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손잡이해방연대 아지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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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음과 열정에 대해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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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무엇이 젊은가
나는 때때로 어느 크로키 모임에 나간다. 그곳에는 그림을 업으로 해왔던 중년의 고수부터, 잃어버린 꿈을 내려놓지 못한 사람들, 혹은 단순히 흥미를 찾아온 사람들이 있다.

어느날 중년의 모델 한분이 오셨다. 천천히 자세를 잡고 모두가 집중하는 순간, 나는 마치 한순간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연필을 놀렸다. 그런데 그날 따라 그렇게 뒷모습의 형태가 눈에 들어왔다. 6분. 크로키 치고는 긴 시간이다. 다음 포즈가 되어도, 마치 스톱모션의 다음 프레임을 보는 것처럼 비슷해 보였다. 거의 같은 등을 두시간이나 쳐다봤다. 나는 단지 그것이 지금의 나에게 어떻게 보이는지만 묘사했다.

크로키가 끝나고 어느 한 분이 나에게 어땠냐고 물었다. 좋았다는 말에, 그분은 내가 그것을 그럭저럭 새롭고 재미있게 느낀 이유는 젊어서 그렇다고 했다. 본인의 입장에서는 너무 뻔해서 아쉽다고 하셨다.

그런데 과연 수십년씩 크로키를 그린 사람에게 있어서, 완전히 새로운 포즈란 존재하는 걸까? 만약 미세한 차이를 점차 잘 알아보게 된다면, 왜 그날의 포즈에서는 왜 발견하지 못한 것일까? 마음을 동하게 하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2 | 아빠의 그림
아빠는 예전에 그림을 좋아했었다. 어쩌면 지금도 좋아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더 이상 그리지 않는다. 나는 아빠가 그림을 그리는 것을 평생 거의 본 적이 없다. 어느날 술을 마시고 그런 말을 남겼다.

어느새 그림을 그린다는 것이 단순히 무언가를 똑같이 베끼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걸 넘어서는 사상이 있다는 것을 알고, 공부가 필요하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나이가 들고 더 이상 그러고 싶지 않았다.

나는 그림을 그리는게 아직 좋다. 더이상 원하지 않는 날이 올까? 만약 그렇다면 왜일까? 어쩌면 아빠는 대상을 똑같이 그리기 위해 노력했고, 그것을 달성하자 길을 잃은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처음에는 형, 그리고 아빠의 그림을 따라잡고 싶었지만, 이제는 잘 모른다. 그냥 그리고 싶을 뿐이다. 의미는 없다.


3 | 지속가능성
어느날 중고 카메라 매물로 엄청나게 고급 장비들이 대거 출현한 적이 있었다. 분명 초보자의 변심으로 나올 물건이 아니었다. 판매자는 나이가 너무 들어 눈이 점점 나빠지고, 더 이상 사진을 찍는 것은 어렵다고 생각했다. 슬픈 기분이 들었다. 그는 아직 사진을 찍고 싶어 했을 것이다.

어느 일러스트레이터가 있었다. 그는 몸이 아팠다. 그는 점차 잠수부를 많이 그리게 되었다. 몸이 조금씩 마비되고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했지만, 그래도 그렸다. 손가락이 잘 움직이지 않자 태블릿의 인식반경을 줄여서라도 그렸고, 오른손이 움직이지 않자 왼손으로 그렸다. 그는 마지막으로 잠수부를 그리고 떠났다.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식지 않았다.

나는 사실 목표가 없다. 단순히 어떠한 일련의 행위집합을 지킬 수만 있으면 다른건 별로 상관 없을 것 같다. 과연 내가 글도 그림도 음악도 내적 동기로 놓게 되는 날이 올까? 나에게 다른건 거의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타인이 이런 나를 보면 젊음이라 부를지도 모르겠다. 아마 나의 열정은 행동지향적인 정서지만, 목표지향적이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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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 그자체가 목표가 된다면 나름 목표지향적이기도 한게 아닐까요. 저는 목표나 꿈같은게 한순간만을 포착한 스냅샷같은 느낌이 아니라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개념이라 생각하는 편인데 그러다보니 '무언가 행동을 하고있는 나' 그런 이미지같은게 곧 목표가 되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