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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의 오묘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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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곱근과 제곱근 함수

0을 제외한 모든 복소수는 제곱근이 둘이다. 이를테면 +4의 제곱근은 +2와 -2 둘이다. (+2)×(+2)도 (-2)×(-2)도 모두 +4가 되기 때문에 +2와 -2는 +4의 제곱근이다. (0만 제곱근이 하나인 것도 기묘한 일인데 오늘 할 얘기는 아니다)

제곱근 함수, 영어로는 square root, C언어에서는 sqrt(), 기호는 '√'를 사용하는 이 함수는 어떤 실수를 받든 그 실수의 두 제곱근 중 한쪽을 찾아준다.

실수는 제곱근이 둘인데 제곱근 함수는 어떤 제곱근을 찾아주는가? 일단 0은 논외다. 0은 제곱근이 0 하나뿐이니 0을 찾아주면 된다. 0 말고는 양수와 음수가 있겠다.

양수의 제곱근 함숫값

0보다 큰 실수, 이름하야 양수! 양수의 두 제곱근은 0보다 큰 쪽에 하나, 0보다 작은 쪽에 하나씩 있다. 그리고 그 둘은 더하면 0이 되는 방식으로 짝을 이룬다. 앞에서 본 +4의 두 제곱근 +2와 -2는 더하면 0이 되는 짝이다. 제곱근 함수는 양수의 두 제곱근 중 0보다 큰 쪽의 제곱근을 찾아준다. 이른바 양수 제곱근을 찾아주는 것이다.

여기에는 이유가 있다. 양수와 음수는 다르다. 여러가지 차이가 있겠지만 한가지 중요한 비대칭성은 음수와 양수는 모두 제곱했을 때 양수가 된다는 점이다. 어떤 상상의 체계에서는 음수끼리 곱하면 양수가 되고 양수끼리 곱하면 음수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런 체계에서 양수와 음수는 서로 대칭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의 수 체계에서는 양수도 양수끼리 제곱하면 양수가 되고, 음수도 음수끼리 제곱하면 양수가 된다. 음수와 양수의 근본적인 차이점은 이것인지도 모른다. 로그함수의 밑을 음수로 할 수 없는 것도 따지고 보면 여기서 출발했는지도 모른다.

양수가 음수보다 단순하다. 양수는 자기들끼리도 잘 논다. 수학자들은 이것을 "양수가 곱셈에 대해 닫혀있다"라고 말한다. 만약 플러스(+)를 항상 붙여야 하고 마이너스(-)를 생략해도 되는 표기법을 쓴다면 잉크가 많이 낭비될 것이다. 증명 읽기가 좀 어지러울 것이다. 그래서 수학자들은 음수보다 양수를 먼저 생각하기로 했다. 제곱근 함수가 양수 제곱근을 찾아주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음수의 제곱근

0보다 작은 실수, 이름하여 음수! 음수는 제곱근을 가진 역사가 길지 않다. 사람들은 크기와 차이는 알았지만 숫자가 스스로 숫자를 만들어낸다는 생각은 잘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숫자를 위해서만 나타나는 숫자를 계산식 사이에 슬쩍 끼워넣자 오차방정식이 풀렸다. 음수에게도 제곱근이 생긴 순간이었다. 이제부터는 음수의 대표자인 -1과 허수의 두 대표자 i, -i로 퉁쳐서 이야기한다.

-1의 제곱근, 즉 제곱하여 -1이 되는 수가 하나 있다고 치자. 그 이름을 i라고 지었다. 즉 i × i는 -1이다. 수학자들은 i를 가지고 여러가지 실험을 했다. 실수에 대해 말하면 맞지만 허수에 대해 말하면 틀리는 법칙들도 있었고, 말하고 있는 수가 실수든 허수든 신경쓰지 않는듯한 법칙들도 있었다. 이를테면 i는 0보다 크다고 해도 이상하고 작다고 해도 이상했다. 하지만 i를 원래 있던 수들과 더하고, 빼고, 곱하고, 나누는 일은 i가 생겼어도 특별히 이상하지 않았다. 수학자들은 i를 받아들였다.

모든 양수는 제곱근이 둘 있었다. 양수의 두 제곱근은 더해보면 항상 0이 되었다. 음수의 제곱근도 마찬가지이지 않을까? i와 더하여 0이 되는 수는 -i다. -i를 제곱해보면 (-i) × (-i) = -1이다. 따라서 -i도 -1의 제곱근이다. 아무래도 모든 음수도 제곱근이 둘 있는 것 같다.

누가 진짜 i인가?

