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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죽지 않는다

왼손잡이해방연대, (개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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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했다가 다시 읽으니 이해하게 된 만화가 있다. 셋하나둘은둘셋하나의 <영원한 요새>. 별로 대단한 이유는 없다. 그냥 처음 읽을 때 졸렸거나 했던 거겠지. 지난 주말에 다시 읽으며 재미있는 이야기를 건졌다.

죽음은 도구한테나 쓰는 말이에요. 사람은 죽지 않아요.

셋하나둘은둘셋하나, <영원한 요새의 장례식에 대해>

사람은 잊혀질 때 죽는다…와 비슷한 뉘앙스의 말이다.

만화 자체는 슴슴하다. 귀여운 주인공이 없어서 그런가…. 다른 만화들을 본 후에 여운이 남으면 즐겨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이 작가 특유의 인본주의가 좋다. 인류의 자아비대증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뭐 어떤가. 우리는 언제나 스스로를 위해 생각하고 행동한다. 그래야 한다. 인류는 내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큰 우리다. 꼭 인간만 중요하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인간조차 지키지 못하는 현실에서 그 너머의 이상을 바라보는 건 바보같다.

컴퓨터 켠 김에 전문 인용! 생각보다 너무 길다... 만화로 읽었을 때는 단숨이었는데.

근데, 죽었다고 생각은 안 해요. 생각을 많이 했거든요. 죽는 게 뭘까. 그건 기대를 완전히 저버렸단 뜻이에요. 생물로서, 이웃으로서, 가족으로서, 기대되는 행동들, 움직이고, 숨 쉬고, 대화하고, 돕고, 눈에 띄고, 싸우고, 그런 것들을 이제 다신 못할 거라 생각되는 상태를 죽음이라 부르는 거예요. 하지만 팔이 잘려 손을 잡지 못해도, 눈을 뽑혀 누굴 봐주지 못해도 그것만으로 죽었다고 하진 않죠. 그럼 적어도 뭘 해야 살아있는 걸까. 따듯한 숨결이나, 뛰는 심장이나, 세상을 보는 지성이 있으면 살아있는 걸까. 생각을 해봤는데 살아있기 위해... 죽지 않기 위해 꼭 필요한 건 하나예요. 그 사람이 무언갈.. 무언가를 할 수 있다고 믿어주는 누군가의 기대, 하나요. 뇌사 판정을 받고 침대에 누워만 있어도, 누군가 옆에 앉아 위안을 얻으면 살아있는 거고, 사지 멀쩡한 사람도 주변에서 쏟아지는 기대에 부합하지 못하면 죽은 거예요. 기대가 살고 죽는 걸 결정해요. 또 무엇에 기대하죠? 우린 안정제가 산만한 감정들을 잘라줄 거라 기대하죠, 지금 제 상태를 보면...... 이 안정제는 살아있네요. 기대는 도구한테 하는 거예요. 사람이 도구랑 같나요? 사람이 역할을 기대받고, 그런 기대들을 충족시켜야만 하는 도구인가요? 그러지 못하면 죽은 거고? 이렇게 말하는 꼴이잖아요. 넌 더 움직여서, 날 즐겁게 하고, 내 일을 거들어주고, 내 사회적 지위를 지켜줘야 했는데, 못하게 됐네. 이제 쓸모없어. 아깝네. 그게 맞나요? 사람은 도구가 아니에요. 기대받아야 하는 존재가 아니에요. 누구의 것도 아니니까, 마음대로 기대해서는 안 돼요. 기대받지 않는데 기대를 저버릴 순 없죠. 죽음은 도구한테나 쓰는 말이에요. 사람은 죽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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