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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손잡이해방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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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면서 웃거나 눈물 흘린 적은 자주 있다. 하지만 상영관을 나오는 순간 그 표정들은 추억 서랍에 넣어둔 채 현실로 돌아오게 된다. 적어도 지금까지 보았던 모든 영화는 그랬다.

<룩 백>은 그렇지가 않다. 영화관을 나와 집에 가는 길에도 문득 눈물이 날 것 같아서 하늘을 보게 된다. 방금은 한숨 자고 일어났는데도 슬픈 기분이 들어 왜일까 생각해보니 오늘이 <룩 백>을 본 날이라 그런 것 같다.

아래는 영화사에서 소개하는 줄거리다.

학년 신문에 4컷 만화를 연재하고 있는 초등학교 4학년 후지노. 반 친구들로부터 극찬을 받으며, 자신의 그림 실력에 절대적인 자신감을 가진 후지노였지만, 어느 날 학년 신문에 처음 실린 등교 거부 동급생 쿄모토의 4컷 만화를 보고, 그 그림 실력의 높이에 경악한다. 이후 한눈팔지 않고 만화를 계속 그리는 것에만 전념한 후지노였지만, 전혀 좁혀지지 않는 쿄모토와의 그림 실력 차이에 의욕을 잃어, 만화 그리기를 포기해 버린다.

그런데, 초등학교 졸업식 날 선생님의 부탁을 받고 쿄모토에게 졸업장을 전하러 간 후지노는, 거기서 처음 대면한 쿄모토로부터 「계속 팬이었다」는 말을 듣는다.

한 번 만화 그리기를 포기했었지만 이번에는 쿄모토와 함께 만화를 그리기 시작한 후지노. 두 소녀를 연결한 것은 만화를 향한 한결같은 마음이었다. 그러나 어느 날 모든 것을 박살내는 사건이 일어나는데···.

그래도 여전히 뒷부분의 줄거리는 내가 설명해야겠지... 지금이라도 <룩 백>을 보고 올 사람들은 보고 오시길. 결심이 섰다면 스크롤을 내리시라.

후지노와 쿄모토는 같이 그린 단편만화를 출판사에 제출하여 준입선을 한다. 받은 상금 중에서 10만엔, 우리돈으로 약 100만원을 뽑아서 둘은 시내를 놀러다닌다. 그 장면들이, 그림들이 참 예쁘다. 유튜브나 광고에서 영화 클립을 볼 때면 "한 번 더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재미있는 점은 실제로 쓰는 돈은 5천엔 뿐이라는 것... 중학생 둘의 플렉스란 그렇게 귀여운 것이다.

둘은 계속해서 단편을 여러 편 낸다. 하지만 어느새 후지노와 쿄모토는 조금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고등학교 졸업을 앞둔 둘에게 출판사는 정기연재를 제안한다. 후지노는 흔쾌히 수락하지만 쿄모토는 머뭇거린다. 쿄모토는 미대를 가고 싶어 했다. 후지노는 그런 쿄모토에게 "미대 가봐야 취업도 안 된다", "나랑 만화 그리면 탄탄대로인데 왜 사서 고생을 하냐", "등교거부하던 네가 대학에 잘 적응할지나 모르겠다"며 마음에도 없는 날선 말들을 한다. 마음 아픈 장면이다.

후지노는 계속 바쁘게 연재를 이어나간다. 쿄모토는 미대에 잘 간 모양이다. 아마 더 멋진 그림을 그려내는 대가가 되어가고 있을 것이다.

하루는 후지노가 만화를 그리던 도중 옆에서 틀어놓은 뉴스가 흘러나온다. 모 미술대학에서 칼부림이 일어났다. 용의자를 검거했으며, 부상자 몇 명, 사망자 몇 명... 후지노는 급하게 쿄모토에게 전화를 걸어본다. 받지 않는다. 이어지는 장면에서는 초상집에 쿄모토의 영정이 놓여있다.

후지노는 쿄모토의 방 문 앞에 선다. 거기서 옛날에 그렸던 네컷만화를 발견한다. 졸업장을 전하러 간 날 왠지 모르게 그리게 된 만화.

그날 그 만화는 팔랑 떨어져서 쿄모토의 방 문 틈으로 쏙 들어갔었다. 후지노는 당황하며 급하게 집을 나선다. 쿄모토도 그 만화를 읽고는 문을 벌컥 열어 따라서 뛰쳐나가서는 "후지노 선생님!" 하고 부른다. 그 마법 같은 사건으로 후지노 쿄 콤비의 만화 그리기는 시작되었더랬다.

그 네컷만화를 보며 후지노는 털썩 주저앉는다.

