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충사> 애니를 불따로 본 이후로 가장 좋아하는 애니메이션 Top 3 정도에 항상 속해있습니다. 최근에 우연히 네이버 시리즈에서 <충사>를 만화로 읽었는데 너무 좋은 나머지 10권짜리 시리즈 전체를 충동 구매해버렸습니다. 요즘엔 집에 있는 동안 한 권씩 읽고 있는데 사길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충사>의 세계에는 '벌레'라고 부르는 존재가 나옵니다. 생명 그 자체에 가까운 것으로, 사람 눈에는 잘 보이지 않지만 간혹 기묘한 작용을 일으킵니다. 기묘하다는 점에서 다른 이야기에서 등장하는 '요괴'와 같다고도 볼 수 있고, 보이지 않지만 끊임없이 영향을 주고받는다는 점에서 미생물과 같다고도 할 수 있겠네요. 요괴가 보통 동물에서 모티브를 따온다면, '벌레'는 식물에 좀 더 가까운 듯합니다. 충사는 사람이 '벌레'와 마주칠 때 생겨나는 여러 기현상을 해결하는 직업입니다. 만화 <충사>에서는 생업으로 충사를 하는 깅코라는 인물이 주인공으로 등장합니다. 깅코는 일본의 개화기 직전 즈음으로 보이는 곳들을 떠돌아다니면서 때로는 벌레를 퇴치하고 때로는 이상한 현상을 설명해주는 일종의 의사나 박물학자 같은 일을 합니다. 이 만화가 매력적인 이유는 누구나 알고 있는 미묘한 감각을 그 편안한 그림으로 옛날이야기처럼 재미있게 그려낸다는 점에 있습니다. 예를 들면 손으로 귀를 꽉 막으면 들리는 묵직한 땅울림 같은 소리나, 눈을 감으면 보이는 눈꺼풀 뒷면의 반짝거림, 긴 겨울을 지나고 피어난 꽃을 오랜만에 볼 때의 반가움 등이 있습니다. <충사>는 이러한 미묘한 감각들을 의식 위로 끌어내어 '벌레'라는 기묘한 존재가 엮어내는 이야기에 녹여냅니다. 그 감각, 이야기의 주제, 벌레의 특성이 에피소드의 끝에서 하나로 합쳐지는 순간 느껴지는 뭉클함이 있습니다. <충사>가 보여주는 생태주의적 사상은 무언가 (좋은 의미에서) 속이 편하다는 느낌이 있습니다. 때로는 사람에게 해가 되는 벌레도 등장합니다. 아마 작중에서도 충사마다 생각이 조금씩 다른 것 같지만, 깅코는 항상 그것을 박멸하거나 격리하지 않고 그대로 살면서 공존할 방법을 찾고자 합니다. 그것은 사람과 자연이 지향해야 할 관계에 대해 지속적으로 메시지를 던집니다. 이 만화를 본 영향도 있고 산과 들이 가까운 곳에서 자란 영향도 있을 텐데요, 저는 집에 벌레가 들어오는 것에 비교적 무심한 편입니다. 본가에 있을 때는 집에 벌이나 개미, 돈벌레, 곱등이, 사마귀 같은 온갖 벌레가 돌아가면서 들어왔었습니다. 특히 여름마다 방에 벌이 꼭 한 마리씩 들어오고는 했지만 그다지 때려잡거나 해야겠다는 생각은 안 들었어요. 직접 잡기엔 징그럽기도 하고 잡기가 귀찮기도 하잖아요. 한번은 벌 한 마리가 벽에 붙어서는 하루이틀 정도를 꿈쩍도 안 한 적이 있었는데 아마 걔는 거기서 굶어죽은 게 아닐까 싶어요. 그 뒤로는 벌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연히 창문 틈새로 들어와서는 아무것도 없는 막힌 공간에 갇혀서 쫄쫄 굶고 있는 거잖아요. 그래서 가끔 귀찮지 않을 때는 창문을 열어 내보내곤 했어요. 들어온 구멍으로 다시 나가면 될텐데 길을 못 찾고 그렇게 헤매이는 것도 바보 같습니다. 곱등이나 다른 기어다니는 벌레들은 신경을 안 쓰면 그냥 어디론가 사라지거든요. 전 그런 식으로 귀찮음에 기반한 공존을 실천해왔다고 생각합니다. 굳이 때려잡을 필요가 없다는 생각을 하면 평화가 찾아옵니다. 생각해보면 원래는 벌레나 동물들도 어디든 마음대로 돌아다녔을텐데 사람이 집을 짓고 억지로 구역을 나눈 거잖아요. 원래 모두가 함께 쓰는 공간이었다고 생각하면 기를 쓰고 막을 필요도 없습니다. 좀 흐리멍덩하게 경계를 나눠도 괜찮을 것 같아요. 사람과 자연 사이에도,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충사>(우루시바라 유키, 1999-2008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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