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흘러살기

왼손잡이해방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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흘러가듯, 흐르는대로 살면 될거라 생각했는데 그렇지가 않다.

흐른다는 것은 내 현재와 미래에 고저차가 있어서 중력을 받는다는 것이다. 시간의 흐른다는 현상 자체가 이미 일종의 고저차가 있음을 방증하지만 요새는 시간만 흐르고 내 삶은 흐르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는다. 해야하는 일일텐데 하고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다.

올초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들떴다가 가라앉는 게 괴로운 거겠지 짐작하고 있다. 요새 스스로 계속 질문하는 것은 예전엔 이런 무기력함을 어떻게 이겨냈나 하는 것이다. 그때의 무기력함과 지금의 무기력함이 같은 종류이긴한가? 왜인지 예전보다 지금이 더 위기감이 큰 것 같다.

그런 생각들을 하다가 특히 최근에 알게 된 것은 사람들과 어울리는 동안에는 고민의 크기가 훨씬 작아진다는 점이었다. 가끔 과방에 가서 더 넓은 세상과 소통해야 한다. 과방이라고 대단히 넓은 세상은 아니지만 집과 랩만 다니던 한달의 시간에 비하면 조금 더 숨통이 트인다 — 지금 돌이켜보면 강박 같은게 있었는지도 모른다. 동아리 같은걸 다녔으면 좋았을텐데 이제 와서 사람이 고파질줄은 신입생 때는 생각치 못했었다.

연구실에 적을 올려 다니고는 있지만 내가 주도적으로 연구를 하고 있는걸까 하는 고민도 있다. 머리와 공책에서만 굴러다니는 연구는 이젠 질린 것 같다는 느낌도 있다.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설명할 수 있는 것을 해야할 것 같다.

지금까지는 삶에 내가 끌려다닌 것 같다. 특별히 향하고 싶은 곳은 없다고 생각했었다. 그렇지만 끌려다니듯 살아있고 싶은 것도 아님을 요새 느낀다. 삶에는 목적이 없음이 진실이라고 생각했는데 무엇이 참되고 거짓된지는 사실 그리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그 명제가 삶에 어떤 힘을 가하는가다. 목적이 없다는 명제는 지금 내가 느끼는 바로는 진실로 취급하기 좋은 명제는 아니다. 지어낸 것이든 주어진 것이든 저절로 생겨난 것이든간에 무엇이라도 목적으로 두어야 살기가 편하다.

그런 목적이 예전에는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더 나은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었다. 언젠가 그걸 잊어버렸지만 이젠 다시 세울 수 있을 것 같다. 아무래도 고난은 기꺼이 반겨야할 무언가는 아닌 것 같다. 고난은 나를 죽이지는 않았지만 나를 강하게 만든 것 같지도 않다. 그냥 거기에 있었고 넘어졌고 시간으로써 아물었고 겨우 원점으로 돌아왔을 뿐이다.

어쨌든 재부팅이 됐다. 어떤 원리로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이젠 좀더 합목적적으로 살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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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킨 덕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