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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허함

왼손잡이해방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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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종일 먹고 왔다. 아침에 밥을 먹고 십원빵을 먹고 점심에 중국집 볶음밥 +α를 먹고 치아바타 빵을 먹고 딸기를 먹고 과메기를 먹고 저녁을 먹을까말까 하다가 터미널에서 국수를 먹었다. 배가 불러 숨이 찰 지경인데 집에 와서 식빵을 보니 먹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고등학교 때 기숙사의 잠 안 오는 밤이면 배고프다고 느끼면서도 이게 정말 배고픔인가 하고 생각해보면 외로움이나 힘듦 그 자체인 것 같기도 하고 근본적으로는 공허하다는 감각이 아닐까 싶었다. 지금의 상태는 그와 비슷한 것일지도 모른다. 가족과 지내다가 서울에 올라오는 날이면 그 낙차에 어떤 슬픔을 느낀다. 어떤 공허함이다.

공허함.

배고픔과 공허함에 대한 생각을 어느 만화를 보면서 오랜만에 떠올렸다. 무서운 장면들이지만 그 장면들이 내 삶의 한 조각일 수도 있으므로 바라보아야 한다.

내 속에 언제나 우주배경복사처럼 흐르는 검푸른 느낌이 있다. 나는 그 검푸른 것을 외로움이라고 이름 붙였다. 언어는 부정확하다. 나는 외로움이라고 이름 붙였지만 실은 공허함이라고 부르는 편이 더 옳을지도 모른다. 언어는 도구이고 도구는 꿈을 꾸지 않으므로 여전히 나는 그것을 외로움이라고 일컫는다.

외로움이라 일컫는 이유는 그 검푸른 것이 가끔 사라지기 때문이다. 처음 그것이 사라지는 것을 느낄 때 그것이 사라질 수 있음을 알았다. 또 그것이 외로움이라 부를 수 있는 무언가임을 알았다. 외로운 채로 나서 살아왔으나 그 상태는 정상--올바르므로 돌아가려는 인력을 일으키는 상--이 아니고 무수한 가능한 상 중의 하나일 뿐이다. 조건이 맞으면 외롭지 않은 상태로 옮겨가서 머무를 수 있다. 그런 환상을 갖고 있다. 지금 뭘 해야 하는지는 몰라도 결국 어떻게 되어있어야 하는지는 어렴풋이 감이 잡힌다. 사람은 혼자 살 수 없다. 숨을 쉬고 밥을 먹듯 사람을 만나야 한다.

그나저나 인혜는 어떻게 안 죽고 계속 살아있냐ㄷㄷ 다시 읽어보니까 진짜 무섭다. 미친 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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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원아 그 검푸른것 내가 없애주러 갈까 ??

내일 과방에서 만나

댓글 좀 무섭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