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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를 오래 탈수록 좋은 이유

왼손잡이해방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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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버스를 타는 게 좋아요. 지하철이나 기차도 좋습니다. 오래 탈수록 좋습니다. KTX로 2시간만에 갈 수 있는 표와 무궁화호로 5시간을 걸려 가는 표가 있다면 무궁화호를 타겠습니다. 아, 도착시간이 정해져있거나 KTX 표가 더 싸거나 하면 KTX를 탈지도 몰라요. 가격이 같아도 KTX를 탈 것 같네요...? 그런데 그건 어쩔 수가 없습니다. 오래 걸리는 쪽을 *선택*하는 건 보통 이상한 행동이기 때문입니다. 이상한 행동을 하면 이상한 사람이 됩니다. 세상에 섞이지 못한다는 말이에요. 하물며 내 바로 앞에 있는 한 사람과도 어울리지 못할 겁니다. 그런 약간의 공포와 죄책감 때문에 선택에 있어서는 KTX에 무게가 실리게 됩니다. 하지만 편안함을 느끼는 건 무궁화호를 탈 때일 거에요. 선택과 호불호는 기본적으로 별개라는 게 저만의 이론입니다. 그 이론에 대해서는 기회가 되면 다른 글에서 다루어보겠습니다.

버스를 오래 타고 싶은 이유는 상당히 폐인스럽습니다. 저는 차멀미를 합니다. 대단할 정도는 아니지만 차에서 휴대전화를 들여다보거나 책을 읽거나 하면 속이 불편합니다. 차에 타있으면 잠도 잘 오는데 이것도 멀미 증상 중 하나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차에 타있으면 아무것도 못합니다. 바로 그 아무것도 못한다는 점에서 편안함을 느낍니다. "나는 어찌할 도리 없이 아무 일도 하지 못하는 공백의 시간을 갖는다." 이것이 편안함의 근원입니다.

사람은 생산적이어야 한다는 도덕 원칙이 있습니다. 이것이 세간에 의해 학습된 것인지 인간이 내재하고 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건 있다는 것이죠. 귀찮음의 감정을 악으로 간주하는 것도 이 원칙 때문입니다. 보통은 이 원칙을 잘 느끼지 못하지만 어떨 때는 일정한 무게로 계속 누른다는 것에 진절머리가 납니다. 차를 타는 동안은 이 무게에서 잠깐 자유로워집니다. 버스는 그 시간을 늘려주고요. 기차는... 버스가 너무 불편해서 고르게 되는 선택지입니다. 기본적으로 "아무것도 하기 싫다"라는 감정이 이 편안함의 근원이기 때문에 선택하지 않게 되는 것 같네요.

물론 기차에서는 멀미가 덜한 편입니다만, 보통은 여행을 가거나 할 때 타는 것이기 때문에 무언가 강요 받는 일은 없었습니다. 기차에 타도 화상회의에 참가할 수 있다거나, 완성하지 못한 발표자료를 기차에서 완성한다거나, 그런 일들도 가능하긴 합니다만 일단 지금은 없는 일이니까 대충 넘어갑니다. 이건 증명이 아니라 관찰입니다. 제가 어떤 식으로 생각하고 느껴왔는가 보면 그런식으로 얼버무린 것 같다는 거죠. 그런 전개로 기차에서도 아무것도 안 해도 될 자유를 느끼면서 편안함을 느낍니다.

이런식으로 폐인이 되고 싶다는 감정이 제게 있습니다. 여태껏 성적도 잘 받아먹었으면서 무슨 소리냐 할 것입니다. 성과만 놓고 보면 제가 성실하다는 평이 많습니다만 전혀 성실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2년은 새로운 세계에서의 긴장감으로 잘 이겨낸 것 같지만 이번 학기는 정말로 어떻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요즘 기상시간이 하루에 30분씩 늦어지고 있습니다. 눈을 뜨는 시간이라기보다는 자리에서 일어나는 시간입니다. 그 사이에 상당한 유격이 있기 때문에 자리에서 일어나는 시간을 기준으로 잡는 게 맞을 겁니다. 분명 더한 사람도 세상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성실에서 폐인으로 전이하는 과정에 있다고 생각하면 뭔가 행동을 취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떨 때는 "평생 살아야 한다"는 사실이 무겁기도 합니다. '평생'은 인생의 틀에서 바라본 '영원'이고, '살아야 한다' 함은 어떻게든 시간의 질주를 쫓아서 달리고 있어야 한다는 명제입니다. *시지프 신화*의 한 구절에서는, 사람은 언젠가 죽기 때문에 내일이 온다는 것은 죽음에 가까워지는 일이지만 인간은 습관적으로 내일을 바라고 있다, 라고 관찰합니다. 제게 있어 내일이란 사회로 내던져짐에 가까워지는 일이라서 내일을 전혀 바라지 않고 있습니다. 오늘이 3월 11일이라는 사실이 너무 무섭습니다. 시간이 계속 흐르고 있다니요. 이대로 괜찮은가 하는 질문이 계속 듭니다.

생각해보면 문제는 제 생활 자체가 아니라 이상과 생활의 괴리에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아니 결국은 3학년이라는 단어가 주는 중압감이 근본적인 원인이겠지요. 3학년은 언젠가 되어야 하는 것이고 22살은 이미 되어버린 것입니다. 지금이라도 3학년을 그만둘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면 잘할 것이라는 생각이 계속 드네요. 그 무엇도 제가 그만두게 두지를 않습니다. 그만둘 이유는 그만두고 싶다는 느낌 뿐입니다. 다른 어느것도 그만두게 내버려두지를 않습니다. 그만두고 싶다는 마음이 제 자신조차도 설득을 못합니다.

주변에서 제 이런 상태를 알지 모르겠네요. 짝사랑하는 것처럼 어떻게든 티를 안 내려고 했거든요. 솔직히 어제 노래방에 가서 몇 분 동안 부르고 싶은 노래를 생각하지 못했을 때 울고 싶었습니다. 노래를 고르라고 강요받지는 않았어요. 오히려 끝까지 묵묵히 기다려줬죠. 그냥 저 혼자 기분이 그랬습니다. 즐거울 이유가 잔뜩 있는데도 기분이 나아지지 않습니다. 병원을 가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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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맥락일지는 모르겠으나 흡연자 비행기 승무원을 대상으로 흡연욕구의 원인을 찾아보는 연구가 있었습니다. 3시간 비행을 하는 승무원과 10시간 비행을 하는 승무원들의 흡연 욕구를 시간대마다 기록했더니, 흡연한지 오래될수록이 아니라 도착시간이 가까워질수록 흡연욕구가 증가함을 볼 수 있었다 합니다. 비행기에서는 흡연을 할 수 없다는 걸 알기 때문입니다. 환경으로 인한 무의식이 감정과 기분에 참 큰 압력을 주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니 그 압력도 견딜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