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학교를 가며 갑자기 눈 앞의 풍경이 하나의 카메라 무빙처럼 느껴졌다. 내 시선의 움직임은 부드럽게 이어졌고 길과 건물 사이의 하늘이 어떤 내가 모르는 의미를 함축하는 미쟝센이 되었다. 이 세상이 내재한 절대적 의미가 없다거나, 실존하지 않는다거나, 누군가의 꿈이라거나, 기계 문명의 노예제라고 하여도 내가 이 세상을 믿기를 그만둘 하등의 이유가 없다. 내가 그것을 생각하든 말든, 이 세상 밖에 진짜가 있든 없든, 내가 바라보는 세상은 하나도 변하지 않고 언제나와 같이 있다. 내일 해가 뜰 것을 믿는 것은 어찌 보면 참 우스운 일이다. 농장의 오리가 일생동안 한 번도 도축된 적 없다하여 오늘 도축이 안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해가 뜰 것을 믿는다. 안 뜨면 내가 어쩔건데? 내가 뭘 할 수 있는데? 하하, 요즘 입에 감기는 말투다. 해가 뜬다면 할 수 있는 일은 언제나와 같다. 열심히 학교를 다니고 사람들을 만날 것이다. 해가 뜨지 않는다면? 아마 그래도 비슷하지 않을까. 고등학교 때 읽은 어느 소설에서 지구의 자전이 느려지는 재해가 일어난다. 하지만 주인공이 겪는 어려움과 아픔은 재해가 없는 세상과 다르지 않았다. 인간이란 생각보다 굉장히 견고하다. 그것을 믿어도 좋을 것이다. 이 세상이 시뮬레이션이든 아니든 인간의 삶은 그 자체로 존재한다. 오히려 아무것도 삶의 의미나 내가 세상에 있는 이유를 정하지 않기 때문에 내가 보고 싶은 대로 살고 싶은 대로 있는다. 정말 중요한 것은 내가 어떻게 살고 싶은지, 내면의 충동과 꿈과 욕망에 열정적으로 귀 기울이는 일이다. 처음으로 매트릭스의 네오가 한 선택이 틀렸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빨간약은 삶의 탈출구다. 결국 그 선택의 구도도 작게는 모피어스가, 크게는 기계 지배자가 설정한 것이다. 파란약은 어떻게든 악착같이 삶에 붙어있는 것이다. 네오가 삶 속에서 자신만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면 기계가 우리를 지배하든 말든 아무 상관이 없다. 우리는 그 속에서도 선택을 하고 나름의 의미를 찾는다. 좀 위험하게 흘러가는 것 같아 스스로 제동을 걸자면 지배와 피지배의 진실을 깨달은 이상 빨간약을 고를 수 밖에 없다는 입장도 타당하다. 하지만 그런 구도도 사실은 모피어스 측에서 짠 것이 아닌가? 삶이, 사람이 있는 곳에는 언제나 프레임이 있다. 프레임을 깬다고 해도 그 위에 무한한 프레임의 연쇄가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프레임 밖에서 생각하려 하기 전에 내가 정말 보고자 하는 프레임을 선택하고 인지해야 하지 않을까. 긴 새벽 잠이 오지 않아 주절였다. 요새는 점점 더 형이상학적으로만 생각하는 것 같다. 종교와 영화에 중독되었나보다. 좀 더 현실적인, 끈적끈적 말랑말랑 살아있는 이야기도 해봐야겠다.
지금을 영화라고 생각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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