그런데 i도 -1의 제곱근이고 -i도 -1의 제곱근이면, 누가 i이고 누가 -i일까? 질문이 이상한가? 상상을 해보자.

세계숫자대회가 열렸다. 온 세상의 숫자가 다 모였다. 이번 대회는 특별하다. 허수들도 숫자라는 점이 최근 밝혀졌기 때문이다. 그동안 집에서 텔레비전이나 보고 있던 허수들이 모두 불려나왔다. 모두가 허수들이 숫자가 된 것을 축하하고 있다. 기념으로 허수의 대표자에게 직책을 내리고자 한다. 사회자가 외친다.

제곱해서 -1이 되는 수는 앞으로 나오시오!"

다들 누가 나오는지 호기심 어린 눈으로 지켜본다. 한 숫자가 수줍은 표정으로 무대로 나온다. 그 숫자는 무대 오른쪽 계단으로 올라온다. 앗! 그런데 수줍게 무대로 나오는 숫자가 한 명 더 있다. 그 숫자는 무대 왼쪽 계단으로 올라왔다. 대회장이 술렁인다. 사회자는 진땀을 흘린다. 이름표를 하나밖에 준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스태프들이 분주하게 움직인다. 다행히도 가장 빨리 이름표를 만들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이미 있는 이름표를 복사해서 작대기를 하나 붙이는 것이다. 그렇게 i와 -i 이름표를 만들었다. 사회자는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두 숫자는 똑같이, 그러나 대칭으로 생겼다. 두 숫자는 똑같은, 그러나 대칭인 걸음걸이로 동시에 사회자 앞에 선다. 그래도 진짜 이름표가 걸맞는 쪽이 있지 않을까, 사회자는 생각했다. 사회자는 잠시 고민하다가 일단 인터뷰부터 진행하기로 했다. 그런데 인터뷰도 참 진귀한 볼거리였다. 사회자가 무언가를 물어보면 둘은 자꾸 동시에 대답을 하려했다. 사회자가 "두 분, 어디서 오셨나요?" 하고 묻자 두 숫자는 잠시 어떻게 답할지 생각하다가 각자 반대 방향을 가리키며 "저기로 쭈욱 가면 나와요"하고 동시에 답했다. 당황한 사회자가 "요즘 빠져있는 취미가 있으신가요?" 하고 다음 질문을 하자 둘은 동시에 입을 열어 "요즘은 춤...을 배우고 있습니다" 하고 답했다. 둘은 서로의 그 말을 듣자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그때부터는 둘만의 댄스 토크가 시작되었다. 마치 묘기라도 하는듯 두 숫자는 서로 동시에 묻고 동시에 답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서로에게 "먼저 얘기하시죠"를 동시에 말하는 어색한 순간들이 이어졌지만 몇 번 그러고나더니 서로에게 동시에 똑같은 질문을 던지고 서로의 질문에 동시에 똑같이 답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사회자는 그 사이에서 안절부절하고 있었다. 두 숫자의 미친 티키타카는 이미 세계숫자대회 따위는 안중에도 없이 둘만의 세계로 떠나고 있었다. 사회자는 어떻게든 대화에 끼어들어 진행을 해야했다.

자 그럼 두 분, 댄스배틀로 누가 이름표를 받을지 정해보면 어떨까요? 춤 솜씨 한번 구경해봅시다!

둘은 수줍은 체 하면서도 동시에 몸을 풀었다. 이내 무대에는 음악이 흐르고 둘은 춤을 추기 시작했다. 이 또한 묘기 같은 진풍경이었다. 두 숫자의 춤 자체는 형편없었다. 절도도 없고 유연성도 없었다. 마치 방 안에 잘못 들어와 창문에 부딪치고 있는 나방의 처연한 날갯짓 같은 막춤이었다. 그럼에도 사회자와 청중들은 놀란 눈으로 그 모습을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둘은 완전히 대칭으로 춤을 추고 있었다. 누가 잘하고 누가 못하고 할 것도 없이 둘다 기괴한 춤이었지만 서로 완벽히 같은 박자로 완벽히 똑같은, 그러나 대칭인 춤을 보고 있노라면 귀신이나 악마라도 보고 있는듯 무서운 기분이었다.

