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의 왕이 재미를 원한다~
-- 바롱의 로딩화면, <<트릭컬 리바이브>>.
오늘부터 쓰기로 한 말의 틀이다. "~~의 왕이 ~~을 원한다"로 활용한다. 두 빈칸에는 같은 말을 넣는 것이 정석이나 다른 말을 넣어도 재미있으면 그만이다. 예시를 몇가지 들어보면 이런 것들이 있겠다:
- (버거킹을 가며) 버거의 왕이 버거를 원한다~
- (카공을 가며) 카공의 왕이 카페를 원한다~
이 말이 마음에 든다. 무언가를 원하는 이라면 누구든지 그 욕망의 왕이 될 수 있다고 하는 것 같다. 왕은 권력의 상징. 여기서 왕은 자신만의 왕국을 세우고 그곳에서 왕이 된 자다. 그리고 그 사람은 왕이니까 그것을 당당하고 정당하게 원하고 요구할 수 있다.
그 왕국에 다른 사람들도 백성으로 들어갈까? 욕망에 공감하지만 선뜻 나서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왕을 따를지도 모른다. 트릭컬 커뮤니티에서 "재미의 왕이 재미를 원"할 때 사람들은 기꺼이 그 재미의 난장판에 뛰어든다. 모두 재미의 백성이 되고 재미의 왕은 그것에 흡족해한다.
나는 이 말의 빈칸에 시덥잖고 개인적이고 말초적인 욕망이 들어갈수록 재미있다. "산책의 왕이 산책을 원한다~"라든지 "잠의 왕이 잠을 원한다..." 같은 것들. 그걸 말하는 사람은 그냥 산책을 가고 싶고 잠을 자고 싶을 뿐인데 그것에 대단한 권력을 가진 양 말한다. "푸하하 그게 뭐야~"라고 덧붙이면서 가만히 생각해 보면 사람의 욕망은 어느것도 헛된 것이 없고, 무언가 원하는 자는 그것을 권력처럼 탐하고 싶을 만큼 진심을 담아 원하며, 특히 이 말을 되뇌는 사람은 그 권력을 차지하여 왕이 되지 못할 이유가 없으니 왕이 되었음을 선언하는, 그런 철학과 자세가 이 말에는 담겨있는 것이다.
권여선의 <사슴벌레식 문답>이라는 단편을 읽고는 이런식으로 말장난에서 의미를 찾는 습관이 생겨버렸다. 사소한 말장난이 반복하여 강화하면서 우리에게 어떤 철학을 되뇌고 있는지, 어느새 생각하게 된다. 이를테면 "아쉬운거지.."라는 말버릇에 어떤 세계관이 숨어있나 들춰보면 어떤 비극이 일어나도 그것을 한없이 가볍고 무의미한 것으로 만들어서 잊어버리겠다는 철학이 숨어있다. 그 철학이 삶을 어디로 이끌지 내다보면 결코 흡족하지는 않다. 그래서 나는 "아쉬운거지"를 그만두기로 했다. 여전히 툭 하고 튀어나게 되는 말이지만, 그 말을 하면서도 이 일이 아쉽게 끝나지 않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재미의 왕이 재미를 원한다"는 말이 마음에 든다. 나의 욕망을 자랑스럽게 인정한다는 서사가 들어있다고 생각하면 속이 꽉 찬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여담이지만 이 말에서는 "왕"도 다른 말로 바꿀 수 있다. 자신이 그것을 욕망하고는 있지만 왕이 되고 싶은 정도는 아닐 때는 조금은 작은 권력자를 넣는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카공의 도지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