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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독한 도착에 빠진 사람

왼손잡이해방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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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산책을 많이 다니고 있습니다. 하기 싫은 일을 잊는 데에는 잠보다는 산책이 와따더군요. 잠은 너무 많이 자면 더는 잘 수 없게 되지만 산책을 더 할 수 없을 만큼 많이 하기는 어렵습니다. 오늘도 카페에 가서 한 시간 정도 앉아서 졸업논문 도입부를 써보다가 자리를 박차고 거리로 공원으로 나섰습니다.

오늘은 볕이 참 좋았는데 공원은 생각보다 사람이 적었습니다. 절대적으로 적은 것은 아니었지만 발 디딜 틈 없을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도입부를 이어서 쓸만한 자리가 있을지 찾아보았는데, 아마 있었어도 졸업논문 따위 쓰고 있지 않았겠지만, 앉을 만한 자리들은 모두 아줌마 아저씨들(혹은 더 나이든 사람들)이 앉아있었습니다. 그 근처에 자리를 잡으려면 잡았겠지만 집 안이 답답하여 그저 돌아다니는 노인처럼 있기는 싫었습니다. 거기 앉아있는 사람들이 꼭 할 일 없이 돌아다니는 것이라거나, 제가 거기 앉지 않는다고 해서 할 일 없이 돌아다니는 것이 아니게 되는 것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그런 알량한 자존심으로 더욱더 아무도 없는 장소를 찾아 떠돌아다녔습니다.

놀랍게도 주변에 아무도 앉아있지 않은 그런 자리가 있었습니다. 열심히 어디론가 향하고 있거나 무언가에 열중해 있는 사람들 사이에 있는 게 어색했는데 숲속에 그렇게 홀로 머무를 수 있는 자리가 있다는 것은 행운이었습니다. 거기에 앉아서는 역시 졸업논문 따위 쓰지 않고 그저 소설만 들여다보았습니다. 아이들을 데리고 나온 가족들이 얼마간 머물다 갔지만 대체로 한산하였습니다.

저녁을 먹고 집에 와서는 소설을 계속 보았습니다. 저번에 얘기한 이상문학상 작품집을 읽고 있습니다. 정기현의 <슬픈 마음 있는 사람>이라는 단편을 읽었는데 재미있었습니다. 소설을 읽다보면 저도 모르게 소리내어 웃게 되고는 하는데 혼자서 그렇게 웃고 있는 게 괜히 겸연쩍어서 일부러 몇 번 더 하하하! 하고 웃고는 합니다.

이 소설의 주인공 기은은 반년간 휴직한 상태입니다. 그동안 교회도 다니고 산책도 다니고 하고 있답니다. 조그마한 교회에 기은 나이대의 사람은 준영 한 사람뿐입니다. 기은은 본래 산책할 때에 생각에만 빠져있는 사람인데 준영에게서 마을 곳곳에 적혀 있는 "김병철 들어라" 낙서 시리즈에 대해 듣고는 어느새 김병철 낙서를 찾아다니고 있습니다. 그 낙서들은 대체로 김병철을 저주하는 내용입니다. "김병철 들어라 31. 당신은 우리를 파멸시켯고 나와 내 가족들을 구렁텅이에 처넣엇다 죽어야 마땅한 사람아."

기은은 준영과 조금씩 친해지던 와중에 준영이 교회 목사의 아들이라는 말을 듣게 됩니다. 내심 같은 처지에서 교회에 조금씩 적응하는 거라고 생각하던 기은은 혼자 배신감을 느꼈고, 그보다도 준영의 그 고백에 그냥 "아..."하고 아무말도 못하고 어색하게 군 것을 곱씹으며 밤잠을 뒤척입니다.

아니, 나 역시도 준영에게 제 아버지가 목사예요, 하는 것과 비슷한 대답을 해줬어야 했는데. 하지만 기은에게는 꼭꼭 감춰두었다가 불시에 톡 까놓을 만한 비밀이 없었다.
음.......
기은은 이런 결론에 이르러서야 마침내 잠들 수 있었다.
내일은 김병철 낙서를 좀 더 모아볼까 봐. 준영이 지금까지 모으지 못한 종류의 낙서들을 찾아 나서서 일이 잘 풀린다면, 그것들을 잘 기억했다가 준영에게 말해줄 수도 있을 것이다!

기은은 김병철 낙서 찾기를 하루 안에 끝내기로 마음 먹습니다.

하루쯤은 괜찮지만 이틀이 된다면 그건 너무 본격적이었고 (...) 이틀은 사흘이 되기 쉽고 사흘이 되면 일주일은 금방이고 일주일이 지나면 영영 낙서 찾기를 그만둘 수 없게 된, 지독한 도착에 빠진 사람이 되고 말 것이다. 기은은 한낮의 교회에서 그렇게 된 사람들이 나오는 소설을 많이 읽었다. 기은은 책 바깥에서 인물들을 내려다보며 한 번쯤은 뒤를 돌아봐도 좋지 않겠니, 물었으나 인물들은 뒤 없이 구렁텅이로 직행했다.

다행히 기은의 김병철 낙서 찾기는 하루 안에 매듭이 지어집니다. 그걸 보면서 저는 슬슬 걱정이 되는 것이지요. 나의 산책과 졸업논문 쓰기는 지독한 도착에 빠지지 않고 잘 끝맺을 수 있을 것인가....

참고로 도착은 어디 다다른다는 뜻이 아니고 본말전도랑 비슷한 뜻의 단어입니다. 지난 학기에 한국소설 수업에서 난생 처음 들어서 교수님께 여쭤보았던 추억이 있습니다.

고등학교 때에는 재미없는 것을 해야할 때 어떻게든 의미를 부여해서 성실성을 되찾았었습니다. 졸업논문 쓰는 것도 어딘가 의미가 있겠죠. 실은 목적 같은 건 있었던 적이 거의 없었고 그저 어떻게 해야 재미있는 것만 하고 살까 고민했던 것 같습니다. 재미있는 것만 하고 살 수는 없다는 결론이 나와서 지금 약간 괴델을 만난 힐베르트 같은 심정이지만, 괴델 이후에도 수학은 계속 되었으니까요. 어쨌든 재미에 대한 고민은 계속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한번씩 뒤를 돌아볼 여유만 있다면 지독한 도착에는 빠지지 않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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