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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지 62호의 개정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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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와 신

신은 정말 순수하게 추상적인 개념입니다. 이보다 더 추상적인 개념도 없을 것입니다. 종교도 신을 설명하기 위해 온갖 상징체계를 가져오지요. 한편 인간 누구나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상징 체계가 있음을 아십니까? 종교와 영화 수업에서 교수님이 그런 질문을 하셨습니다. 여기저기서 '돈'이라는 이야기가 들려오던데 역시 서울대생들,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를 감명깊게 읽었음에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그보다도 더 보편적인 상징 체계이 있으니 바로 언어입니다.

인간의 사고는 세상을 그대로 담지 않습니다. 언제나 어떤 체계, 프레임으로 담게 됩니다. 사람들 사이에서 그 프레임은 공유되는데 바로 언어라는 상징 체계를 통해서입니다. 세계에 어떤 사물들이 있다면 인간은 그것을 '단어'로써 지칭하고 개념화합니다. 어떤 사물들이 함께할 때 일어나는 일 또한 단어로 추상화되며 이 단어들과 저 단어들은 문법으로 관계를 맺습니다.

이러한 언어라는 현상은 모든 인간에게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능력입니다. 심지어 말을 하지 못하거나 소리를 듣지 못하는 사람들도 그들만의 언어 체계를 만들어냅니다. 그것은 음성 언어와는 사뭇 다른 어휘와 문법을 갖고 있다고 합니다. 그 언어가 2세, 3세까지 전해지게 되면 그것은 체계를 가지게 되고, 서로 다른 문화 집단들, 작게는 가정에서부터 크게는 국가까지, 그러한 비음성 언어, 말하자면 저마다의 수어가 서로 섞이며 사회적인 언어로 탄생하게 됩니다. 현대에 나라마다 사용하는 표준 수어도 처음에는 그런 과정을 통해서 탄생했습니다. 예전에는 이를 음성 언어에 일대일 대응하려는 시도가 있었습니다. 한국어와 한국 수어가 자모 하나하나 정확히 대응하리라는 상상이었죠. 지금에 와서는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이 알려지고, 한국 수어는 한국어와 함께 대한민국의 공용어로 인정되고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신, 모든 현상을 주관하는 절대자의 존재는 어느 문화권에서나 이야기되었습니다. 어느 사회를 가더라도 그 사회에는 종교가 존재합니다. 신도 언어와 비슷하게 보편성을 띠네요. 추상적인 개념이라는 점도 비슷하구요. 요즘 들어 그런 생각이 듭니다. 신은 언어에서 자연스럽게 도출된 개념이 아닐까?

영어 동사에 대해 1형식이니 2형식이니 하는 걸 들어보셨을지 모르겠습니다. 각각의 동사 단어마다 요구하는 문장 성분이 다르다는 이론이죠. 솔직히 저 이름은 진짜 별로고 끔찍하다고 생각합니다. 차라리 SV, SVC, SVO 이런 식으로 붙이는 게 낫지 않을까 싶습니다. 한국어 문법에서는 자동사나 타동사 같은 개념이 있습니다. 목적어가 필요한지, 보어가 필요한지, 아니면 아무것도 필요없는지에 따라 구분이 됩니다.

신도 이런 문장 성분을 채우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감사하다'라는 동사는 '~에게'와  '~함에'의 두 가지 문장성분을 요구합니다. 예문을 들면 "나는 친구*에게* 도와준 것*에* 감사했다"(표준국어대사전)가 있습니다. 개신교의 사상을 보면 세상 모든 일에 감사해야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문장을 쓰고 나면 '~에게'가 빠져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인간의 언어 체계에서 '감사하다'라는 행동은 반드시 감사하는 상대와 사건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죠. 예를 들어 오늘 날씨가 맑음에 감사한다면, 그 감사를 표하는 상대는 누구일까요? 감사한다는 감정은 분명히 느끼고 있는데 그 상대가 분명하지 않은 겁니다.

그 자리에 *신*이라는 개념이 들어오는 것이겠죠. 어떤 사건이 있을 때, 사람은 자연스럽게 그 원인과 의도를 생각합니다. 하지만 세상에는 원인과 결과, 의도와 행동이라는 틀에는 잘 맞지 않는 사건들이 일어납니다. 인간의 논리 체계로 그러한 사건을 이해하고자 하면서 자연스럽게 '애매한 사건들에 원인과 의도를 제공하는 존재'인 신을 생각하게 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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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있어야 할 자리에 있어야 한다라는 느낌이 언어학적인 느낌이 나서 유교도 잘 연결해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을 했는데 유교에 대해선 아는 게 없다보니까 어떻게 말해야 할지를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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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제가 가장 친숙한 개신교의 관점에서 이야기를 하게 되는데, 다른 종교도 비슷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동북아에서 한때 유행했던, 어쩌면 지금도 유행하고 있을 유교라는 사상 또는 종교를 보면 비슷한 현상이 보입니다. 종종 유교의 충과 효 사상은 가부장적, 권위적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처음의 의도는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충이란 신하는 신하의 도리를 다하고 임금은 임금의 도리를 다해야 한다는 사상이고, 효는 부모는 부모의 도리를 다하고 자식은 자식의 도리를 다해야 한다는 사상입니다. "백성은 임금을 섬긴다", "임금은 백성을 보살핀다"라는 사상에서는 '섬기다'와 '보살피다'의 상호보완적인 관계가 드러납니다. 누구나 자신의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는 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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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건 개신교에 대해서는 잘 설명이 되는 것 같습니다. '감사하다' 외에도 '사랑하다', '섬기다' 등등 감정은 있지만 문장성분이 비어있는 곳에 자연스럽게 '신'을 넣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신은 당신을 사랑합니다"라는 말은 많이 나오는 문장이고, 누군가를 섬기는 듯한 감정을 느낄 때가 있는데 그 자리에 신이 들어가는 게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실은 사이비도 개신교처럼 문장 성분을 채우는 방식으로 구성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그 성분이 추상적이고 가정적인(hypothetical) 개념으로 화한 것이 신이라면, 몇몇 사이비에서는 그 자리에 구체적인 인물을 부적절하게 넣어서 사회적인 문제가 되는 것이죠.

예수도 메시아로 받들어진다는 점에서 할 이야기가 많지만 좀 미뤄두도록 하겠습니다. 종교다원주의에 관해서도 할 얘기가 많지만 이것도 미루겠습니다. 아무튼 서로 싸우지들 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