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와왕왕 왕와왕와왕~ 왕~~ 왕와왕왕 왕와왕와왕~ 왕~~
우린 오래전부터 어쩔 수 없는 거였어 / 우주 속을 홀로 떠돌며 많이 외로워하다가
사람은 누구나 홀로 태어난다. 넓고 차갑고 외로운 우주에서 떠돈다. 별들이 저 압도적으로 넓은 우주를 영원 같은 시간 동안 홀로 떠돌듯이.
어느 순간 태양과 달이 겹치게 될 때면 /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을 거야
그러다 어느 날 태양과 달이 겹치는 것을 본다. 궤도에 묶여 영원히 홀로 떠돌 것 같았던 두 천체가 “겹친다.” 그것은 정말로 만나는 것은 아니다. 태양과 달은 멀어지지도 가까워지지도 않는 아득한 거리를 유지할 뿐. 하지만 지구에서 보면 겹친다. 겹치는 것은 겹치는 것이다. 그것을 보면서 어쩌면 태양과 달은 정말로는 그 일순간에 만난 것이 아닐까 믿고 싶어진다.
하늘에선 비만 내렸어 / 뼛속까지 다 젖었어
세상엔 슬픈 일만 가득한듯하다. 그 비는 우리를 흠뻑 적시다가 결국에는 뼛속까지 슬픔으로 채워버리고 말 것이다.
얼마 있다 비가 그쳤어 / 대신 눈이 내리더니
어느 때는 비가 그치는 듯하다가 더 차가운 눈이 되어내린다.
영화서도 볼 수 없던 눈보라가 불 때 / 너는 내가 처음 봤던 눈동자야
비보다 차가운 눈은 슬픔보다 더 슬픈 것일까? 이 노래에서 눈과 차가움은 마냥 좋은 것도 마냥 싫은 것도 아닌듯하다. 눈보라는 어떤 영화보다도 더 힘겨운 난관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너의 눈동자를 발견한 시간이기도 하다.
낯익은 거리들이 거울처럼 반짝여도
항상 보았던 낯익은 거리들은 눈에 덮여 거울처럼 반짝인다. 그런 거리를 연출하는 눈보라는 차갑고도 아름답다. 이 눈보라가 아름다운 것인지 처음 봤던 눈동자가 아름다운 것인지는 모른다. 아마 둘 다일지도 모른다.
네가 건내주는 커피 위에 살얼음이 떠도
너는 커피를 건내주지만 그 위에는 살얼음이 뜬다. 커피는 말일수도 선물일수도 있다. 그것은 처음 건내주려고 했을 때는 따뜻했지만 매서운 눈보라 같은 현실 속에서 금방 식어버리기도 한다. 살얼음까지 뜬 커피는 마시기 전보다 더 마신 후가 더 추울지도 모른다.
우리들은 얼어붙지 않을 거야
하지만 네가 커피를 건내줄 때 네가 건내주는 것은 커피만이 아니고 너의 온기, 열역학적인 온기만이 아니라 형이상학적인, 피부를 넘어 눈빛으로 느껴지는 온기다. 그런 온기를 받는다면, 또 나도 그런 온기를 전한다면, 눈보라 속에서도 우리는 얼어붙지 않는다.
바다 속의 모래까지 녹일 거야
아마 너무 뜨거워서 차가운 바다 저 밑에 있는 단단한 모래마저 녹일 것이다...라고 해석하고 넘어가면 편하겠지만 무언가 더 있는듯한 느낌이다. 이 구절의 해석은 개인적으로 여전히 열어둔 상태인데 한가지 알 수 있는 점은 거리에 반짝이는 눈과 바다속에 반짝이는 모래는 닮았다는 것이다. 모래는 더 녹이기 어렵지만 모래마저 녹일만큼 뜨거운 무언가가 있다는 것이다.
춤을 추며 절망이랑 싸울 거야
우리는 어쩔 수 없는 것들과, 외로움과, 뼛속까지 적시는 비와, 영화서도 볼 수 없는 눈보라와 싸운다. 너의 온기는 나에게 용기를 준다. 절망이랑 싸울 용기다. 절망에 맞서기 위해서는 춤을 추어야 한다. 절망에 맞서는 가장 강력한 무기는 즐거움이다. 즐겁기 위해 춤을 추는지, 춤추기 위해 즐거워하는지, 즐거워서 춤을 추는지, 춤을 춰서 즐거운지, 알 수는 없지만 한가지 알 수 있는 건 춤을 추는 사람이 절망과 잘 싸울 수 있다는 것이다.
