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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꿈

이름,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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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지를 읽다 보면 꿈 일기가 간혹 보인다. 뭔가 재미있거나 유쾌하게 알쏭달쏭한 느낌을 준다. 흔히 꿈은 깨어있을 때의 기억이나 느낌에 강한 영향을 받는다고들 한다. 나는 유쾌한 꿈은 생각나지 않는다. 나는 깨어있는 동안 무슨 경험을 한걸까.

#1
수요일이 목요일이 되던 밤. 아무도 없을 것 같은 밤이었다. 잿빛 길거리에는 하늘과 지평선이 보이지 않고 낡은 건물들이 나란히 가로를 형성하고 있었다. 유리창이 없이 그대로 뚫린 개구부 안쪽은 어두워서 보이지 않았다. 입구에 계단이 놓인 건물로 들어서자 어두컴컴하고 넓지 않은 중복도를 지나 2층의 어느 방에 도달했다. 그곳에는 망가진 여자들이 여럿 있었는데, 그중 한명이 있는 방에 들어섰다. 일선을 넘는 듯한 해방감이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곳에는 사람이 없었다. 나는 그대로 건물을 나왔다.

#2
다세대주택같이 생긴 건물이 있었다. 계단실을 통해 지하실로 내려갔더니 웅크린 채 허리조차 펼 수 없는 천장이 아주 낮은 공간이 있었다. 움직이기도 힘든데 이곳에 사람들이 산다고 했다. 화장실에는 칸막이도, 배수구도 없었다. 더 안쪽으로 들어가면 통로처럼 생긴 공간이 있을 거라며 잠시 평면도 비슷한 것을 보여주더니, 이곳에서는 길을 잃으면 그대로 나올 수 없다고 누군가 말했다. 바닥도 벽면도 천장도 하얀 타일로만 이루어져 있었다. 둘러보니 환풍구가 없었다. 불안해진 나는 숨을 쉴 수 없었다.

#3
수영장이 있었다. 실내이기도 했고, 실외이기도 했다. 입수하자 생각보다 주변이 어두웠다. 다시 나오려고 했는데, 수면 높이에 투명한 유리가 천장처럼 막혀있어서 물 밖으로 나올 수 없었다. 나는 느긋하게 익사하는 듯 했다.

#4
어느 공학자가 유도탄 안에 사람을 넣었다. 하얀 안개 속에 착탄했는데, 터지지도 않고 단지 문이 열리면서 사람과 함께 발포 폴리스타이렌 조각들이 쏟아져 나왔다. 안쪽에는 새하얀 조각들과 복잡한 구시대적인 기계장치들이 가득 차 있었다.

#5
깜깜한 밤처럼 느껴졌다. 천장이 너무 높아서 밤하늘처럼 느껴지는 거대한 창고형 매장 속을 거닐었다. 중간중간 물건을 진열한 곳이 있고, 마치 건물 같은 것들도 사이에 섞여있었다. 나를 유혹하는 수많은 분절된 것들 사이사이로 지나다니는 환상적인 곳. 하지만 아무도 없었다. 나 혼자였다. 나는 어떤 물건도 담아가지 않았다. 때때로 밝은 불빛만 보였다.

#6
음산하고 불안한 느낌의 얼룩덜룩한 나무들이 있었다. 만져서도 안되고 가까이 가서도 안된다. 그 위험한 나무들 위에는 때때로 견시가 망원경으로 사람들을 내려다보고 있다. 그 나무들은 주변에서 보기 어렵지만, 분명히 이 세상 어딘가에 존재한다고 한다. 동화 같다고 생각했다. ㅡ상당히 시각적인 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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