정리를 과학적으로 이리저리 복잡하게 해서 현재에는 심리학계 주류에서 성격의 가장 중요한 요소 5가지가 있다는 Big-5가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다. 얘도 MBTI랑 비슷하게 숫자 5개로 성격을 정리한건데 유일하게 다른 점은 전문 심리학자들이 찾아낸 요소들이라는 것이다. Big-5의 다섯가지 성격요소는 외향성, 개방성, 우호성, 성실성, 신경성으로, 이들 특질들은 서로 독립적이고 성인이 되어서는 쉽게 안 바뀐다고 한다. 검사하는 날 기분에 따라 그때그때 바뀌는 MBTI와는 다른 부분이다.

이런 Big-5의 5가지 요소와 MBTI의 4가지 요소에 대해 각각 상관관계를 조사한 연구가 있다. 그 연구 결과를 보면 상관관계가 꽤 유의미하게 나온다. 높은 것들은 상관계수가 0.6대까지도 나온다. 그걸 보면 Big-5를 잘 가중치합 하면 MBTI가 나오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바로 그 부분이 재미있는 것이다. MBTI의 각 요소는 단순한 특정 성격 요소를 대표하는 게 아니라, 여러 성격 요소의 결합인 것이다. 이를테면 J/P는 계획 세우길 좋아하는 성격과 흐트러진 걸 참지 못하는 성격의 결합인 것이다. 그래서 계획을 세우고도 그것이 일그러지는 것을 즐기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P 같기도 하고 J 같기도 한 사람이 된다. 그것에 대해서 사람마다 관점이 다르니 이것이 P의 행동인지 J의 행동인지 이야기를 나누고 생각해볼 수 있게 된다. 그런 애매모호함이 있기 때문에 훌륭한 놀이가 된다. 만약 MBTI가 정말로 정확하게 딱딱 맞아떨어지는 것이었다면 누가 이상한 행동을 할 때 “아~ 쟤 MBTI X라 그래”라고 하고 그건 그것으로 끝나는 토톨로지다. 하지만 여러 요소가 겹쳐 애매모호하게 있기 때문에 저게 J인지 P인지 J는 뭐고 P는 무엇인지 끝없이 토론할 수 있게 된다. 우리가 1+1=2인 것에는 할 말이 없지만 신이 있는지 없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재미있는 논쟁을 할 수 있는 것과 같다.

MBTI에 대해 계속 이야기하다보면 마치 분홍색 투명유니콘 탐사를 위해 평생을 바치는 사람처럼 될지도 모르지만… 그런 유니콘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있다고 가장하고 찾아다니는 것은 재미있는 놀이가 될 것이고 그 안에서 평소에는 생각하지 못했던 신선한 무언가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MBTI는 제멋대로라서 재밌는 것이다! 과학과는 다른 유형의 재미이다. 구태여 과학이 되려하지 말고 그만의 재미를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