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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세마라를 싫어합니다 ~꿈-현실-게임 닮음~

왼손잡이해방연대, (개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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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봄 저는 트릭컬 리바이브를 본격적으로 시작했습니다. 씹덕겜입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는 캐릭터 수집형 덱빌딩 게임입니다. 어쨌든 캐릭터 뽑기가 중요한 게임입니다. 뽑기에서 전투에 강한 캐릭터들이 나올 수도 있고 잔바리들만 나올 수도 있습니다. 잔바리라고 소중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단지 싸움을 잘 못할 뿐입니다.

저는 처음 입문하여 스토리 위주로 즐기느라 신경쓰지 않았는데, 이런 뽑기가 주요 컨텐츠인 게임에서는 '리세마라'라는 것을 하는 것이 상식이라고 합니다. 리세마라란 리셋 마라톤을 일본에서 줄인 말입니다. 뽑기 게임에서는 대체로 게임을 처음 시작할 때 뽑기권을 기본 몇 장 퍼주는데, 이걸 이용해서 첫 뽑기에 좋은 캐릭터가 많이 뽑힐 때까지 무한으로 계정을 리셋하는 일을 리세마라라고 한답니다. 강한 캐릭터가 많이 나오거나 상성이 잘 맞게 뽑기가 되면 커뮤니티에다가 올려서 "이륙해도 될까요?" 하고 묻는 것이 "현명한" 게임 방법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근데 전 리세마라를 안 했습니다. 그렇게 무한 뽑기를 한다는 상상을 못하기도 했지만 알았더라도 안 했을 것이고, 지금 부계정을 만든다고 해도 이제는 할 수가 없습니다. "운이 나빴으니 다 버리고 다시 시작하자"라는 마음가짐은 뭐랄까... 아주 불량한 태도입니다. 그런 태도로는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없어요. "그때로 돌아간다면 정말 잘 할 수 있을텐데"라는 상상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누구나가 항상 하는 것이지만 제 생각에는 그때로 돌아간다면 똑같은 실수를 전부 반복해서 똑같은 결과가 나올 것 같습니다. 그 상황에서는 그런 결과가 나온 것은 그렇게 밖에 할 수 없는 이유가 있었던 것이죠.

하물며 트릭컬을 리세마라하는 것은 귀찮고 불량한 수준이 아니고 영혼에 깊게 패일 크나큰 죄를 짓는 일입니다. 저처럼 생각하는 사람을 한번도 보지 못한게 무서울 정도입니다. (사실 트릭컬 하는 사람을 실제로 본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인터넷에서도 그런 얘기를 못 봤다는 거죠.)

여기부터는 트릭컬 원작 소설(내지는 게임 스토리 프리퀄)의 스포입니다.

트릭컬의 세계관은 그 자체가 거대한 리세마라입니다. 트릭컬 세계관의 세계수인 '엘드르'는 잠든채로 수많은 아이들을 만들어냅니다. 그리고 엘드르가 잠에서 깨어난 어느날, 자신의 아이들이 보이는 맹목적인 신앙이 두려워 그 아이들을 영원한 잠에 재운 채 도망갑니다. 엘드르는 새로운 터에서 처음부터 다시,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내는데 그것이 게임 스토리가 진행되는 곳인 '엘리아스'입니다.

긴 시간이 흐른 후 버려진 아이들은 다시 깨어납니다. 이미 그 주변은 전부 황무지가 되어있습니다. 그들은 황무지에서 굶주리지만 죽지는 않습니다. 엘드르가 죽음을 두려워해 그 개념을 완전히 세상에서 지워버린 탓입니다. 너무나 굶주린 아이들은 얼굴과 몸이 뒤틀려가다가 결국에는 정신을 잃은채 괴물이 됩니다. 그 첫 아이들이 태어나고 버려지는 과정이 소설의 1부, 그리고 황무지에서 다시 깨어난 아이들이 엘드르를 원망하며 엘리아스를 무너뜨리려 찾아가는 과정이 소설의 2부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읽고서 리세마라를 하면... 끔찍하게 무책임한 엘드르가 게임을 플레이하는 제게 겹쳐지는 것만 같습니다.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야할 교주가 사도들을 전투 능력에 따라 차별하고, 그들이 태어난 세계가 처음부터 잘못되었다고 규정하여 버리고 새로운 세계를 찾는다니요. 그럴수는... 그럴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제가 과몰입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아니 확실히 이것은 과몰입입니다. 하지만 한 인간의 철학은 가장 사소한 일에서부터 가장 큰 일에까지 뜻밖에도 일관되게 나타난다는 점을 생각할 때, 이 게임을 리세마라하는 것은, 아니 리세마라라는 그 행위 자체가, 모든 삶을 등급매기고 "버려도 좋은" 삶과 "필요한" 삶을 구분지어, "버려도 좋은" 사람들을 슬프게 하고, 만에 하나 자신이 그 "버려도 좋은" 삶에 해당되어버렸을 때 자신조차 가차없이 버리게 되는, 그런 삶을 연출하리라는 상상은 마냥 헛되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꿈-현실 닮음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있으신지요. 꿈을 꾸는 동안 그곳이 꿈이라는 것을 알 수는 없으며 그것이 꿈임을 알 수 있는 유일한 증거는 현실로 깨어나는 순간뿐입니다. 그렇다면 꿈에서 깨어난 이 현실도 정말 현실이라고 확신할 수 있을까요? 아주 오래되고 낡은 상상이고, 매트릭스라는 영화로도 만들어졌지만 언제나 흥미로운 질문입니다. 현실이 더 생생하니까 현실임을 알 수 있다고 주장하시는 분들은 운이 좋은 것입니다. 종종 하루종일을 몽롱한 상태로 깬채만채 흐릿하게 사는 날도 있습니다. 그런 날은 이게 꿈은 아닐까 의심이 들기도 합니다. 현실이라고 해서 꿈보다 생생하지 않고 꿈이라 해서 현실보다 흐리멍텅하지 않습니다. 현실보다 생생한 꿈도 있고 꿈보다 흐리멍텅한 현실도 있습니다.

