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벅, 터벅, 터벅. 한 사람이 길게 드리운 무한의 벽으로 다가간다. 공허를 가르는 긴 면이 시야에서 차지하는 면적이 서서히 넓어져 간다. 가슴이 찡하게 뜨거워진다. 발소리가 점점 빨라진다. 터벅터벅터벅터벅터벅. 양 눈을 덮어가는 거대한 벽은 점점 그 넓이가 빠르게 넓어진다. 이제 양 다리는 둘 다 공중에 떠 있다. 더더욱 빠르게, 힘차게 나아간다. 그 순간, 텅. 털썩. 눈앞이 아찔하다. 서서히 정신을 차리니, 보이는 것은 하얀색뿐. 어느 곳에도 벽은 없다. 코끝이 왠지 모르게 따뜻하다. 코 쪽으로 손을 가져다 대니, 빨간 액체가 흐르고 있다. 너무나 따뜻해서, 그 상태로 잠시 손을 가만히 둔다. 빨간 액체가 검지손가락을 따라 흘러 손끝에 맺힌다. 검지손가락 끝의 감각이 조금씩, 조금씩 무거워지고 빨간 방울은 서서히, 서서히 몸집을 불려나가다가, 톡. 정신을 차린다. 나는 누워 있다. 코피를 흘리는 채로 누워 있는 건 위험할 수도 있는 행동이므로, 재빠르게 일어난다. 다시 흰색이 아닌 것이 보인다. 저 앞에 무한의 벽이 보인다. 하지만, 난 저 벽에 부딪힌 것이 아니다. 조심스레 앞으로 손을 뻗는다. 살짝 주먹을 쥔다. 한 번 침을 삼키고, 내 작은 주먹을 좀 더 앞으로 향해 본다. 아주 천천히, 빨갛게 물든 주먹이 공기를 가르며 나아간다. 그 누구도 주먹을 방해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허공에서 주먹이 멈춘다.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주먹을 다시 뒤로 떼어 보니, 점점 색이 바래지고 있는 검붉은 핏자국이 공중에 남는다. 이 벽이 나의 새로운 벽이구나. 이제야 나를 막은 것이 무엇인지 알 것 같다. 그리고, 주저앉는다. 난, 저 벽을 넘기는커녕 근처에도 갈 수 없는 것이다. 이걸 깨달은지가 2년이 넘었다. 이제 나에게 벽은 '저 벽'이 아닌 '이 벽'이다. 눈이 그걸 증명해주지 못할 뿐. 눈은 믿을 수가 없다. 난 내 눈을 믿고 내 학기에서 기말고사를 지워버리는 선택을 했다. 그 대가가 얼마나 클 것인지는 보지 못한 채.
아기말프로젝트하기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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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사셔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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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보라 속에서 춤추는 Antifreeze32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