아. 나 때문에 죽은 거잖아. 내가 그날 방에서 끌어내지 않았다면 죽지 않았을텐데. 나 때문이잖아.

그러면서 그 만화를 북북 찢어버린다. 그 장면이 너무 리얼했다. 이해할 수 없는 쿄모토의 죽음. "쿄모토의 죽음은 혹시 나 때문이 아닐까?" 사람은 무력감에 억지로 이유를 만들어낸다. 서글픈 몸부림이다.


세상에는 준비할 수 있는 죽음과 준비할 수 없는 죽음이 있는 것 같다. 지금까지 친척 어른들의 장례식은 몇 번인가 가봤지만 그건 대개 잘 모르는 사람이거나 지병으로, 혹은 투병 끝에 돌아가신 분들이었다. 언제가 될지는 몰라도 어느정도 준비할 수 있는 죽음이다. 그 일이 결국 일어났을 때 설명할 수 있는 죽음, 이해할 수 있는 죽음이다.

그런가하면 준비할 수 없는 죽음이 있다. 처음 <룩 백>을 보기 며칠전에 누구의 부고를 들었다. 나는 별로 대화를 하거나 하진 않았지만 일주일에 한 번씩은 보게 되고, 만나면 인사하는 정도의 사이였다. 아마도 한동안은 계속 보겠거니 했다. 그런데 그날은 만날 수가 없었다. 오겠거니 한 자리에 나오지를 않았다. 행사가 끝날 때쯤에야 부고를 전해들었다.

전해듣는 당시에는 덤덤했다. 스스로 좀 꺼림칙하면서도 별로 안 친해서 그런가 싶었다. 타이밍이 안 맞아서 장례식도 못 가고 그냥 그렇게 넘어가는구나 했다. 그런데 그주 주말은 거리의 공기가 짓누르는 듯 무거웠다.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갑작스럽게, 쉽게 사라질 수가 있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이가 없고 무서웠던 것 같다. 눈물이 터져나오곤 했다. 연락이 뜸하던 친구들한테 잘 지내냐 물어보고 하면서 주말을 보냈다.

월요일에는 집단 상담을 받았다. 좀 더 친했던 사람들은 이렇게 될 줄을 왜 알아차리지 못했는지, 자신이 어떻게 해야 이런 현재를 바꿀 수 있었을지 끊임없이 되물었다고 했다. 이때? 아니면 그때? 다르게 행동했더라면 살릴 수 있었을까. 하지만 결국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는 것을 인정해야 했다고 한다.

이런 죽음은 준비할 수가 없는 것이다. 아마 일어나지 않았어야 할 죽음이다. 이런 일이 일어날리가 없는데, 왜 이렇게 되어야만 했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사람은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이해하기 위해 집착적으로 애쓰는 존재다. 이유를 찾고, 찾을 수 없다면 만들어내고.


찢어진 만화 조각은 처음 그때처럼 문 틈으로 들어간다. 문의 반대쪽은 후지노가 쿄모토에게 졸업장을 전해주던 그 날이다. 만화 조각에서 "나오면 안 돼"라는 대사를 읽은 쿄모토는 이번에는 방 안에 꼭꼭 숨어있는다.

그날 방에서 끌어내지 않았더라면.

후지노와 쿄모토는 서로 만나지 못한 채 졸업했다. 화집을 보면서 눈을 빛내던 쿄모토는 이번에도 역시 미대에 갔다.

그림을 그리다 잠시 복도에서 쉬는 쿄모토. 뉴스에서 나왔던 것처럼 한 남자가 흉기를 들고 대학 건물에 들어온다. 그 사건의 타임라인대로 영화는 진행된다. 남자가 휘두른 흉기는 소파에 내리꽂힌다. 다시 한 번 휘두르려는 찰나, 후지노가 나타나 괴한에게 날라차기를 한다. 괴한은 나가떨어진다.

사건이 일단락되고 후지노는 다리가 부러져 구급차를 탄다. 그 때 쿄모토가 와서 감사 인사를 한다. 연락처를 교환하는 순간 쿄모토는 후지노의 이름을 알아본다.

-앗 후지노 선생님? 초등학교 때 선생님 만화 팬이었어요. (...) 그런데 그때 왜 연재를 그만두셨나요?

-요즘 다시 그리고 있어요. 만화 연재하게 되면 어시스턴트 해주세요?

...라는 내용의 네컷만화가 어느새 방 문 앞에 놓여있었다. 상상은 상상. 쿄모토는 여전히 이곳에 없다.

