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며칠 셋하나둘은둘셋하나의 만화를 하나씩 다시 둘러보고 있다. 동아리 디스코드의 만화 추천 채널에도 하나씩 올리게 되는데 가만 보니 올리는 이가 나뿐이다. 약간 부끄러워졌다. 내가 이렇게 말 많은 사람이라니. 거긴 공공장소다. 나 혼자 독차지하면 안 되는 곳이다. 그래서 여기로 도망왔다.
그러니까 오타쿠의 넋두리다. 흔히 피상적으로는 일본 애니메이션 게임 만화에 심취한 사람을 오타쿠라고 정의하는데 난 좀 더 넓은 의미로 이 말을 쓴다. 예전에 유행했던 “그게 뭔데 씹덕아”라는 말의 그 씹덕, 그 원형인 오타쿠의 용례다… 아무래도 씹덕은 너무 센말이니 오타쿠 정도로 합의를 보자. 오타쿠는 무언가에 심취하여 떠벌리는 사람이다. 그 사람이 홀로 조용히 만화를 읽는다면 그것은 오타쿠는 아니다. 만화가 너무 재밌고 인류의 보편적 가치가 되어야 한다고 믿으며 여기저기 전도하고 이런저런 일화와 설정들을 읊고 다닐 때 마음 깊은 곳에서 “으으 오타쿠”라는 말이 우라나온다. 그런 애정이 자식을 향하면 팔불출, 예수를 향하면 기독교인, 취미를 향하면 오타쿠가 된다.
지금 난 트릭컬, 셋하나둘은둘셋하나, 컴퓨터 오타쿠 상태이다. 한때 모노가타리 시리즈 오타쿠이기도 했으나 전도성이 많이 떨어진다는 것을 느끼고는 혼자 조용히 즐기는 상태이다. 지금 오타쿠 상태인 것들은 전도성이 유망하거나 당당하게 생산성을 주장할 수 있는 것들이다.
그런 의미에서 하려던 넋두리를 해야겠다. 아지트는 오로지 그것을 위한 공간이니 아주 잘 활용하는 것이고 아주 당당한 일이다.
오늘 소개할 작품은 셋하나둘은둘셋하나의 <기확전쟁>! 제목을 보면서도 이게 무슨 내용이었나 하나도 기억이 안났는데 첫화를 읽으니 생각이 났다. 시대 배경은 언제나와 같이 미래! 이번은 근미래다. 주인공이 60년대에 잠들어 30년만에 깨어났으니 어느 90년대. 다른 작품의 시계열을 고려할 때 2190년이나 2290년 즈음이다. 이 작품은 비교적 친절한 편이다. 30년 전 사람이 주인공이라 배경이나 설정도 자세히 설명해주고, 대사도 간결한 편이다.
아니 이런 형식적인 특징들이 중요한 게 아니다. 아 물론 특징적이지만 이걸로는 전도를 할 수 없어…! 굵직한 배경은 이렇다. 인류가 모든 질병 식량 갈등 억압 죽음을 해결하고 마침내 노동과 전쟁에서 해방된 시대! 이제 인류는 무기력하다. 심심해서 말그대로 미친다. 여러가지 말못할 유희가 난무하는 가운데 하나의 유희가 바로 기획전쟁이다. 유전자설계된 아이들을 수천명 배양해서 일주일에 한번 전쟁 놀이를 하며 생중계한다. 인권은 말장난인 시대다.
그런 가운데 30년만에 잠에서 깨어난 주인공은 갑작스럽게 증손자의 자살 소식과 함께 그가 굴리던 기획전쟁 부대를 하나 떠맡는다. 30년전엔 아직 인본주의가 유효했다. 주인공은 병사들을 무의미한 전쟁에서 구해내고자 한다.
대사 한번씩 인용하는 게 전도 효과가 좋은 것 같아 모아봤다.
후퇴하라고요? 후퇴는 대장님 권한입니다! 나는, 직접 내려간 산은 다신 오르지 못한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지원이 옵니다. 언제? 내가 죽기 전에! 탄약이요? 저 앞에 달려오는 보급대가 안 보입니까? 다들 믿음이 부족합니다! 계속 쓸모없는 말만 할겁니까? 조용히 하십쇼! 돌격! — <기획전쟁의 백병전에 대해>
둘러보면… 다들 고장 난 사람뿐입니다. 세상은 모든 가치를 분쇄하려 혈안이 돼있고… 주체들은 자기들이 뭘 가져야 하는지 짐작도 못하고 있습니다. — <기획전쟁의 합리성에 대해>
말초적인 세상이다. 생각하자. 존엄하게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