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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지 209호의 개정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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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잠

이젠 알겠다. 나가지 못하는 모든 이유는 창통설이다. 자연어 처리는 즐겁지 않다. 나의 과거 현재 미래에 어떠한 즐거움도 주지 않는다. 나의 제일행동원리는 즐거움이다. 즐겁지 않다면 죽어 마땅하다. 그 증거로 오늘 아침 수차례 떠오른 자해와 자살의 장면을 제시한다. 지난주 화요일 나는 창통설 회의에 나가지 못했다. 이런저런 핑계를 댔지만 이제는 모두 거짓말임을 안다. 나는 창통설이 죽도록 싫어서 못 나간 것이다. 오늘 하루를 시작한다면 할 일이라곤 200개의 뉴스 문장들을 읽으며 주어진 기업에 긍정적인지 부정적인지 판별하는 일 뿐이다. 그것이 가장 급한 일이며 다른 일들은 미루는 것이 허용되고 이것은 안 된다. 과제가 재미없어서 죽다니 그만큼 우스운 일도 없을 것이다. 난 아마 우스워지기 싫어서 못 죽는 것일 테다. 제이행동원리인 존엄성에 입각한 것이다. 그래서 나는 잠든다. 잠은 생리현상이니까 나의 의지가 아니었다고 우긴다. 생리현상, 감정, 의지, 이성… 이들은 별개가 아니다. 하나로 연결되어 같은 목표를 향해 하나의 원리로 움직인다. 그러니까 늦잠의 가장 확실한 예방책은 즐거운 아침이다. 무엇 하나라도 즐거운 점이 있어야 한다. 창통설에 즐거운 점이라고는 단 하나도 없다. 창통설을 하느니 죽고 싶다. 이것은 양성 피드백이 되어 계속해서 창통설의 즐거운 점을 찾지 못하게 한다. 팀원들과 대화해보는 게 좋겠지. 프로젝트를 완수하기 위해 이 짓을 계속할 이유를 찾아야 한다. 대화로 뭔가 바뀌지 못한다면… 시발. 지금 기댈 수 있는 건 낙관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