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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소설이 아니라 실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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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안 읽는 것 같아 제목을 바꿨습니다.

소개

<소녀불충분>(니시오이신, 2011)은 한 소설가가 십년 전 자신의 겪은 트라우마를 풀어나가는 소설입니다. 내용 중에 두세번 정도 '이것은 소설이 아니다'라고 강조하기는 합니다만 여기에 대고 정말 실화냐고 물을 만큼 순수한 인간은 아니게 되었네요. 다만 작가 후기까지 소설로 읽지는 않는다고 한다면, 소설의 화자이자 주인공인 인물은 <소녀불충분> 을 집필한 니시오이신의 페르소나라고 보아도 좋겠습니다.

실은 이 소설은 만화로도 그려졌으며 저는 그것을 불법으로 감상하고 나무위키까지 이미 오래전 읽은 바 있습니다. 중학교 때 이야기 시리즈를 애니메이션으로 보게 된 후로 팬이 되었는데, <소녀불충분> 이 니시오이신이 독자에게 메시지를 전하는 소설이라고 듣고 만화로 찾아본 것이었습니다. 이야기 시리즈를 장서로 소장하기 시작하면서 <소녀불충분> 도 언젠가 사서 읽어야겠다고 생각하였는데 수년만에 그 계획을 실행하였습니다.

이야기와 세계의 느슨한 관계

니시오이신은 이야기가 이야기일 뿐이라는 점을 잘 활용합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그가 써서 출판하는 것이 그 가상세계의 본을 그대로 떠서 인쇄한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오히려 더 알기 어려워지는 것 같네요.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가 존재하는 것과 비슷한 정도로 소설이 그리는 세계가 존재한다고 하면 우리 세계에서 출판되는 소설이란 그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 중에서 사건성이나 이야기성이 두드러지는, 그러니까 쉽게 말하면 재미있는 일을 취사선택하여 우리에게 들려주는 것입니다. 여기서 "취사선택"이라는 점이 중요합니다. 이야기는 말그대로 이야기일 뿐 비석의 탁본을 뜨듯 사건을 그대로 기록한 게 아니라는 말입니다.

이런 생각을 갖고 이야기를 읽게 되면 개연성이 떨어지거나 하는 이야기도 대강 넘어가 줄 수 있게 됩니다. 이 소설에 담기지 않은 어떤 디테일이 있겠거니 생각하는 거죠. 몰입의 주는 영향은 또 다른 이야기입니다만 어쨌건 존재 자체가 잘못되거나 하지는 않은 겁니다. 이 점을 활용해 이야기를 비트는 것을 나무위키는 '서술 트릭'이라는 단어로 지칭하는 것 같습니다. 전 추리 소설은 읽지 않아 잘은 모르지만 추리 소설에서도 자주 쓰인다고 합니다. 이야기 시리즈 중에서 서술 트릭이 두드러지게 사용된 것은 <사랑 이야기> 가 있겠습니다.

<details> <summary>약간의 스포일러가 있어 접어두었습니다.</summary> 이 책에서는 다른 이야기 시리즈들과 달리 화자가 조연 인물인 사기꾼으로 설정이 됩니다. 화자가 모든 의뢰를 마친 후 마지막에 자신이 과거에 속인 피해자에게 살해당하면서 소설 전체가 거짓말이라고 주장합니다. 그 후에 다른 시리즈에서도 이 인물은 등장하고요. 어디까지가 일어난 일이고 어디까지가 일어나지 않은 일일까요? 어차피 작가가 창작한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이니 그렇게 중요할까 싶습니다. 다른 <i>정직한</i> 화자들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증거가 쌓이면서 애매한 부분들이 밝혀지겠죠. </details>

메타 서술도 비슷하게 논할 수가 있습니다. 니시오이신의 소설에는 메타 서술 개그가 자주 들어갑니다. 이것을 소설 속의 인물이 직접 하는 말이라고 생각하면 논리적으로 이해하기 어렵지만, 단순히 작가가 사건을 그대로 전하지 않고 재미를 위해 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원점으로 돌아갔을 뿐이지만 어쨌건 빈틈없는 소설이란 애초에 없다는 점을 일깨워주는 거죠. 이제 그냥 재미로만 읽으면 되니 잘된 일입니다.

<소녀불충분>의 헷갈리는 서술

책 안에서 구분된 숫자들을 뭐라고 부르는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대충 절이라고 부르면 될까요. <소녀불충분> 은 44절로 구성이 되어있습니다. 대부분은 그냥 화자가 작성한 원고로 보아도 무리가 없습니다. 하지만 마지막 절은 원고를 완성하여 편집자에게 전한 이후의 이야기이니 원고 바깥의 이야기입니다. 확실하게 창작으로 볼 수 있죠.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앞의 43개 절도 전부 순수한 창작일까요? 니시오이신이 정말 편집부에 전달한 원고이긴 하잖아요. 확실하지는 않습니다. 아무래도 앞의 43개 절과 마지막의 44절은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요. 독자를 속이기 위해 일부러 비현실적인 해피엔딩을 넣은 것이라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러면서도 은근 알아채주기를 바라면서 마지막 한 절만을 부자연스럽게 구성한 거죠. 모를 일입니다. 작가가 일단은 아직까지도 신비주의 컨셉을 유지하고 있으니까요. 믿고 싶어진다는 점에서 최고의 몰입감을 선사하는 성공적인 이야기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본문 뒤에 곧바로 이어지는 작가 후기는 확실하게 우리가 사는 세계에서 소설을 집필하고 있는 니시오이신의 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작품 자체적인 문제 탓에 U의 비주얼은 본문에서 거의 언급하지" 않았다는 말을 보면 혹시 U는 실존 인물을 모티브로 한 게 아닐까라는 상상을 하게 합니다. 자꾸 상상을 하게 만드는데 그것마저 설계일지도 모릅니다. 한편 "이 소설을 쓰는 데는 10년이" 걸렸다는 말은 아마 더욱 확실하게 참일 것입니다. 이 소설이 실제 일어난 사건을 그린 것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유비적으로 혹은 신화적으로 독자에게 어떤 서사가 있었음을 전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소설의 내용이 사건이든 신화이든 '이 소설을 쓰는 데 10년이 걸렸다'는 말이 담는 의미는 비슷할 것입니다. 대충 10년간 글을 썼고, 어떤 이유에선가 이제는 독자에게 자신이 글을 쓰는 이유를 전해야겠다고 결심을 한 거겠죠.

정리하며

이 사건이 일어났다고 믿는 것은 귀신이 있다고 믿는 것과 비슷합니다. 현실의 규칙을 깨는 가슴 설레는 무언가가 있기를 바라는 낭만적인 마음입니다. 당시 지망생이었던 작가가 이처럼 극적인 사건으로 마침내 작가가 되었다고 한다면 신비롭고 재밌거든요. 하지만 소녀가 겪은 일을 생각하면 역시 창작인 편이 좋을 것 같네요. 이렇게 저의 인간성을 주장하면서 끝을 맺겠습니다. 지금까지 <소녀불충분> 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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