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음사 유튜브를 보던 중 평어 회의가 인상 깊었습니다. 평어란 '이름 호칭 + 반말'이라고 해요. 원래 있는 말은 아니고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말입니다. 민음사에서는 회의를 할 때 평어를 사용하기도 하더군요. 반말을 하는 것도 인상 깊지만 서로를 부르는 호칭이 더 기억에 남았습니다. 평어를 사용할 때는 불필요하게 ~님 같은 수식을 넣지 않고 바로 이름으로 부릅니다. 그리고 받침 있이 끝나는 이름 뒤에 '이'나 '아'를 붙이지 않고 부르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레팝이가 말해볼까?'라고 하지 않고 '레팝이 말해볼까?'라고 하는 식이죠. 두 문장에서 쓰인 '이'가 다르다는 거 아시겠죠? 사람을 부를 때도 '레팝아'라고 부르지 않고 '레팝' 이렇게 부를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호칭이 대화에서 중요한 요소여서 처음 만나는 사람과 얘기할 때나 대화에서 제3자를 언급할 때 호칭을 살짝 고민하는 텀이 생기게 됩니다. '님? 씨? 아니면 선배님? 형님?' 이런 생각이 순식간에 지나가지는 하지만 말 사이에 멈추는 구간이 생기는 것이죠. 또 호칭 하나로 대상과의 다양한 거리감을 만들 수도 있습니다. 여자 분들은 모르겠지만 남자 분들은 '형' 그리고 '형님'이라는 호칭 사이에서 오는 거리감의 차이를 느껴보신 적이 있을 것 같습니다. 평어 회의에서는 회의에 참석하지 않은 타 팀원도 직급 때도 이름으로 부르는 것 같던데 (이건 확실히 모르겠습니다.) 그러면 대화 효율에서 약간의 이점도 주는 것 같습니다. 호칭을 고민하지 않는다는 것과 대화 상대와 거리감을 좁혀 생각을 좀 더 자유롭게 말할 수 있다는 것이 핵심입니다. 너무 대화를 효율의 문제로 보는 게 불편하다면 평어가 말을 좀 더 매끄럽게 할 수 있게 도와준다고도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 최근에 직장에서 (특히 IT 계열 스타트업에서) '불필요한 호칭을 없애고 영어 이름을 쓰자'라는 움직임이 있었던 것 같아요. 이것도 평어와 목적이 비슷하다고 볼 수 있겠네요. 여기선 호칭만 바꾸었지만요. 호칭으로 인해 발생하는 다른 상황 중 하나로 예능 프로그램의 '인물 퀴즈'가 있습니다. 인물 퀴즈는 제시된 인물(보통 유명인)을 보고 짧은 시간 안에 해당 인물의 이름을 맞추는 게임입니다. 보통 일반인들이 인물 퀴즈에 참여하면 인물의 이름만을 말합니다. '푸레팝!' 이런 식으로요. 그런데 예능에서는 연예인들이 다른 연예인의 이름을 맞추기 때문에 이름 뒤에 꼭 추가적인 수식을 붙입니다. 가장 흔한 게 '선배님'이고 (자신보다 나이가 많으면) '배우님' 같은 직업을 붙이기도 합니다. 대부분 '님'이 붙네요. 저한테는 웃겼던 포인트가 그 수식어를 뭐라고 붙여야 할지 잠깐 고민하는 텀이 여기서도 생긴다는 것이었어요. 이제는 이 게임이 유명해져서 대체로 '선배님'을 붙이는데 익숙해진 것 같습니다. 이런 수식에서 오는 거리감이나 예의를 챙겨야 함(?)의 부담을 살짝 덜어주는 것이 평어의 '이름 호칭'인 것 같습니다. 평어의 다른 요소인 '반말'에 대해서도 얘기를 해볼게요. 흔히 반말을 생각하면 격식이 사라지고 경계를 허무는 느낌이 있잖아요? 그래서 저는 요즘 점점 새로 만나는 사람들과 반말을 해도 되는지 고민을 하기도 합니다. 그렇게 일반적으로 생각나는 반말에 상대를 존중하는 마음을 더하면 평어가 되는 것이죠. 그렇다고 그냥 반말이 상대를 무시하는 건 아니지만요. 평어의 예시가 궁금하시다면 아이들에게 하는 반말이 가장 흔하고 적절할 것 같습니다. 다시 생각해보니 아주 적절한 건 아닌 것 같지만 비슷하긴 한 것 같습니다. 아이들에게 반말을 하지만 친절하게 말하고 나쁜 말 안 쓰게 되는데 그런 자세로 다른 성인에게도 말하면 평어가 되는 겁니다.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얘기를 할 때 반말을 쓰는 문화가 있다고 하네요. '착한 반말' 같은 표현으로 사용되는 것 같아요. 생각해보니 스레드라는 SNS에서도 사람들이 반말을 사용해요. 근데 저는 거기서 다른 사람에게 댓글을 달 때 꾸역꾸역 존댓말을 쓰곤 합니다. 평어에 대한 오해를 막고자 한 가지 얘기하자면 평어는 그냥 혼잣말로 '나는 오늘 일찍 일어났다.' 같은 식의 서술체, 일기체와는 또 다릅니다. 기본적으로 대화에서 사용되는 것이기에 상대가 있어야 성립이 된다고 하네요. 나중에 어떤 집단에서 상급자가 되면 평어 회의를 도입해보고 싶어요. 야자타임 느낌이 들지 않게 조심해야겠죠. 상급자라는 단서를 단 것도 이유가 있는데요. 어린 사람이 갑자기 반말로 진행하자고 하면 오히려 서로를 존중하는 말하기 시작 전에 상대에게 무례를 끼치는 사람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 첫 시도는 어색하겠지만 시간이 가면서 서로 평어에 익숙해진다면 수직적인 관계를 넘어서 대화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 같습니다. 관련된 책이 하나 있습니다. 이성민 저, 민음사 출판의 <말 놓을 용기 - 관계와 문화를 바꾸는 실전 평어 모험>입니다. 작가가 평어를 만들어서 처음 사용했다고 해요. 이후로 사회의 다른 모임에서도 조금씩 평어가 퍼지기 시작했고요. 단순히 평어에 대해서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 사회에서 사람들 사이의 관계, 다른 사람들과 일하는 문화 등에서 대해서도 많이 고민한 내용을 다루고 있는 것 같습니다. 목차 중에 '기현 안녕?'이 있는데 제가 본 민음사 평어 회의 영상에 출연한 편집자 중 한 분이 기현이시거든요. 아마 작가와 관계가 있지 않을까 예상해봅니다. 이 책도 그 영상에서 추천했어요. 일단 읽고 싶은 책 목록에 추가해뒀습니다.
평어 - 이름 호칭과 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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