후지노는 문을 열고 방에 들어가본다. 책장에 꽂혀있는 후지노의 연재작, 창문에 붙어있는 네컷만화들, 책상에 다소곳이 놓여있는 독자 설문조사 양식. 후지노는 문득 뒤를 돌아본다. 처음 만났을 때 큼지막하게 싸인을 해줬던 옷이 문에 걸려있다. 쿄모토는 언제나 후지노의 팬이었다.

언젠가 후지노는 만화를 그리는 일은 하나도 재미없다고, 만화는 읽는 게 재밌지 그리는 일은 지루하기만 하다고 했었다. 이에 쿄모토는 물었다. "그럼 후지노는 왜 만화를 그리는 거야?" 그 대사 후에 후지노와 쿄모토가 함께 단편을 그리던 날의 장면들이 이어진다. 후지노가 그려간 콘티를 읽으며 쿄모토가 웃고 우는 장면들, 즐겁게 떠들고 열중하면서 몇날 며칠이고 같이 만화를 그리는 장면들.

연재중단했던 "샤크킥"의 마지막 장에는 이렇게 적혀있다. "샤크킥은 돌아온다! 12화에 계속!" 후지노가 만화를 계속 그렸던 것은 그걸 읽고 좋아해주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만화를 좋아해주던 쿄모토를 떠올리며 후지노는 다시 연재를 시작한다. 작업실 창문에 네컷만화를 붙이고 그림을 그리는 장면과 함께 엔딩 크레딧이 올라간다.


후지노가 만화를 계속 그림으로써 쿄모토의 무언가가 계속 이어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끊겨버린 쿄모토의 삶을 그냥 끝난 채로 두지 않겠다는, 쿄모토가 여기에 있었음을 증명하겠다는, 그리고 그 역사, 이야기, 마음, 온기가 지금도 앞으로도 계속 이어지게 하겠다는 결연함이 느껴졌다. 결연함이랄까,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자꾸 일어나는 세상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몸부림이다.

원작만화를 그린 후지모토 타츠키는 이 만화를 그린 동기를 이렇게 말한다.

17살에 저는 야마가타의 미술 대학에 입학했습니다. 동일본 대지진이 발생한 직후였기 때문에, 다들 이대로 그림이나 그려도 괜찮은 것인지 의문을 품었을 거예요. 그림을 그려 봤자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뭔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픈 마음에 이시노마키로 피해 복구 자원봉사를 갔습니다.

이동하는 버스 안에는 저와 같은 생각일 미대생과 체육 대학 학생들이 잔뜩 있었어요. 이시노마키에 도착해서 주택 한 구역의 도랑을 가득 메운 흙을 제거하는 작업을 했습니다. 흙을 자루에 담아 트럭까지 운반하는 작업을 하루 내내 했지만, 도랑의 흙을 전부 퍼내지는 못했어요. 30명 정도가 온종일 달라붙어서 했는데도 해내지 못한 것에 무력감을 느꼈고,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도 다들 시무룩했죠. 함께 작업했던 체육 대학 학생이 "저희가 온 의미가 없었네요."라고 말했습니다.

자원봉사는 그 후에 딱 한 번 더 다녀왔지만, 그걸 끝으로 더는 가지 않게 됐어요. 유화를 그리느라 돈이 들어서, 비용 마련을 위해 만화를 그릴 수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17살 때부터 쭉 그 무력감 같은 것이 절 떠나질 않아요. 또한 몇 번인가 슬픈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제가 하는 일이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는 감각이 점점 커져만 갔습니다.

최근에 슬슬 이 감정을 발산하고자 <룩백>이라는 만화를 그렸습니다. 그려 봤더니 신기하게도 아주 약간은 마음의 정리가 된 것 같아요. 그 상태로 지금 이 단편집을 보니까 무력감 속에서 그린 것뿐만 아니라 배를 엄청 곯으면서 그렸던 일, 내 친구와 그림 연습을 했던 일 등등이 하나둘 떠올랐어요. 왜 암울한 일만 되새겼는지 궁금해질 만큼 즐거운 추억들이 떠올랐습니다.

-후지모토 타츠키, 단편집 <17-21> 후기

슬픈 여운이 진하게 남는 영화다. 죽음이라는 사건은 절망감의 아우라를 뿜는다. 절망감이 우리를 잡아먹게 내버려두지 않으려면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한다. 그의 죽음으로 이때까지의 삶이 헛된 것이 되어버리지 않도록, 끊어질 것만 같은 그 역사를 우리의 삶으로써 계속 이어나가자. 죽음을 기린다는 것은 그런 것일테다. 그의 죽음을 짊어지고도 계속 살아갈 수 있게 의미를 부여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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