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조리라는 감정이 찾아올 때 이것이 무엇이다라고 바로 콕 집어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즐거움이나 슬픔처럼 단순하고 강렬한 감정이 아닙니다. 어느새 문득 들게 되는 종류의 감정입니다. 하지만 부조리라는 감정이 이끌어내는 생각과 행동을 분석해 볼 수는 있을 것입니다. <부조리의 벽>이라는 장에서는 부조리가 어떤 느낌인지 풀어냅니다.
무대 장치가 문득 붕괴되는 일이 있다. ... 똑같은 리듬으로 반복되는 월, 화, 수, 목, 금, 토 이 행로는 대개의 경우 어렵지 않게 이어진다. 다만 어느 날 문득, "왜?"라는 의문이 솟아오르고 놀라움이 동반된 권태의 느낌 속에서 모든 일이 시작된다. (29쪽)
무대 장치의 붕괴라는 비유가 참 적절합니다. 습관처럼 살아오던 일상 속에 갑자기 "이걸 왜 하고 있지? 왜 이렇게 살고 있지?"하는 물음이 떠오릅니다. 대개는 무시하고 사그라듭니다. 하지만 어느 시점엔가 이 물음에 대해 진지한 고민이 드는 때가 옵니다. 부조리와 눈이 마주친 거죠. 이외에도 미래란 곧 죽음임에도 미래를 기다린다는 것, 어느 순간 갑자기 온 세상이 낯설어지고 비인간적으로 느껴지는 순간, ... 이 절에서는 그러한 느낌들을 열거하면서 부조리라는 감정을 묘사합니다.
한편 합리의 가장 탄탄한 토대라고 믿어온 논리학과 수학, 과학도 인간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 당신은 눈에 보이지도 않는 태양계 유성군 얘기를 하면서 그 속에서 전자들이 어떤 핵 주위를 회전한다고 설명한다. 이렇게 되면 나는 당신이 시
詩
에 도달했다는 걸 알아차린다. 다시 말해서 내가 알기는 아예 글러 버린 것이다. ... 그리하여 당신은 나에게, 확실하긴 하지만 내게 아무것도 가르쳐주지 않는 묘사와, 내게 가르쳐 준다고 주장하지만 전혀 확실하지 않은 가설 가운데 그 어느 하나를 선택하라고 한다. (39-40쪽)
확실히 양자역학이란 인간의 지성에게 친절한 체계는 아닙니다. 과학이 다만 알려주는 것은 세상은 당신이 생각한 모습이 아니다라는 점이죠. 이 구절을 읽으면서는 유튜버 궤도가 항상 비유를 할 때 왜곡이라고 말하는 것이 생각났습니다. 인간은 세계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기껏해야 세계를 왜곡해 그릴 수 있을 뿐입니다. 가장 작은 부분부터 가장 큰 부분까지 그렇습니다. 지성은 세계에 패배했습니다.
저 또한 지성에 대해 그런 감정을 느낀 적이 있습니다. <괴델·에셔·바흐>라는 책에서 괴델의 정리를 마주했을 때입니다. 수학은 불완전하다, 모든 것을 설명할 단순한 체계는 없다. 그 뒤로 한동한 회의주의자로 살았습니다. 지금은 인간이 할 일이 잔뜩 남아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래도 괜찮다는 느낌이지만... 역시 이 세상 어느 곳도 단단한 부분이 없다고 생각하면 아쉬움이 남네요.
이 뒤로는 당대의 여러 철학자가 남긴 부조리에 관한 저술들을 열거합니다. 솔직히 저는 읽으면서 별로 안 궁금했습니다. 기억 나는 것도 없어요. 아무튼 까뮈 혼자 한 망상은 아니라는 거겠죠.
단 한 번이라도 "이건 분명하다."라고 말할 수만 있다면 모든 것이 구원될 수 있으리라. 그러나 열망뿐인 사람들은 서로 다투어, 아무것도 분명한 것이 없고 모두가 혼돈이며 인간이 가진 것이라고는 오직 그의 통찰력과 그를 에워싸고 있는 벽에 대한 명확한 인식뿐임을 공언한다. (48쪽)
"이건 분명하다."라고 데카르트는 말했죠. 정확히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유명한 말입니다. 다른 모든 불확실한 사실들을 걷어내더라도 내가 생각한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는 것입니다. 다만 그 뒤로 이끌어내는 두 가지 명제는 역시 중세적입니다. 첫번째 명제는 신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불완전한 인간이라는 존재가 신이라는 완전한 개념을 알려면 신이 그 개념을 주입해야만 한다고 합니다. 두번째 명제는 세상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신이라는 완전무결한 존재가 데카르트를 상대로 대사기극을 펼칠리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안타깝게도 데카르트의 두 명제는 모두 틀렸다고 볼 수 밖에 없습니다. 현대 과학을 관통하는 한 가지 중요한 개념은 바로 "창발"입니다. 단순한 규칙이 아주 많이 모이면 갑작스럽게 새로운 현상이 일어납니다. 인간의 지성처럼 복잡한 현상도 실은 조그마한 전기 신호가 많이 모인 것 뿐이라는 게 지금에 와서는 거의 확실시됩니다.
정말 신이 세상을 창조했다고 해도, 신은 인간 전체를 상대로 대사기극을 펼쳤습니다. 논리학과 수학에는 본질적인 불완전함이 내재하고 아원자 세계와 블랙홀 내부는 인간이 상상할 수 없는 모습입니다. 이런 걸 보면 신은 데카르트를 상대로도 사기를 친 게 아닐까요. 데카르트는 완벽한 합리에 의한 추론이라고 생각했겠지만 이렇게 구멍이 숭숭 뚫려있잖아요.
이렇게 되면 나는 정말 존재하는 것인지도 의심이 가네요. 그거야말로 정말 어려운 문제입니다.
갑자기 데카르트로 넘어가버렸지만 어쨌건 세계는 어떤 식으로도 이해되지 않는다는 게 요점입니다. 인간과 세계는 단절되어 있습니다. 둘의 사이를 이어주는 것은 부조리뿐입니다. 비합리한 세계와 세계를 이해하고 싶었던 인간의 향수 그리고 둘 사이에서 솟아나는 부조리가 <시지프 신화>가 다루고자 하는 드라마의 세 등장인물입니다(4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