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인공지능 수업이 휴강입니다. 저는 수업도 없이 학교에 와있습니다. 할일도 없으니 오늘은 데카르트가 되어 세상의 존재를 증명해보겠습니다.
데카르트는 마지막 중세인, 최초의 근대인입니다. 그의 책 <방법서설>은 합리주의의 포문을 열었지만 한계 또한 명확했습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이 말로 유명한 바로 그 책입니다. <방법서설>은 요즘 말로 쉽게 풀어쓰자면 <생각하는 방법의 첫걸음>입니다. 데카르트는 기하학을 공부하면서 정리와 증명의 논리적 명료함에 매료가 되었습니다. 그 방법을 철학적인 질문의 답을 찾는 데에도 써보고자 한 것이죠.
데카르트가 제시한 방법이란, 확실치 않은 지식은 모두 내다버리고 가장 확실한 공리와도 같은 사실을 찾아내고, 거기에서 출발해 어떤 것이든 논증하는 방법입니다. 다른 사람의 말은, 그 사람이 잘못 생각했을 수도 있고 거짓말을 했을 수도 있으니 내다버립니다. 자신의 눈과 귀로 들은 것들도 내다버립니다. 감각은 언제나 착각하기 쉬운 것이니 어찌보면 가장 불확실한 지식이기도 하지요. 논리적 사실들도 내다버립니다. 데카르트는 논리적 사실을 내버리는 이유를 가상의 악마를 상상하여 설명합니다. 어떠한 교묘한 악마가 철학자를 괴롭히려고, 전혀 생뚱맞은 생각들을 마치 의심할 여지 없는 진실인 양 속인다면 우리는 손을 쓸 수 없다는 거죠.
그렇게 세상의 모든 지식에서 등을 돌린 데카르트가 찾아낸 것은, 그 불모지에서도 여전히 생각을 하고 있는 자신만은 남아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자신이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만은 의심할 여지 없는 확고부동한 제1의 진리입니다. 그러니 당연히, 그 형태가 어떠하든, 데카르트 자신이 존재한다는 것만은 알 수 있다는 거죠.
여기까지가 데카르트가 연 합리주의 시대의 신화입니다. 하지만 그 뒤에 이어지는 논증은 데카르트가 여전히 중세인이었음을 실감하게 합니다. 데카르트가 발견한 제2의 진리는 신이 존재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데카르트가 생각하기에는, 인간이라는 불완전한 존재가 완벽한 존재인 신을 스스로 생각해내 상상하는 일은 불가능하다고 여겼습니다. 따라서 인간이 신을 상상하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신이 인간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렸기 때문이고, 그러므로 신은 존재한다, 라는 것이 데카르트의 생각입니다. 저는 이걸 읽으며 김이 빠졌습니다. 데카르트가 발견한 마지막 제3의 진리는 이 세상이 존재한다는 사실입니다. 신이라는 완벽한 존재가 성실한 철학자를 속일리 없으니 당연히 데카르트가 보고 느끼는 세상도 진짜라는 논리입니다.
진화와 빅뱅, 인공지능이 날뛰는 지금 시대에 데카르트의 논증은 아무래도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생각하는 스스로의 존재를 논증해낸 것은 다시 봐도 놀랍지만 그것뿐입니다. 신의 문제는 차치해도 이 세상이 진짜인지 매트릭스인지 아니면 그저 나의 꿈속인지 데카르트는 속시원하게 알려주지 못합니다.
저 역시 이 세상이 진짜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오히려 진짜인지는 상관이 없고, 진짜든 가짜든 내 눈 앞의 세상에서 열심히 살면 그것만으로 보람찹니다. 문제는, 이 세상이 전부 나의 상상이고 꿈속이 아닌가 하는 그 특정한 문제입니다. 이 넓고 척박한 세상에 저밖에 없다고 한다면, 저는 외로움에 잡아먹혀 돌이 되어버리고 말 겁니다.
이것은 논리적인 문제가 아닙니다. 감정적인 문제입니다. 이 세상을 살 수 있는가, 살아야 하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살만한가, 살고 싶은가의 문제입니다.
그래도 저 스스로는 그 문제에 나름 답을 갖고 있습니다. 아마 세상엔 저 말고도 많은 사람들이 있는 게 틀림없습니다.
제 머릿속에는 우주가 있습니다. 온갖 종류와 형태와 차원의 생각과 취향과 가치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세상에 제가 있는 게 아니라 제 안에 세상이 있다고 해도 그다지 틀린 말은 아닙니다. 수학적 이미지를 떠올려보면 순서쌍의 순서만 바꾸었을 뿐, 그 구조는 그대로니까요. 그런데 제 머릿속 우주에 온전히 다 담을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다른 사람들의 머릿속입니다. 집합론적인 직관입니다. 하나의 구조 안에 더 큰 구조가 포함될 수 없다는 경험법칙이죠.
저는 다른 사람의 생각이나 구체적인 취향 같은 것을 깊이 알게 될 때면 놀라곤 합니다. 멀리서는 그저 수많은 군중 속에 떠다니는 또 하나의 입자 같았던 것이, 가까이에서 자세히 들여다보면 하나의 우주를 이루어 무한한 경이로 가득차 있습니다. 그저 과제나 하고 헛소리나 하던 친구가 정치와 사회문제에 대한 관심을 숨기고 있고 록 음악을 좋아하면서도 록 중에서도 이쪽은 잘 알고 저쪽은 잘 모르며 자신만의 관심사와 독특한 취미를 계발하고 있고 밤과 새벽에는 제가 홀로 그러듯 그들도 감상적인 고민과 불안 속에서 허우적대며 잠 못 이루고 있음을 발견할 때, 갑자기 이 세상에 현실감이 들면서 세상은 넓고 보고 듣고 느낄 것도 많고 만날 사람도 일어날 일도 할 일도 한참 남아있구나 느끼게 됩니다.
그런데 오늘은 만나서 대화를 나눈 사람이 없으니 심심하고 무료하고 헛헛한 하루입니다. 예 뭐, 심심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