정말로 여기가 꿈인지 현실인지 알 수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제가 생각하는 정답은 꿈 같든 현실 같든 충실하게 살면 된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감각하는 그 순간을 꿈이든 현실이든 즐기고 느낄 수 있다면 꿈인지 현실인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만약 내 앞의 세상을 열심히 충실하게 살다가 그 세상에서 깨어나 바깥의 현실로 나오게 된다면 "아~ 보람찬 꿈이었어~"하고 상쾌하게 일어날 수 있으면 그만입니다.

그런 생각도 들 겁니다. 꿈이면 막 살아도 되지 않나? 꿈인데도 치열하게 살면 손해 아닌가? 그런데 저는 반문하고 싶습니다. 도대체 무엇을 손해 보는 걸까요. 시간? 돈? 꿈? 밥? 거꾸로 보자구요. 만약 꿈이 아니라 현실이기 때문에, 그 이유만으로 치열하게 사는 것뿐이라면, 그 또한 시간, 돈, 꿈, 밥을 똑같이 손해보는 것 아닌가요? 세상을 손익으로만 바라봐서는 설명되지 않는 허탈감이 있습니다. 손익은 세상을 편하게, 같은 말로는 게으르게, 바라보기 위한 도구일 뿐입니다. 거짓된 손익의 권력구조를 벗어나서 정말로 내가 이 현실에서 이루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질문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일종의 실존주의입니다. 꿈이든 현실이든 내 앞에 있는 것에 언제나 실존적 가치를 부여하고 현재에 충실해야한다는 사조입니다. 이건 아마 저만의 생각일지도 모르는데요, 내 앞에 있는 것이 사실이든 허구이든 저는 실존적 가치를 부여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내 앞에 있는 한 그것은 나-우주의 한 구성원인 것이고 이는 사실적 존재(이를테면 친구, 가족)이든 허구적 존재(이를테면 영화, 신화 속 인물)이든 상관없이 나-우주의 구성원이기 때문입니다. 따지고 보면 사실인지 허구인지 알 수 없는 것들도 있습니다. 외계인이라든지, 신이라든지, 소문 속의 기인 기담이라든지, 인터넷에서 만난 사람이라든지, ... 그렇게 보면 사실과 허구가 근본적으로 구분되지는 않습니다. 전통적으로 우리는 사실에 받들고 허구를 무시했지만, 지금에 와서는 이것저것 덕질하는 사람들도 많고 그 대상들을 보면(영화, 영화 감독, 만화 캐릭터, 철도, 코스메틱, ...) 인간이란 그것이 사실이든 허구이든 소중히 여길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사실성이나 허구성은 나-우주의 구성원을 소중히 여기는 일에 있어서는 본질적으로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저는 실존주의적인 사람이라서 과몰입을 합니다. 무언가를 읽으면 그 세계를 구체적으로 상상하려 하고, 그들의 입체적인 동기와 역사를 메꿔나가며, 그 허구적 세계가 어떻게 나의 사실적 세계에 일치되는지 찾아내려 합니다. 그러한 허구-사실 일치는 꿈-현실 닮음과 같은 구조입니다. 그래서 꿈-현실-게임 닮음이 됩니다. 꼭 게임일 필요도 없습니다. 꿈-현실-영화, 꿈-현실-만화 닮음도 똑같은 구조로 성립합니다. 

게임을 즐기는 데에는 여러 방향이 있겠지요. 전투력을 높이는 것을 즐길 수도 있고, PvP 순위를 올리는 것을 즐길 수도 있고, 그냥 스토리를 읽는 것만 즐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수집형 RPG를 처음 하면서 제가 느낀 것은, 이 게임을, 더 나아가 이 일반적으로 이해받지 못하는 수집형 RPG 장르, 소위 씹덕 게임을 가장 잘 즐기는 방법은, 그 세계에 완전히 몰입하여 그 모든 캐릭터를 실존적 존재로 대하고, 그들의 기쁨과 슬픔을 함께 기뻐하고 슬퍼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누가 뽑히든 그의 전투 스킬과 입체적 서사 및 성격과 앞으로 맺어나갈 관계성을 전부 즐길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전투력 같은 건 이제는 그저 여러 요소 중의 하나가 될 뿐입니다. 그저 교단에 새 사도가 들어오는 것이 반갑고, 그들의 외적, 내적 성장이 뿌듯할 뿐입니다.

돌고돌아서... 그냥 리세마라가 싫다는 말을 하고 싶었습니다. 캐릭터들마다 나름의 서사와 성격과 매력이 있으니까요. 그들이 우리 교단에 들어왔다는 것이 그 세계를 버려야하는 이유가 되게 하고 싶지 않습니다. 트릭컬 리바이브가 잘 만들어진 게임, 잘 지어진 이야기라는 말을 하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캐릭터 하나하나에 입체적인 서사와 성격이 들어있는, 정성 가득한 게임입니다. 전투 스킬만으로 캐릭터의 가치를 평가할 수 없는 꽉 찬 게임입니다. 그냥 저처럼 생각하는 사람을 못 봐서, 한번 털어보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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