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일요일 집에 가서 김장을 했다. 무용담. 채칼로 무 썰다가 엄지 손톱을 잘랐다. 하미터면 손가락을 자를 뻔했다. 아직도 채칼의 위상기하역학적 구조를 잘 모르겠다. 결과적으로는 잘 채썰어진 게 신기하다. 연구를 하면서 배운 가장 중요한 것은 세상에 완벽은 없지만 더 완벽한 것과 그만하면 완벽한 것은 있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무를 채썰 때 마지막에 남는 무 조각의 크기도 그만하면 완벽하다는 기준점이 있을 것이다. 처음으로 무를 채썰면서 그 작업의 기준점을 하나 배운 셈이다. 초심자에게 주어지는 특혜는 한없이 완벽하게 하는 것이 허용된다는 점이다. 손톱을 자를 지경까지 무를 썰고 있으면 훌륭한 감독자가 적당한 기준을 알려준다. 무를 채썰 때 멈추는 기준은 칼로 직접 썰어넣는 편이 더 나을 때가 되면 멈추면 된다. 무용담 둘. 쪽파를 썰다가 손가락을 베였다. 잘 유통된 쪽파는 굵고 곧고 이파리도 대부분 파릇파릇하다는 것 같다. 이번에 받은 쪽파는 이파리가 다 마르고 물러서 다 벗겨내고 나면 너무도 얄쌍하고 죄다 잘 익은 벼처럼 휘어있었다. 전날 쪽파를 손질해보니 벗겨낸만큼밖에 남질 않았다. 당일 쪽파를 썰적에는 휘어진 걸 같은 방향으로 모아서 펴면서 썰려고 하다가 살을 자른 것이다. 그길로 나는 반창고를 붙이고 설거지로 좌천됐다. 좌천이래봐야 계속 로테이션 도는 거긴 하지만 말이다. 서울 올라올 때에는 갓 담은 김치 겉절이를 조금 가져왔다. 동거인은 건강한 맛이라는 평가를 내렸다. 내가 건강한 맛이라고 할 때에는 맛없음의 한 카테고리를 표현하는 것이다. 얘도 그랬는지 어쨌는지 모르겠지만 따로 몫을 남길 필요 없으니 잘 된 일이다. 오랜만에 밥을 지어 참치캔을 따서 같이 먹었는데 자치방에서로는 아주 오랜만에 밥다운 밥을 먹는 기분이었다. 마치 시계와 달력이 있어야 집다운 집 같다는 것과 비슷한 결이다. 집을 다녀오는 김에 연말연시를 지내는 이벤트의 하나로 달력을 갈았다. 집에는 달력이 있어야 한다는 게 내 일관된 주장이다. 날짜를 알고 싶으면 핸드폰을 보면 되지 않느냐는 말들을 하는데 그건 마치 뭐랄까 설거지가 안 돼있으면 나무젓가락을 쓰면 된다든지, 비누가 없으면 샴푸로 씻으면 된다든지, 수건이 없으면 휴지로 닦으면 되지 않느냐든지 하는 무언가 인간의 조건이 탈락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달력이 있어야지 해와 달이 도는 시공간의 공감각에 또렷하게 초점이 맞춰진다. 시각적이지 않은 모든 것을 흐리멍덩하게 내팽개치기 때문에 주장하게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평소에 안경을 쓰지 않음으로써 그 태도를 관철하고 있다. 아이유의 <안경>이라는 노래를 추천.
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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