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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에 사는 일상

왼손잡이해방연대, (개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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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드데드 데몬즈 디디디디 디스트럭션>이라는 애니메이션 영화를 봤다. 만화 원작이라고 한다. 1, 2부로 나뉘어 개봉했다. 1부는 아무 생각 없이, 뭔지도 모르고 봤다. 1부를 봤더니 2부를 보는 것이 정해졌다. 뭔지 모를 때는 안 봐도 됐지만, 뭔지 알고 나니 다 보지 않고는 못 배기는 영화였다.

사람을 구하냐, 세상을 구하냐. 옛 만화들에서는 어땠는지는 기억이 안난다. 아마 히로인과 세상을 모두 구하거나 히어로가 자신을 희생하여 세상을 구했을 것이다. <날씨의 아이>부터는 뭔가 다르다. 세상을 버리고 히로인을 구한다. 달리 말하면 MZ하달까.... 도쿄를 침수시키고 여주인공을 살리는 엔딩을 잊을 수 없다.

<디디디디>에서는 일단 도쿄 상공에 거대한 UFO를 띄우고 시작한다. 엄청난 재난이 눈 앞에 있는데 일상은 아무렇지 않은듯 흘러간다. 1부를 지배하는 정서는 "이 상황에 이렇게 태연해도 괜찮은건가"이다. 도심지에서 심심찮게 포격이 일어난다. 포격으로 떨어지는 비행체에 맞아죽는 민간인도 생기지만 뭐... 고딩들은 입시나 하면 그만이라고 한다. 그러나 역시 그들도 재난과 살을 맞대고 있다. 잊을만하면 그들의 일상을 침범하고 빼앗아간다. 입시만 하도록 내버려두지 않는다. 그런데도 그들은 입시나 해야한다.

2부에서는 이제 이 UFO가 왜 찾아온건지, 그 안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자세한 상황이 설명된다. 상황 파악이 되면 해결책이 나와야겠지만... 해결책이 없다. 재난 상황 속에서 저마다 해결책을 찾거나 일상을 영위하거나 하지만 해결은 못한다. 아무도 재앙을 막지 못하고, 지구는 그대로 멸망한다. UFO도 UFO대로 침몰한다. 모두가 패자다.

1부는 일상의 연약함, 2부는 위기 속의 무력함이 주된 정서 같다. 옛날엔 일본의 모든 문화와 정신세계를 원자폭탄으로 돌렸었다면 최근 나오는 것들은 동일본 대지진이 근원이 되는 것 같다. <스즈메의 문단속> 리뷰를 보면서 동일본 대지진에 대한 일본인들의 정서를 알게 됐는데 그걸 알고 나니까 여기저기서 대지진이 눈에 띈다. 이를테면 <룩 백>도 작가 후기를 보면 대지진 얘기가 있다. <룩 백>도 일상의 연약함에 대한 이야기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일상이 그렇게 깨졌을 때 그것이 얼마나 불가역적인지도 그려내고 있다. <디디디디>에서는 바로 앞에서 일어난 대재난 이후에도 계속해서 그 재난 속에서 일상을 이어나가야 하는 시민들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이 나라나 내 삶에도 어떤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지 상상이 잘 안 간다. 그런 맥락에서 <디디디디>가 상영시간 내내 풍기는 위기감은 결코 낯설지가 않다. 너무나 잘 이입이 된다. 이러고 있어도 되는 건가. 아무것도 모르겠다.

언제나 세상을 망친 것은 어른들이고 그것을 해결해야 하는 것은 아이들이다. 당대의 문제를 그들 나름의 방식으로 해결했던 어른들은 왜 너희의 문제는 해결하려하지 않고 방치하느냐고 묻는데, 내 생각에는 문제가 더 어려워진 것이다. 문제가 풀리지 않게 된 이유는 문제가 어려워졌기 때문이라는 당연한 이야기. 그들 자신도 풀지 않고 그대로 떠넘긴 문제들을 자꾸만 풀어보라고 그런다.

이런 생각을 하다보면 괜히 "신난다"라고 말하고 싶어진다. 마치 퍼즐 게임이 어려울수록 재미있듯이 세상이 너무 재미있다. 퍼즐이 풀리지 않으니 두고두고 할 수 있다. 풀리는 퍼즐 100개보다 안 풀리는 퍼즐 1개의 가성비가 무한히 높다. 이 얼마나 가성비 높은 퍼즐인가! 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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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 대지진의 표지네요 이제 그것만 보이겠어요

재난은 세상의 부조리와 닮아있어서 그런걸지도 모르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