얼어붙은 아스팔트 도시 위로
얼어붙은, 아스팔트로 된 차가운, 그런 도시 위는 더 이상 차갑기만 한 곳이 아니라 우리가 춤을 추며 싸우는 무대가 된다. 도시는 여전히, 언제나 차가울 것이다. 그러나 거울처럼 반짝일 것이다.
숨이 멎을 것 같이 차가웠던 공기 속에 / 너의 체온이 내게 스며들어오고있어
지금까지 추상적으로 쓰긴 했지만 모든 일이 으레 그렇듯 온기를 전하는 일도 추상과 구체가, 마음과 몸이 동시에 하는 일이다. 한파 같은 세상에 그것은 몸에도 마음에도 살아갈 힘을 주는 것이다. 몸이 따뜻해지듯 마음도 따뜻해진다.
우리 둘은 얼어붙지 않을거야 / 바다 속의 모래까지 녹일거야 / 춤을 추며 절망이랑 싸울거야 / 얼어붙은 아스팔트 도시 위로
그렇기에 우리는 얼어붙지 않는다. 이 열기로 바다 속의 모래까지 녹인다. 춤을 추며 절망이랑 싸운다!
너와 나의 세대가 마지막이면 어떡해 / 또 다른 빙하기가 찾아오면은 어떡해
조금 냉정하게 말하자면, 세상은 여전히 냉정하다. 여태까지 그래왔고~ 앞으로도 계속~. 더 나빠질지도 모르지. 영원히 해결되지 않을 과제다. 해결되는 듯 싶은 바로 그때 다시 빙하기가 찾아올 것이다. 저출산과 기후위기의 시대. 더 이상 SF도 미래도 형이상학도 아니고 현재이고 구체적인 재난의 시대다.
긴 세월에 변하지 않을 그런 사랑은 없겠지만
그런 세상 속에서 언제까지고 영원히 이어지는 사랑은 역시 없다. 없다. 보통은 없는 것도 아니고, 거의 없는 것도 아니다. 없는 것 같은 것도 아니고, 없을지도 모르는 것도 아니다. 없다. 이 세상에 당연하다는듯 내재하는 불완전성 정리로, 굳이 말한다면 수학적으로 없는 것이다.
그 사랑을 기다려줄 그런 사람을 찾는 거야
그럼에도 우리는 그런 사랑을 기다려야 한다.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 그런 사랑이 없고, 세상이 우리를 그 광원으로부터 멀리 떨어트려놓으려 하기 때문에 -- 더더욱 그런 사랑을 기다려야 한다.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춤을 추며 적극적으로 기다려야 한다.
우린 오래전부터 어쩔 수 없었다. 우주 속을 홀로 떠돌며 외로워하는 존재들이다. 하지만, 태양과 달이 일순간 겹치듯, 정말로 만나지는 못해도 우리 지상에서 겹쳐보일 수 있듯, 우리는 일순간 겹쳐질 수 있음을 믿는다. 그리고 그 특별한 순간이 놀랍게도 주기적으로 반복되고 있다는 것을 안다면, 그것은 또다른 차원의 영원, 영원 너머에서 이해할 수 있는 영원일지도 모른다. 그럴지도 모른다. 그렇게 믿고 싶다. 그렇게 믿는다.
글 내용과는 별 상관없지만 노래를 작사한 조휴일 씨(검정치마 보컬이기도 하다)와 만난 적 있는 사람의 기사가 있다. (링크)
내가 만난 조휴일은 그냥 생각나는대로 가사를 적어 나간다고 한다. 한번에 쭈욱 깊게 생각하는 것보다는 자신이 생각하는 상상력과 느낌을 꾸밈없이 진솔하게 써 간 것이 오히려 화려한 미사 어구를 쓴 다른 가사보다 더 진실하게 사람들에게 전달이 되어간다. 그래서인지 후렴구와 1절, 2절 구별이 형식 없이 말하듯이 노래가 서술형으로 진행된다.
이젠 들어보고 싶은가? 그런 당신을 위한 유튜브 링크다~ (위에 있는 링크와 같다)
또 별로 상관없지만 백예린의 Antifreeze와 검정치마의 Antifreeze는 사뭇 다르다는 점을 짚고 마치고 싶다. 백예린의 Antifreeze가 따뜻한 방 안에서 빙하기를 상상하는 느낌이라면, 검정치마의 Antifreeze는 거리에서 눈보라를 맞으며 부르는 느낌이다. 비장미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