음악이 끝나자 사회자는 잠시 얼이 나가있다가 이내 머리를 털었다. 사회자는 무언가 코멘트를 했지만 자신도 스스로 뭐라고 말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이제는 누가 잘났고 누가 못났는지 아는 게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알 수 있는 방법은 영영 없었을 것이다. 사회자는 횡설수설하다가 가위바위보 이야기를 꺼냈다. 그리고 두 숫자는 어느새 서로를 마주보고 한쪽 주먹을 쥐고 있었다. 왼쪽 숫자는 왼손으로 오른쪽 숫자는 오른손으로 주먹을 쥐었다. 둘의 자세는 한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히 대칭이었다. 대회장에 "가위바위보" 하는 구령이 울려퍼졌고 둘은 동시에 보자기를 냈다. 그 동작도 역시 대칭이었다. 몇 번 더 "가위바위보"가 대회장에 울려퍼졌지만 둘은 한치의 오차도 없이 동시에 똑같은 패를 낼 뿐이었다. 그렇게 서른번 정도 더 구령이 울려퍼졌다. 처음 몇 번은 청중이 다같이 외쳤지만 이제는 사회자만 홀로 목이 터져라 외치고 있다. 사회자는 거의 울음을 터뜨릴 것 같았다. 그런 사회자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두 숫자는 신기해하며 감탄하고 있었다.

사회자는 구령을 멈추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젠 두 숫자가 자신을 놀리고 있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사회자는 이번엔 호주머니에서 500원짜리 동전을 꺼냈다. 동전을 던져 앞면이 나오면 왼쪽, 뒷면이 나오면 오른쪽에 진짜 이름표를 주기로 하였다. 팅! 동전은 던져졌고 사회자는 동전을 잡으려했다. 잡으려했다는 것은 잡지 못했다는 말일테다. 동전은 힘없이 바닥에 떨어져 의자 밑에 들어갔다. 사회자가 동전을 주으려 몸을 숙이니 신기하게도 동전은 옆면으로 곧게 서있었다. 사회자는 왠지 이렇게 될 것 같았다는 생각을 했다. 사회자는 더이상 이 바보같은 서커스를 이어가고 싶지 않았다. 사회자는 동전에 그려진 학처럼 날아가버리고 싶다고 생각했다. 사회자는 몸을 일으켜 앞면이 나왔다고 말했다.

그렇게 i가 적힌 이름표는 오른쪽 숫자가 받게 되었다. 왼쪽 숫자는 -i가 적힌 이름표를 받았다. 둘은 신나는 댄스배틀과 가위바위보를 하면서 흥이 잔뜩 올라있었으므로 자신이 받은 이름표가 진짜인지 복제품인지 신경쓰지 않았다. i는 오른쪽 가슴에, -i는 왼쪽 가슴에 이름표를 달고는 각자가 올라왔던 계단으로 유유히 내려갔다. 둘의 발소리가 한 사람인 것처럼 착착 맞춰서 들려왔다.

결국 누가 i가 되는 게 맞았을까? 그것은 사회자가 무대에서 내려온 후로도 며칠간 사회자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의문이었다. 그러나 답을 찾을 수는 없었다. 사회자는 i와 -i가 앞으로도 완벽히 대칭으로 각자의 일상을 살아갈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나중에 둘 중 하나를 마주쳤을 때 그가 누구인지 구분할 방법은 가위바위보를 할 때 내는 손이 어느 쪽인지, 그리고 이름표에 작대기가 하나 더 있는지 없는지뿐일테다. i가 i가 된 것이 단지 동전 앞면에 학이 그려져있었다는 이유 하나 때문이라고 생각하니 기분이 묘했다. 사회자는 둘이 어느날 서로 이름을 바꾸고 나타나도 그게 둘이 이름표를 바꿔낀 것인지 자신이 둘을 거꾸로 기억한 것인지 알 수 없으리라는 생각을 했다.

음수의 제곱근 함숫값

생각보다 상상이 길어졌다. 아무튼 오묘하다. i와 -i는 아무런 차별점도 없이 정확히 대칭이다. 제곱근 함수는 -1을 받으면 i를 찾아준다. 하지만 그 i 이름표를 단 숫자가 왼쪽 숫자인지 오른쪽 숫자인지는 알 수가 없다. 그 i가 가위바위보를 할 때 어느쪽 손을 내는지 확인할 수 있다면 어느쪽 숫자인지 알 수 있겠지만 우리는 그 숫자가 어느쪽 손을 내는지 알 수가 없다. i는 무표정하게, 정확히는 얼굴도 손도 없이, 그저 종이 위에 하나의 알파벳으로서 누워있을 뿐이다. i인지 -i인지 모를, 아무튼 한 수학자는 i라고 부르는, 그러나 다른 한 수학자는 -i라고 부를지도 모르는, 그럼에도 둘은 소통에 아무런 문제도 느끼지 않을, 그 어느쪽인가의 숫자의 그림자만이 수학자들의 머릿속에 오묘하게 일렁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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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상상 재밌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